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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린 Feb 02. 2023

공사 간 간섭 관리

시공의 기준

“윤 과장님!!” 


“아, 네. 백차장님 안녕하세요. 무슨 일로 전화를 주셨나요?” 


협력업체 공무를 담당하는 백수종 차장님이다. 바쁜 사람이 나를 찾는 걸 보면, 뭔가 중요한 일이 생긴 것이 분명하다.  


"101 Substation 지하에 들어가는 MFD (Motorized Fire Damper) 있죠?” 


“네.” 


“그 Opening 크기가 저희 MFD 크기와 똑같아서 설치가 불가하다는데요?” 


“네? 그거 건물의 실제 Wall Opening 크기 측정해 보고 MFD 발주했던 거 아닌가요?” 


“저도 그런 줄 알았는데, 실제로 재보지는 않고 도면에 있는 크기를 저한테 알려줬더라고요. 저는 또 그걸 그대로 발주했고요. 죄송합니다.” 


“아이고… 알겠습니다. 일단 방법을 찾아볼게요. 일단 현재 우리가 가지고 있는 MFD는 Opening 크기를 바꿀 수 없다면 101 Substation에는 쓸 수 없는 거죠?” 


“네. 그렇죠.” 


"그럼 먼저 101 Substation용 MFD는 제대로 된 크기로 다시 발주 내주세요. 잘못 들어온 애들은 제가 다른 방법이 있는지 확인해 볼게요" 


"네, 알겠습니다."


"제가 확인해 보고 다시 연락드릴게요."


...


"네, 이번영입니다."


이 프로젝트의 HVAC 설계를 담당하는 이번영 LE (Lead Engineer)이다. 시공 엔지니어는 도면대로 시공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설계와 관련해서 문제가 생기면 항상 설계 담당자와 이야기해서 답을 찾아야 한다. 


"안녕하십니까, 차장님. 저예요. 윤 과장이요."


"응. 왜? 이번에는 뭘 해줄까?"


이번영 차장은 지난 UAE 프로젝트 때 내가 일하던 프로젝트에 시공 지원을 나왔던 경험이 있다. 그때 3개월가량을 같이 고생하면서 많이 친해져서 자주 도움을 받고 있다. 


"아, 다름이 아니라요. 협력업체에서 101 Substation 지하에 있는 MFD를 벽에 있는 구멍(Wall Opening) 크기와 똑같이 발주를 냈다네요. Opening은 MFD 보다 2.5cm씩 더 커야 하고, 앞 뒤로 Angle도 설치해야 하잖아요? 그래서 벽에 있는 Opening 크기와 같아서 MFD 설치가 불가능해요."


"엥? 우리가 몇 번을 이야기했는데 그런 실수를 했다고?"


"그러니까요. MFD는 벌써 납품됐는데, 아시다시피 지하에 있는 Wall Opening이 벽 안쪽에 있는 거라서 이걸 25mm씩 갈아낸다는 게 말이 안 되잖아요? 건축팀에다가는 부탁도 못하겠어요."


"그걸 누가 해주냐? 나 같아도 안 해주겠다. 아이고... 걔네들 어쩌냐. 안 그래도 계약 금액이 적다고 툴툴거리면서, 또 돈 버리겠네."


"일단 SS101 지하용 MFD는 다시 발주를 내달라고 했어요. 근데, 이 잘못된 MFD를 버릴 순 없잖아요?"


"그렇지. 돈이 얼만데..."


"그래서 제가 차장님께 연락을 드렸죠. 우리 아직 시공 들어가지 않은 건물들 중에, 애들 써먹을 수 있는 건물들이 있지 않을까요?"


"또 나한테 문제 해결해 달라고 연락을 했구먼? 안 그래도 바쁜데 말이야." 


"제가 차장님 없으면 어떻게 일을 하겠어요? 차장님이 도와주셔야죠."


"이게 배기 (Exhaust Air) 용이지? 아직 건축이 작업 들어가지 않은 건물 많으니까, 찾을 수 있을 거야."


"배기 Duct 크기가 작으면 MFD 앞, 뒤로 확관 시켜서 MFD 써먹으면 되지 않을까요?"


"아쭈! 이제 설계까지 하겠네. 알았어. 내가 찾아보고 알려줄게. 급한 건 아니지?"


"그럼요. 써먹을 수 있는 곳만 찾아만 주세요."


"알았다. 또 다른 건 없어?"


"넵. 이번엔 이것만 부탁드릴게요."


"그래. 수고해."


"네. 고생하세요."




해외 EPC 프로젝트에서 시공의 기준은 도면이다. 즉, 도면에 표시된 대로 설치해야 한다. HVAC Duct 크기, 배치, 높이, 보온재의 두께, 설치 방법, Support 설치 위치, 간격 등 설치에 필요한 모든 것들은 도면과 같아야 한다. 실제로 설치 검사 (Installation Inspection)의 기준도 최신 도면 (Latest Drawing)이다. 도면과 다르게 시공했을 경우에는 설치 검사를 통과할 수 없다. 즉, 도면과 다른 것은 틀린 것이다.  


하지만 시공을 하다 보면 도면대로 설치할 수 없는 상황을 자주 만나게 된다. 건물의 구조에 걸려서 도면대로 시공할 수 없는 경우도 있고, 다른 팀이 설치한 부분이 우리가 시공할 부분과 겹치는 (Interface 혹은 Clash라고 부른다.) 경우도 있다. 또 Duct 내의 공기를 분출하는 GRD (Grill/Register/Diffuser)의 앞에 전기 트레이가 설치되어 공기 흐름이 방해되는 경우도 생긴다. 게다가 다른 팀의 서포트가 간섭되어 Duct Heater의 문이 열리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 공사에는 문제가 없으나 유지 및 보수 불가라는 이유로 다시 시공해야 한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는 시공 엔지니어는 관련 문제를 설계 엔지니어에게 문의해서 해결해야 한다. 여러 팀의 시공에서 발생한 Interface는 관련 팀의 설계 엔지니어들이 같이 고민해야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미 설치된 전기팀의 트레이가 설치해야 할 HVAC Duct의 위치와 겹쳐서 설치가 불가능하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경우 시공만을 생각한다면 HVAC Duct를 조금 옮겨서 설치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경우, 설치 결과와 도면이 다르기 때문에 설치 검사가 불가능하다. 즉, 도면대로 시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설치물은 틀긴 것이 되고, 만약에 발주처 검사관(Inspector)이 발견한다면 NCR (Non-Conformance Report)을 발부할 것이다. (NCR을 발행하면, 해당 공종은 공사 중지가 될 수도 있다. 공사 중지가 아니라도 재발방지 대책 제출, 관련 교육 수행 등 NCR을 삭제하기 위해 필요한 절차가 많다.)


도면대로 설치할 수 없는 상황에서 시공엔지니어가 할 수 있는 일은 설계 엔지니어에게 문의하는 것이다. 전기팀이 트레이 설치를 잘못한 것인지, 우리 설계가 실수한 것인지, HVAC Duct를 조금 움직이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지, HVAC Duct는 움직일 수 없고 전기팀이 트레이 위치를 수정해야 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는 것은 관련 팀들의 설계 엔지니어들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도면과 다르게 수정하면 설치 검사가 불가능하므로 마음이 급하다고 설계 엔지니어의 확인 없이 미리 움직이는 것은 비효율적이다. 또 EPC 플랜트는 하나의 공간 안에 설치할 수 있는 팀이 건축, 전기, 계장, HVAC, 기계 등 다양하다. 즉, 설치를 위해서 HVAC Duct를 임의로 움직여서 시공하는 것은, HVAC Duct 설치 후에 공사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다른 팀들의 공간을 내가 침범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해서, HVAC Duct를 설치한 후에 다른 팀이 또 공사가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복잡한 상황들을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바로 설계 엔지니어와 확인하는 것이다. HVAC Duct가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옮겨서 시공해도 괜찮은 것인지 설계 엔지니어들은 다른 팀들의 도면을 검토해서 확인하게 된다. 또 HVAC Duct 설계를 변경해도 괜찮은 지 다른 공종의 설계 엔지니어들에게 확인을 요청해서 문제가 없는지 미리 확인하게 된다. (회람)


이렇게 설계 엔지니어의 확인을 거쳐서 수정한 도면은 발주처에 제출해서 승인을 받아야 해당 프로젝트에서 사용할 수 있다. 자재승인원과 같은 다른 공식문서처럼 도면도 Transmittal을 사용해서 발주처에 승인을 받아야 하고, 제출 후에 근무일 기준 15일 안에 발주처의 답변을 받게 된다. (15일 후에 설치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




설계 엔지니어는 무엇을 어디에 설치해야 하는 지를 결정해서 도면에 표시한다. 그러면 시공 엔지니어는 도면대로 효율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공사를 일정 내에 완료한다. 담당한 업무에 따라서 할 수 있는 업무의 종류가 달라지는 것이다. 시공 엔지니어들은 설계 엔지니어에 설계 변경을 제안할 수 있지만, 설계 변경을 결정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설계 엔지니어의 책임이다. 도면과 달라져야 하는 어떤 변경이라도 모두 설계 엔지니어에게 확인을 요청하고 수정된 도면을 접수한 후에 시공해야 검사(Inspection)를 받고 일을 완료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그렇다면 시공 엔지니어는 도면에 있는 것을 무조건 따라야 할까? 내 개인적인 경험으로 봤을 때는 이것도 정답은 아니다. 만약에 설계 엔지니어가 선정한 공사방법이나 자재보다, 공사 기간 단축에 더 효과적인 방법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제안해야 한다. 결국 시공 엔지니어는 주어진 자원을 가지고 해당 프로젝트를 일정 안에 완료하는 것이 목적이다. 즉, 같은 비용으로 더 쉽고 빠른 방법으로 공사를 완료하는 것이 시공 엔지니어의 능력인 것이다. 


예를 들어, 전통적인 방법으로 HVAC Duct를 설치한 후에 Duct의 보온을 설치할 때 예상되는 기간이 30일이라고 가정해 보자. 만약에 발주처 담당자와 협의해서 (혹은 작업절차서를 통해서 발주처에 승인을 받아서) 미리 보온을 설치한 Duct를 현장에 설치하는 것으로 설치 방법을 변경한다면, 현장에서 Duct 보온을 위해서 필요했던 30일을 10일 이내로 줄일 수 있다. 즉, 시공 엔지니어가 계획을 잘 세우면 남들과 똑같은 공사를 하더라도 훨씬 더 짧은 시간 안에 완료할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회사는 단축한 시간만큼 공사기간을 줄일 수 있다. 회사입장에서는 공사기간을 단축하는 직원이 다른 직원들에 비해서 소중해 보일 수밖에 없다. 


자재, 인원, 장비. 소위 공사관리의 기본이라고 불리는 요소들이다. 건설 현장을 경험해 봤다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쉽게 이야기하는 것들이다. 시공 엔지니어는 이런 뻔하디 뻔한 자원을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공사를 완료하는 방법을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발견해야 한다. 예를 들어, 공사방법을 변경해서 공사에 필요한 시간을 줄이면 인원에 관련된 비용이 줄기 때문에 회사는 인원에 대한 간접비를 줄일 수 있다. 또 더욱 싼 가격에 같은 기능을 할 수 있는 자재를 사용한다면 자재 구입을 위한 직접비를 줄일 수 있다. 장비를 사용하지 않고 공사를 완료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면 이것 또한 직접비를 줄일 수 있다. 물론 이런 방법을 찾는 것이 쉽다는 것은 아니다. 갖은 절차와 안전 규칙을 따라야 하는 해외 EPC 프로젝트에서는 더욱 쉽지 않은 게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이야기했던 것처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경험이 적은 엔지니어는 도면을 따르지 않고 시공하는 실수를 줄여서 재작업을 방지하는 것만으로도 회사에 기여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다. 실제로 나는 선배들이 자신의 경험만 믿고 공사를 진행해서 검사도 받지 못하고, 재작업을 하느라 인원, 자재, 장비에 대한 비용을 두 배 혹은 세 배를 사용하는 경우를 많이 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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