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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Jan 19. 2024

주재원 와이프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2)

여자들의 은근한 정치가 겁이 난다

주재원 특성상 가까운 이웃으로 사는 경우가 많고, 학교를 소개받아서 아이들이 같은 학교에 다니는 집들도 종종 본다. 스쿨버스를 탈 때 아이들을 데리고 나가는 것은 엄마의 역할이고, 아이들이 버스에 타고, 버스가 출발하면 그때부터 슬슬 이야기가 오고 갈 때가 많다.


엄마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각자 맞는 그룹에 맞게 헤어진다. 마트로 바로 가는 사람, 카페로 가는 사람, 학원으로 가는 사람, 약속 있는 사람, 혹은 집으로 가는 사람.


나는 그냥 나 혼자 가도 괜찮은데, 그들에게는 혼자 가는 내 모습은 마치 “친구 없음, 쓸쓸함”으로 보이나 보다. 쭈뼛쭈뼛 대는 나를 향해, “xx 엄마, 같이 가요.”라고 고맙게도 나를 불러주지만, 나는 마음이 편치가 않을 때가 많았다. 그래서 가끔은 살 것도 없는데, "저는 마트 들렸다가 갈게요."라고 먼저 빠지기도 했다. 어느 그룹에 껴서 가다가 이런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한 엄마가 이미 얼굴에 걱정 근심이 가득하고, 같은 회사로 보이는 듯한 다른 엄마가 그녀에게 다가가며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xx님 남편은 요새 어때요? 안 바빠요?"

"맨날 바쁘죠."

"우리도 얼굴을 볼 새가 없고, 술도 너무 많이 마시고, 다들 그러는 건지 모르겠어요."

다가간 엄마는 뭐라도 말을 건네야 하는 상황이었고, 나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내가 낄 내용의 대화도 아니고, 다른 회사라 맞장구치기도 어려운 상황이었다.


"남편한테 물어볼게요. xx 남편 요새 어떤지. 그런데 최근에 듣기로 라인 잘 탔다고 하던데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이하 생략)"


속상해하는 사람에게 위로를 건네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나는 옆에서 이 이야기를 듣는데 조금 부담스러웠다. 남편들 간의 회사 생활 이야기가 일반적인 안부라고 하기에는 공적인 회사의 감정이란 판단이 들었고 한국에서는 일반적인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는 본인의 걱정을 공감해 주고, 남편들이 같은 회사라면 뭔가 현실적으로 해결이 될 도움 될 말도 건네줄 수 있고, 영향력 있는 한 마디를 해줄 수도 있다. 또, 그런 대화를 원할 수도 있고, 남편이 아내한테 하지 않는 이야기를 다른 사람을 통해서 들을 수도 있다. 내가 그렇지 못할 뿐이다.


개인의 대화가 문제가 아니라, 이곳에 오면 어쩔 수 없이 친해지면 이런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주재원의 특성상 자리와 분위기가 사람을 이렇게 만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건가? 아내들의 말 한마디가 과연 영향력이 있는 걸까. 영향력이 없다고 해도 자기 남편들 이야기도 아니고, 남의 집 남편의 회사 생활에 대해서 다른 집 남편이 왈가왈부하는 게 나에게는 어려운 숙제 같은 상황이었다. 다행히 나의 남편 역시 이런 생활을 원치 않았다.


이런 상황을 마주칠수록 점점 나는 말을 더 아끼고, 누가 우리 회사가 어디냐고 물어봐도 그냥 직종만 이야기할 뿐 자세히 대답하지 않았다. 회사가 어딘지 알려주고 싶지도 않았고, 왜 알고 싶은지 목적을 아니까. 회사를 알게 되면, 학비 지원금, 집 지원금 등의 주재 수당이 파악이 되고, 또 자신의 아는 지인과 연결이 되고, 나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가 퍼져 나가고. 또 어디 회사인지 모르면, 거기는 어디인지 캐묻게 되는 일들이 일상이었으니까. 마치 거대한 그물 같은 네트워크에 속해있는 기분이었다. 아. 불편해라.



또 남편들이 서로 계열사의 갑과 을의 관계에 놓인 사이라고 들었다. 선한 인상의 갑의 남편을 둔 아내가 무심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분 역시 그냥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털어놓은 거지만, 속은 이보다 더 심란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나 저분 약간 불편해요. 괜히 나를 볼 때 자격지심을 느끼는 것 같아요. 뭔가 자꾸 다른 사람과 나를 대하는 게 달라요."


뭐라고 답을 해야 할지. 설마, 그러겠나 싶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냥 사람 대 사람, 아이 엄마 대 아이 엄마로 만나는 게 아니라, 어디 회사 남편의 아내라는 꼬리표를 달고 만나게 되면, 상대방에 대해서 선입견을 갖게 되고, 그에 따른 태도가 달라질 수 있다.


나는 아이 친구들의 엄마를 만나면서도, 처음에는 그녀들과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나의 어릴 적 친구들과는 다른 걸 알게 되었을 때,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그런데 주재원 사회, 이곳은 그보다 더하다. 아이뿐만 아니라 남편까지 달고 만나니, 서로 더 눈치가 보인다.


말 많은 부류들이 또 수군대기 시작한다.

"저 집은 회사 주재원이 아니래. 그럼 어떻게 나온 거래?"


음... 다른 집이 회사 주재원이 아니던, 어떻게 나오던, 궁금하면 직접 물어보면 되지, 아니면 또 누군가 영업사원을 하던, 은행을 다니던, 그게 왜 중요한지, 뭐가 그렇게 궁금한 것도 많고 관심이 많은지는 잘 모르겠다.


여자들끼리 타지에 나와서 이런 감정 소모적인 느낌을 갖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지는 않을 것 같다. 보통의 아내들은 그러려니 넘어가기도 하고, 또 실제로 싸움이 생기기도 하지만, 나 자신을 아는 내 성격상 나는 초반부터 발을 담그지 않은 게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많았다. 나의 뇌는 작은 지 해외생활 하면서 아이 학교 보내고 일상 살아가는 것조차도 벅차던데. 현실은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은 찾기가 힘들다. 다들 조용히 살기 때문에 어디에 있는지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몇 년 뒤, 드디어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우연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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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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