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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린 Jan 03. 2023

새 프로젝트로의 배치

건설회사의 조직


“어, 윤 과장. 여기 있었네. 잘 지내지? 얼굴 보니까 아주 잘 지내나 본데?” 


“안녕하십니까, 박 부장님. 저야 부장님 덕분에 잘 지내죠. 본사에 돌아온 지 몇 달 지나니까 이제 슬슬 지겨워지는데요? 어디 나갈 데 없을까요, 부장님?” 


인원 선별을 담당하고 있는 박성운 부장님이다. 플랜트 사업본부의 인사 업무를 총괄하는 업무를 담당하시는 분이라, 최대한 친한 척 너스레를 떨었다.  


“그래? 안 그래도 내가 만나면 그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잘됐네. 윤 과장 지금 진행하고 있는 사우디 프로젝트 알지? 거기에 HVAC 시공 엔지니어가 필요하다는데 적당한 사람이 없어서 말이야. 얼마 전에 사장님이 외부 채용 줄이라고 말씀하신 거 알지?” 


“아, 네. 그건 들었죠.” 


“그래서 내가 윤 과장 추천하려고. 윤 과장 생각은 어때?” 


“아, 저야 좋죠. 마침 적은 본사 월급으로 살아가느라 매달 가계부가 적자였는데, 잘됐네요. 감사합니다, 부장님. 역시 제 생각해주시는 건 부장님밖에 없습니다.” 




사우디 프로젝트라면 아람코 프로젝트이다. 얼마 전에 언론에도 공개했던 몇 개 프로젝트들 중 하나일 것이다. 어차피 건설회사 플랜트사업본부에 다니면서 국내에서 계속 있는 걸 기대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해외 프로젝트 제안이 놀랍지는 않다. 다만 내가 언제, 어디로 나갈 것인지 결정할 수 없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껴서 조금 서글플 뿐이다. 오늘 당장 집사람에게 알릴 필요는 없을 거다. 남편이 오랜만에 한국에 왔다고 좋아하는데, 괜히 좋은 기분을 망칠 필요는 없을 테니까. 오늘 이야기 나왔으니, 아마도 현장에 가려면 3~4개월 시간은 있을 것이고, 그 사이에 이야기하면 된다. 오랜만에 친구들에게 연락을 돌려봐야겠다. 술을 금지하는 사우디에 나가기 전에 한 잔이라도 더 마셔야 할 것 같다. 창 밖을 보니 추적거리며 비가 내리고 있다. 한잔하기 좋은 날씨다.




회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건설회사는 제품의 특성에 따라서 조직을 구분한다. 아파트와 같은 주택과 상업 건물을 담당하는 건축사업부, 다리와 도로를 건설하는 토목사업부, 공장과 발전소를 주로 다루는 플랜트사업부 등으로 나눠지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사업부서는 다시 하는 업무에 따라서 여러 가지 팀을 가지고 있다. 설계지원팀, 사업수행팀, 구매지원팀 등이 바로 그 예이다. 이런 팀들은 보통 토목, 건축, 설비(HVAC), 배관, 기계, 전기, 계장, 시운전, 품질, 안전 등의 공종으로 구성된다.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하면 설계팀은 품질과 안전을 제외하고 위에 언급한 공종 별로 엔지니어들을 보유하고 있다. 그 엔지니어들이 프로젝트의 설계를 담당하는 것이다. 업무의 양에 따라서 하나의 프로젝트에 투입되는 사람의 수가 달라지는데, 보통 배관이나 전기를 담당하는 엔지니어들의 수가 가장 많은 편이다. 시공팀은 위에서 언급된 모든 공종의 엔지니어를 보유하고 있으나, 구매팀에는 보통 한 사람이 여러 가지 제품의 구매를 한 번에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 즉, 한 명의 구매 담당자가 기계와 설비를 위한 여러 가지 장비 구매를 담당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회사를 운영하는데 필수적인 부서는 실이라는 개념으로 각 사업본부에 소속되지 않고 본사에 소속되는 경우도 있다. 인사실, 재무관리실, 감사실 등의 조직들은 본사에서 모든 사업본부의 관련 업무를 총괄하여 관리한다. 예를 들어서, 플랜트사업본부의 인사팀은 본사의 인사실과 협조하여 업무를 진행하므로 비슷한 업무를 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따져보면 플랜트사업본부의 인사팀은 플랜트사업본부 인원들의 인사업무를 담당하고, 인사실은 전체 회사의 인원들을 위한 인사업무를 담당한다. 즉, 플랜트사업본부를 위한 교육은 플랜트사업본부의 인사팀이 담당하고, 전 직원을 위한 교육은 인사실에서 담당하게 된다. 




나는 이름만 대면 모두가 알고 있는 대기업 건설회사에 다니고 있는 HVAC (Heating, Ventilating and Air-Conditioning) 시공 엔지니어이다. 건물 안의 온도, 습도, 청정도, 방과 같은 공간들 사이의 압력 형성 등을 담당하는 HVAC 시스템을 설치하고 시운전하는 업무를 2009년부터 담당하고 있다. 예전에는 HVAC가 아니라 설비 혹은 건축설비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팀이었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건물에 설치되는 에어컨, 보일러, 화장실 및 소방에 관한 장비/배관을 설치하고 시운전하는 것이 바로 내 업무이다. 이런 HVAC는 아파트나 상업 건물보다는 공장을 만드는 프로젝트에 필수적이어서, 이제까지 나는 공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에서 주로 근무를 했다. 카타르, UAE, 사우디 등 해외에서 프로젝트를 5개 수행했고 지금은 말레이시아에 있는 프로젝트에서 근무하고 있다. 


HVAC와 다소 어울리지 않을 수도 있는 정보통신공학을 대학에서 전공한 나는 자동제어 시스템을 생산하는 외국계 회사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능력을 기르고 연봉을 높이기 위해서 다른 회사들로 이직하는 도중에 들어간 중소기업에서 해외에서 공장을 건설하는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됐고, 그 해외 프로젝트를 진행하던 도중에 발주처였던 대기업(우리나라에서 손에 꼽히는 대기업 중 하나였다.)에 제안을 받고 이직한 후에 지금까지 대기업에서 HVAC 엔지니어로 근무하고 있다.


이렇게 경력직으로 입사했던 나는 힘들게 배운 노하우들을 후배들에게 전달해 줄 기회를 갖기가 어려웠다.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이 비용절감을 위해서 한국인 엔지니어의 수를 지속적으로 줄이고 있기 때문이다. 즉, 우리나라 건설회사가 우리나라 돈으로 해외에서 일을 하는데, 그 경력은 대부분 인도, 필리핀 등 해외에서 온 직원들이 가져가는 구조가 된 것이다.  또 최근 거의 십 년 동안 나빠진 해외 건설 경기로 건설회사에서 신입사원을 거의 채용하지 않았다. 해외 프로젝트에서 근무하는 백 명이 넘는 한국 엔지니어들의 평균 나이를 계산해보면 45세가 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젊은 직원들은 거의 찾아보기가 어렵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차장 혹은 부장 직급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해외 프로젝트의 특성상 한번 현장에 나가면 2, 3년은 그 현장에서 일을 하기 때문에 본사의 후배들을 만날 기회를 갖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이것이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이다. 나는 내가 가지고 있는 노하우를 이 글을 읽는 여러 사람들과 나누고 싶다. 특히 해외건설이나 플랜트 건설분야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학생들이나 사회 초년생분들이 건설 분야를 이해하는데 내 글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다. 앞으로도 해외 공장 건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순서에 따라서 HVAC 시공 엔지니어가 담당해야 할 업무, 겪을 수 있는 어려움 등 내가 경험했던 사실들을 예를 들어서 설명하려 한다. 모쪼록, 내 경험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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