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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an 18. 2022

정리하는 인간

청소와 정리를 통해 내적 혼란과 부정적 요소를 해소할 수 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하는 일과 잠자리에 들기 전에 내가 하는 일은 정리정돈. 


거실에 하루 동안 아이들이 어질러 놓은 장난감과 책들, 그리고 저녁 식사와 간식을 먹고 난 빈 접시를 치우고 정리하는 것이다. 밤에 잠들기 전에는 항상 이렇게 말끔하게 정리되어 있는 상태가 되어야 책이 읽어지고, 글이 써진다. 아침 시간에는 밤사이 내가 놓친 작은 흩트림을 발견하고 다시금 정리와 청소 그리고 설거지를 하는 일, 역시 정리하는 것이다. 



  불우한 어린 시절로부터 도피하기 위해 선택한 수단으로써의 정리


 나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엄마라는 존재가 없는 집 안에 남자 셋이서 사는 환경이란 곰팡이와 먼지가 수북했으며, 항상 더러운 옷과 습하고 차가운 외풍뿐이었다. 그래서인지 성인이 되어 대학 입학과 동시에 집에서 뛰쳐나와 독립을 했을 때부터 나는 습관적으로 청소와 정리정돈에 신경을 썼다. 그 행위의 이면에 숨겨진 내면의 뜻은 불우하고 지저분했던 과거의 시간과의 작별, 혹은 또다시 그러한 삶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는 나의 집요한 의지라 할 수 있다. 그 행위가 이제는 거의 강박에 가까울 정도가 되어 버렸다.


 아마도 나 혼자서 계속 살아왔다면 나는 방 두 칸에 화장실이 하나 딸린 단순하면서도 소박한 크기의 집 안에서 한 달이 지나도 위치하나 변하지 않는 집안의 모습을 유지하며 살았을 것이다. 한 방은 내가 자는 공간으로, 또 다른 한 방은 책으로 가득한 책장과 노트북 하나만 있는 책상이 딸린 공부하는 서재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옷은 편안하고 가벼우면서, 그렇다고 너무 유행에 뒤쳐져 낡은 옷이 아닌 몇 벌만이 옷장에 걸려 있을 것이다. (나는 원래부터 옷 욕심은 없었으니까) 다만 걷는 것과 여행을 즐기기에 내 마음에 드는 신발은 한가득했을 것이다. 


 어쨌든 어느 순간부터 '정리하는 행위'가 나의 삶에 중요한 기준과 선이 된 것만은 확실하다. 가장 중요하고도 급한 일을 처리해야 하는 순간에도 나는 강박처럼 주변을 정리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또 청소기를 돌리고 걸레질을 해댄다. 



 아이 키우는 집안에서 의미 없는 정리 속에서 찾은 의미


 그러나 현실 속에서의 나의 모습을 돌아보면, 어린 세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집안에서 '청소나 정리하는 행위'는 아무 의미가 없다. 나 혼자 열심히 정리하고 청소하지만 아이들은 무엇이건 집어던지고 거실에 가득 쌓아두는 것이 재미가 있는 모양이다. 나는 정리하고 아이들은 어지른다. 그것이 처음에는 화도 나고, 짜증도 났지만 어느 순간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이렇게 어질러주니 내가 청소하고 정리하는 행위를 하면서 일종의 생각과 의식의 흐름을 가다듬으며, 마음속에 쌓인 부정적인 감정과 생각들을 해소할 수 있으니 오히려 감사할 일이 아닌가?'라고 말이다. 


 생각해 보니 그러했다. 만약 나 혼자 살아가는 집이었다면 나의 거의 청소하고 정리하는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항상 무엇이든지 사용하고 나면 제자리에 두고, 어질러놓은 것이 있다면 곧바로 치웠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정리하는 행위를 위해서 일부러 어질러 놓아야 하는 상황을 연출해야 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이제는 아이들이 깨어 있는 모든 시간에는 함께 놀며 어질러지는 물건을 보고도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그 속에서 활력과 행복감, 그리고 아이들과 의사소통을 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고 속에도 깃든 정리의 습관


 예전에는 몰랐지만 젊은 시절부터 정리 정돈하고 청소하는 습관의 행동이 내가 사고하고 생각하는 방식에도 꽤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사실을 최근에야 많이 발견하게 된다. 


 가령 새로운 주제로 글을 쓰고 싶은 마음에 들어서 주제와 내용을 정리해두었다치고, 막상 첫 글을 적어가려고 하면 여전히 완성되지 않은 채 남아있는 다른 글들의 빈칸들이 눈에 밟혀 저것부터 먼저 다 마무리하고 새로운 글을 적어나가고 싶은 욕구가 앞서는 바람에 막상 새로운 글을 빠르게 써내려 가지 못하는 경우가 그렇다. 아마도 나와 같은 유형의 인간이 이 지구 상에는 적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유형의 인간은 한 작품을 써 내려가는데 꽤나 많은 시간과 수정을 거치지만 종국에는 수준 높고 치밀한 구성의 작품을 완성할 확률이 높다)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세상의 소식과 사람들은 인터넷을 통해 더욱 가까워지고 있으니 더 예리하고, 더 신박하고, 더 핫한 것을 발견하고 쫓아다니느라 외적으로나 내적으로 자신의 주변을 차분하고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쉽지 많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대에는 나와 같이 더더욱 정리하는 인간이 필요하다고 역설의 주장을 펼치고 싶다. 대세의 큰 파도를 타는 사람은 단 시간에 멀리까지 갈 수 있겠지만 결코 그 파도의 흐름을 바꿀 수는 없을 것이다. 처음부터 파도의 흐름에 역행하는 자만에 결국에는 살아남지 않을까?  


 역시나 거실을 깨끗하게 치운 후, 깊어가는 밤을 정리하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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