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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an 28. 2022

내속에 바닥이 뚫린 허무의 항아리의 정체

 베트남 하노이에서 하롱베이로 가는 길목에 위치한 옌뜨 산 국립공원에 자리 잡은 가장 고급스러운 호텔 중 하나였던 M 갤러리 호텔에서의 일이다. 한국에서도 가장 큰 대기업에 속하는 L*의 한 계열사 노조위원장과 임원들을 데리고 간 힘든 출장이었다. 밤마다 거의 잠을 못 이루었고, 그들의 요구에 나의 육체와 감정은 이미 바닥으로 떨어진 상태였다.



 그날은 등산을 좋아하는 노조위원장의 요구대로 직원들과 함께 옌뜨 산 정상을 밟은 날이었다. 고된 하루의 일정을 모두 끝내고 나는 파김치가 되어 홀로 방에 누워 있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깊은 산 중의 고아한 M 갤러리 호텔 방에 누워 있으니 짙은 고요함이 찾아들었다.


 높은 천장에 엔틱 한 인테리어 장식으로 꾸며진 방은 흡사 왕이 된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이 호텔은 특이하게도 모든 방에 테라스가 딸려 있는데 나무도 된 문을 열고 테라스로 나가 보면 돌로 만든 묵직하고 우아한 테이블에 역시나 돌로 만들어진 의자 두 개가 나란히 마주 놓여 있었다. 거기에 밤에 어둡지 않도록 은은한 조명이 하나 켜져 있었다.  


 나는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아 테라스에 앉아 따뜻한 녹차를 한 잔 마셨다. 11월의 베트남의 하롱베이는 약간의 시원함이 있는 정도였다.

 

 옌뜨 산 아래에는 이 호텔 말고는 그 어떤 건물도 없었다. 방 자체도 그렇게 많지 않은 소수의 손님들만 받는 최고급 호텔에는 직원들도 손님만큼이나 많았지만 그렇게 눈에 띄지 않게 조용히 움직였다. 그래서 호텔은 마치 텅 빈 것처럼 조용하기만 했다.


 이러한 어둠과 고요한 적막감 속에 둘러싸인 테라스로 산 새소리와 풀벌레 소리가 가끔씩 들려왔다. 그때 무엇인가를 생각해 내려고 하다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갑자기 나의 어린 시절 중 아주 행복했다고 회고되는 기억이 밀려들었다. 중학교 시절 그리웠던 친구와 처음 가져본 가족애과 같은 우정이라는 감정, 아련한 기억 속에서 어머니라는 존재와 함께 소풍을 떠났던 장면들, 밤이 늦도록 온 동네를 쏘다니며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들판을 뛰어다니던 정월 초하루의 밤 같은 그런 기억들이었다. 이런 기억들이 아주 갑작스럽게 의도치 않았는데 떠올랐다.


 그리고 그 후 일주일이 흐른 뒤, 나는 똑같은 호텔의 똑같은 방에 똑같은 밤을 다시 혼자서 지새웠다. 물론 그 사이 주말 동안 한국에 잠시 갔다가 똑같은 일정으로 다른 임원들을 데리고 왔다는 것만 빼고서 말이다.


 날짜가 그렇게 계속 흘러가면서 나는 글을 쓰고 싶은 생각들과 여러 가지 감정들에 휩싸였다. 2주 연속 같은 회사의 임원들과 똑같은 장소를 왔다 갔다 하다 보니 마음의 여유가 생겼던 것인지 이런저런 생각들이 많았다.


 헤르만 헤세의 <지와 사랑>을 몇 주간 비행기 안에서, 공항에서,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틈나는 대로 읽었다. 그 속에 담긴 골드문트의 인생과 고뇌와 깨달음을 통해 나는 새로운 세상이 아직도 우리 인생 앞에 무한대로 펼쳐져 있음을 깨달았다.


 그 책 속에서 나는 때로는 방랑하지 않고 한 곳에 정착해 안정을 추구하기도 했다가, 때로는 아무도 간섭하지 않는 자유로의 도피를 꿈꾸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결국 인간은 목적지가 없는 항해를 하다가 선착장과 기항지에 잠시 쉬었다 가는 뱃사람의 인생과도 같은 것이지 않겠나.





 또 하루는 출장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배가 몹시 고팠다. 그리고 원인을 알 수 없는 피로감이 밀려들었다. 따뜻한 나라에서 한국으로 들어와 보니 벌써 겨울이 찾아들었다.


 낯선 사람들과의 감정적 소모가 가장 큰 원인이 아니었나 싶다. 기업연수 해외여행 전문가라는 직업으로 일해온 지난 6년 간 나의 감정은 메말라가지 시작했다.


 일주일마다 늘 새로운 사람들을 대하면서 몹시나 까다로운 사람들을 신경 쓸 때도 많았다. 그래서 내 안에 편안한 마음의 상태와 안정감이 사라지고 말았다.


 나는 나를 잘 알고 이해하는 존재와의 관계에서 감정적인 회복을 이루고, 어떤 목표와 힘을 되찾기 마련인데 그러한 존재가 사라져 버린지 꽤나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다.


 30대가 이렇게나 빨리 흘러가는지 20대에는 정말이지 몰랐다. 차라리 혼란과 불안정이 혼재했던 20대가 훨씬 더 좋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웃고 울 수 있는 감성과 시간과 자유는 충분했으니 말이다.


 사람의 힘이라 함은 자연스럽게 내면에서 풍겨져 나와야만 한다. 억지로 속에서부터 끄집어 내려하면 부러질 뿐이다. 그것은 올바른 가치관과 신념, 일관된 행동과 습관, 절제된 생활에서 발현함으로 단기간에 쉽게 만들어질 수 없는 것이다.


 나의 지난 몇 년 간의 생활을 보라. 무질서와 혼란, 무절제와 숱한 감정의 기복, 욕망을 따라 산 방탕한 생활의 반복이 결국에는 육체의 연약함까지 가져왔다.


 그러나 나는 지금의 삶이 그렇게 나쁜 점만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저 삶의 과실이 익어가는 한 절기라고 여길뿐이다. 나무가 사계절을 겪으며 나이테를 쌓아가는 것처럼 나의 삶의 테두리가 더 두껍고 넓어지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언제까지나 이러한 생활을 이어갈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왜냐하면 나는 순간에 살지 않고 영원에 살고 싶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며 지난 삶에서 경험해 볼 수 없었던 다른 모든 것들을 경험했다. 많은 나라에서 나이도, 이름도, 피부 색깔도, 언어도 다른 수많은 사람들을 알았고, 새로운 여자들도 만났으며, 전 세계의 온갖 종류의 술도 다 마셔보았다.


하노이에 있는 북한 식당의 대동강맥주, 처음으로 북한 사람을 만났다. @쏠파파

 그리고 마카오와 라스베이거스, 쿠알라룸푸르의 겐팅 하이랜드에서 카지노도 해보았다. 한 번에 수십만 원에서 수천만 원이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베팅하는 사람들의 욕망과 두려움에 가득 찬 눈빛을 보았다. 그들은 순간에 자신이 가진 전부를 걸었지만 결국은 인생의 모든 것을 다 잃을 것이다.



 다양한 직업군에 다양한 직위를 가진 사람들을 만나보고 관찰해 보았다. 대기업의 총수(이름만 대면 모두가 아는 한국의 유명 대기업의 총수들이었다), 간부, 임원, 노조위원장, 국회의원, 다단계 직원, 보험사, 휴대폰 판매원, 공장 노동자, 게임회사의 젊고 유능한 직원 등등, 20대에서 70대까지 매주 각기 다른 사람들을 데리고 다니며 대화를 나누었다. 그들의 직위와 능력은 다 달랐지만 인간의 추한 본성은 어디까지나 모두 동일했다.


 그리고 많은 나라들과 셀 수 없이 수많은 도시들의 밤을 보았다. 제네바, 비엔나, 두바이, LA, 상하이, 다낭, 보홀, 방콕, 프라하, 런던, 랑카위, 피렌체, 심천, 홍콩, 싱가포르, 자카르타..... 다 기억도 나지 않는 나라와 지명들만이 기억 속에 남았다. (30~40개 나라, 100여 개의 도시였을 것이다)


매주 반복되는 비행으로 시차를 매일 옮겨 다녔다 @쏠파파


알프스 자락의 오스트리아 짤츠캄머굿 @쏠파파
헝가리의 건국 영웅들이 모인 부다페스트 영웅광장 @쏠파파
멀리 프라하 성이 보이는 언덕에서 @쏠파파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1층의 커피와 레몬라임비터 맛은 일품 @쏠파파


음악신동 모짜르트의 고향 소금의 성, 짤츠부르크 @쏠파파




인간이 물 위에 지은 수상 도시 베니스 @쏠파파
발리의 울루와트 절벽의 파도는 세찼다 @쏠파파


동방의 진주 상하이 @쏠파파
대표적인 바다의 카르스트 지형 하롱베이 @쏠파파
라오스 비엔티엔 황금사원 @쏠파파


홋가이도 벳부의 지옥 온천 @쏠파파




캄보디아 앙코르 와트 @쏠파파
일년에 딱 한번 있는 비엔나 벨베레데 궁전 내부에 전시된 구스타프 크림트의 작품 '키스' 진품의 모습 @쏠파파

 

 밤이 깊이 지면서 호텔방으로 들려오는 각양각색의 도시의 소리들은 참으로 이질적이었다.


 기가 막히게 아름다웠던 풍경도 해가 거듭할수록 그 아름다움과 설렘은 점차 시들어져 갔고, 절묘하게 깎고 손질한 문화의 유산들도 내게서 점점 빛을 잃어갔다. 그 사이 죽음도 많이 보았다. 크루즈 여행 중에 팔순의 노인이 심장마비로 급사했다. 몇 년 전이었던가? 부다페스트의 다뉴브 강이 폭우로 불러 난 날, 배에 올랐다가 전복되어 많은 사람들이 눈앞에서 물에 떠내려 가는 것도 보았다.


 또 한 번은 바로 며칠 전에 공항에서 함께 대화를 나누던 다른 여행사의 한 과장이 자는 도중에 급성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바로 며칠 전에 나와 웃으며 대화했던 존재가 거짓말처럼 이제는 현실에서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단지 나의 기억 속에만 존재하게 될 줄 누가 알았겠나? 생각할수록 기묘한 일이었다.


 그리고 점점 가까운 사람들이 죽음의 빛을 띠기 시작했다. 목소리와 낯빛과 분위기에서 그것을 감지할 수가 있었다. 얼마 후 고모부와 큰 아버지의 부고 소식을 듣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결국 나에게 무엇이 남았는가? 이상하게도 내 속은 텅 비어 있는 것 같았다. 이쯤 되면 철학이든 경험이든 이야기든 목표이든 무엇인가 가슴속에 쌓여 있어야 할 텐데 이상하게도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이것이 바로 파스칼이 그의 저서 <팡세>에서 언급한 '신이 없는 인간 내면의 텅 빈 허무한 공간'인 것이라 나는 결론지었다.


 나는 20대에 책과 이론으로 깨달은 그 허무가 이제는 실제가 되어 나의 삶에 꽉 차 버려 그것의 실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적나라게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것은 낯선 여자의 육체로도, 새로운 풍경으로도, 생각지도 않게 손에 쥐게 된 거금으로도, 심지어 따뜻한 가족의 품으로도 절대 채울 수 없는 그런 빈 공간이었다. 이러한 것들은 마음의 그릇에 잠깐 담겨 있다가 곧바로 구멍 뚫린 바닥으로 전부 빠져나가 버리고 만다. 그리고 또다시 다른 것들로 채워지도, 또다시 비워진다. 이러한 반복이 곧 허무를 불러일으켰던 것이다.


 나는 이제 그만 이 허무로부터 벗어나고 싶다.

 신이 없는 허무는 이 정도로 경험해 보았으면 이제 충분했다.

 인간의 본질은 결국 나의 본질을 찾는 것으로 귀결된다. 신이 없는 인간의 본질은 결국은 허무일 뿐이었다. 신이라는 존재 안에서 인간의 모든 허무는 완전하고도 영원히 채워질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다시 그의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것만이 이 허무를 채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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