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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권즈 Jan 28. 2022

머리에서 가슴까지, 하늘보다 먼 사랑의 거리

사랑이란, 우리 자신의 잃어버린 반쪽에 대한 욕망이다.

플라톤 <향연>



 사랑은 감정이 전부가 아니라 믿음과 약속, 그리고 의지라는 것을 상대방에서 어떻게 증명, 혹은 받아들이게 할 수 있을까?

 

 이 명제는 지난 십 수세기 동안 수많은 시인과 학자와 철학자들 속에서 명쾌하게 풀리지 않은 카오스 이론 같은 것이다. 사랑의 속성이 어떠하며 본질이 어떠한지를 설명하기란 어쩌면 완전히 불가능한 일인 듯싶다. 사랑에 빠져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사랑의 속성을 하나의 단어, 두세 개의 감정, 열 문장으로만 적어 낼 수는 없다는 사실 말이다.


 이러한 명제 앞에서 이상은 한 여인을 바라본다. 아니 여자이기를 넘어서 한 영혼을 바라본다고 그는 믿고 있었다. 한없이 텅 비어 있는 내면을 단단한 철갑으로 둘러싼 육체의 공성(空城)과도 같은 영혼 말이다. 그 두터운 철갑을 뚫고 그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진실한 사랑뿐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시기나 질투하지도 아니하며,

 사랑은 교만도 자랑도 아니하는 것이다,

 끝까지 책임지는 것이며,

 자신보다 더 상대방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며,

 나의 행복보다는 상대방의 행복을 더 바라는 것이다.'


 성서에서 말한 이러한 사랑이 단지 머릿속에서만 머물러 있다면 그것은 사랑의 현현(顯現)이 아니라, 사랑의 알고리즘이자, 사랑의 형식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형의 개념일 뿐이다. 그러나 그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와 자신과 상대방을 뜨겁게 달군다면 그 사랑은 진실이 되고, 힘이 되고, 해답이 되며,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그토록 갈구하며 찾아 헤매는 영원으로의 회귀에 대한 진리가 되는 것이다. 즉, 진실한 사랑이 존재하는 남녀 사이에서는 그 사랑이 그들의 구원이 되어준다.


 그런데 문제는 이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기가 현실적으로 너무나 어렵다는 사실이다. 이상은 그녀와 함께 살아가는 동안 이 사실을 뼈저리게 깨달았다. (이상은 그녀가 결혼식날 입었던 드레스의 모양을 기억해 주지 못했으며, 그녀가 라면을 먹을 때는 항상 국물이 아닌 면만 먹는다는 것도 몇 년 간 몰랐다, 이상이 무의식 중에 던진 한 마디에 그녀는 일주일간 말을 하지 않은 적도 있었고, 어떨 때는 심지어 그녀는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 이상에게 욕을 한 적도 있었다, 등등.)     


 그녀는 끊임없이 사랑의 감정과 표현을 그에게 요구했고, 그는 머릿속에서만 존재하는 사랑에 대하여 설명하느라 변명을 늘어놓을 뿐이었다. 설명이 길어질수록 그녀는 침묵으로 일관했으며, 대화가 길어질수록 빨리 이 밤이 끝나버렸으면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차 올랐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상의 가슴속에 그녀를 향한 뜨거운 사랑의 감정은 식어버렸고, 사랑에 대한 이론과 의지만이 남게 되었다.  


 이러한 완전한 사랑을 현실의 일생에 현현시킨 존재는 예수가 유일하다. 그는 인간이면서 동시에 인간 중에서 유일하게 신의 속성을 가진 존재였다. 그의 삶의 목적은 그 사랑의 실천에 있었으며, 그 사랑의 본질을 자신의 죽음으로 증명해 보였다. 이상은 그러한 사랑이 자신에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일 밤마다 완벽한 사랑의 본질인 예수라는 존재의 무거움이 '인간적인 사랑 앞에 보잘것없고, 나약해진 이상'이라는 존재의 가벼움을 심하게 짓눌렀다. 이상은 자신의 머릿속에 가득 들어 있는 사랑이 가슴으로 내려오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아집과 무지들이 자신의 영혼을 심하게 짓누르는 그 무게를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 몇 날 며칠 동안 잠을 못 이루기도 했다.       


 그의 머리에서부터 가슴까지의 거리는 지상에서부터 하늘까지의 거리보다 훨씬 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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