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공장이 돌아간다
12월에 남편이 심해지는 감기 증상으로 외국인 병원에서 진료보고 80만 원을 내고 왔었다. 처방약도 효과가 없었고, 계속 심해지는 증상에, 폐에 쇳소리가 심해져서 큰 병원을 가야겠다고 직원에게 연락을 한 후, 어이없게 올여름 한국에서 처방받아온 비염약과 가래약을 먹고 며칠 사이에 호전됐다.
한국 처방약은 정말 훌륭하다. 어떻게 감기에 걸릴 증상들을 미리 예상해서 비염약, 가래 기침약, 소화제, 소염제, 항생제까지 증상에 따라 골라먹을 수 있게 처방을 참 잘한다.
콧물, 기침, 가래 등의 감기 증상이 있어도, 푹 쉬고 며칠 앓다가 가볍게 지나가면 그만이지만, 커렁커렁하는 폐에 소리까지 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는 항생제 없이 나을 기미가 없으니, 과하다 싶을 정도로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해외살이를 하다 보니 아프면 간이 콩알만 해져서 겁부터 나고, 콧물이 흐르거나 기침만 해도 나는 비상 모드로 돌입한다. 최대한 증상이 더 심해지지 않게 막는 게 나의 역할이다. 아들의 초기 감기 증상에 비상모드로 진입하고, 주방 공장이 돌아가기 시작했다.
1. 누가 기침을 하고 목이 쉬기 시작한다? 바로 배를 주문해서, 베이킹 소다로 박박 닦고, 껍질채 조각을 내서, 말린 생강, 통후추, 계피, 대추, 도라지, 감초(있으면)를 넣고 2-3시간을 팔팔 끓여서 배즙을 만든다. 간단하게 배와 도라지, 계피, 통후추만 넣고도 끓인다.
원래는 약탕기 같은 걸로 편하게 끓였는데, 급한 성격 탓에 일찌감치 이웃한테 중고로 넘겨서 지금은 냄비에 물 쫄여가며 끓이고 있다. 한국에서 안 하던 행동을 중국에 와서 많이 한다.
2. 누군가 콧물을 훌쩍이는 즉시, 주문해 놓은 소금물 농도 0.9%로 코를 세척시킨다. 하루에 2-3번이면 금방이니, 다음 소금물을 징동에서 여분으로 주문한다. 휴대용 네블라이저도 쓰고, 호흡기와 입은 연결되어 있으니, 워터픽도 평소보다 꼼꼼히 해준다. 코세척기는 막힌 코도 뚫어주고, 이물질도 세척해 주니, 코감기에 효과가 참 좋다.
3. 집안에 습도를 높이기 위해 가습기들을 Max로 켜고, 물에 비염에 좋다는 유칼립투스 오일을 2-3방울 떨어뜨린다. 온 집안에 푸르른 유칼립투스 향기가 퍼진다.
4. 전복을 주문해서 전복죽을 끓인다. 처음에 주문을 잘못해서 전복이 달랑 3마리가 배송되어서, 누구 코에 붙이나 싶어 4마리를 더 주문했다. 죽은 보통 밥으로 끓이는 데 맛은 비슷하다.
5. 비타민 C, 프로폴리스 비타민, 가글, 항염에 좋다는 GSE 등을 최대한 섭취 및 활용한다. 아이허브에서 주문한 이 GSE로 양치할 때 칫솔에 한 방울 묻혀서 양치도 하고, 가글도 하고, 살짝 쓴 자몽맛이 나는데 구순염에도 효과가 좋은 것 같다. 나는 피곤하면 혀가 잘 갈라지고 혓바늘이 나는데, 그때마다 GSE를 활용한다.
초기 증상에는 감기사탕, 천연시럽, 인후염 스프레이로 최대한 버티는데 경미한 증상이면 해외 직구의 천연 시럽으로 감기와 작별할 수 있다. 점점 희한한 민간요법만 늘어나는데, 여전히 맞는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중국에 온 이후로 항생제를 먹은 건 한 손가락 안에 뽑을 정도로, 감기로 약을 먹을 일이 없었다. 코로나 전까지는.
6. 따뜻한 국, 차, 물을 많이 마신다. 김치 콩나물국, 무황태국 등 뜨끈한 국물, 귤껍질 차인 진피차(귤피차), 도라지차, 유자차, 꿀물 등을 대령하고, 따뜻한 물을 수시로 마시게 한다. 홍콩 기침 시럽인 닌지옴 페이파까오도 초기 감기에 좋다는데 목이 부었을 때 도움된다.
초기 감기는 이렇게 챙겨주기만 해도 증상이 조금씩 호전되어서 굳이 약을 먹지 않아도 나을 때가 많다. 하지만, 초기 감기 없이 갑자기 열부터 시작되는 감기도 있다. 이번이 그랬다. 그때는 이미 조용히 목이 붓고 숨은 가래와 코가 막혀서 증상 없이 목이 이미 쉬었을 때다. 타이레놀과 체온계를 들고 독감 대하듯 태도를 바꾸고, 열이 안 떨어질까 봐 조바심 나서 항생제를 들고 먹일 타이밍을 보며 전전 긍긍하게 된다. 한국 처방약 없이는 열이 떨어지지 않는다.
해외살이는 병원으로 인해서 고생할 때가 정말 많다. 제대로 된 약을 처방받지 못해 효과가 없기도 하고, 비용도 비싸니 병원 한 번 가는 것도 큰맘 먹고 망설이다가 도저히 안 되겠으면 돈 한번 생각하고 간다. 한국에서 쟁여온 약들은 꼭 필요할 때는 없거나, 유통기한이 한참 지나있다.(유통기한이 지나도 문제는 없지만, 약 효과만 좀 떨어진다고 함) 처방약이 아니면 약이 안 들을 때가 많아서 이 약 먹다가 안 들으면 우리 마음대로 저 약으로 바꾸기도 하고, 몸이 상할까 봐 좀 걱정이다.
그래서 약을 먹을 정도가 되기 전에 스스로 면역을 높여야 해서, 나는 발을 동동 구르며 집안 공장을 돌리고 비상모드에 돌입하기 시작한다. 아들은 어제부터 가래가 살짝 끓고, 콧물을 훌쩍여서 비상모드에 들어갔지만, 이번엔 갑작스러운 열이 나서 당황했다. 남편이 집에 없으니 혹시 모를 상황에 더 긴장하게 된다. 코로나 이전에는 중국에 온 뒤로 감기에 거의 걸리지 않아서, 중국 살만하다고 좋아했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확실히 잔병치레가 많아진 것 같다.
이틀 전에 불려놓은 녹두를 더 둘 수가 없어서 어제는 야밤에 주방에서 쉬지 않고 녹두전까지 부쳐서 냉동실에 넣어놨다. 불린 녹두를 보고, 껍질을 까면서도 ‘이걸 버려, 말아?’, 숙주를 물에 데치면서도, ‘이걸 버려 말아?’ 녹두 반죽을 물 조절을 잘못해서 양이 늘어나버리고, 기름에 부치면서도 남은 반죽을 바라보며, ‘이걸 버려, 말아?’ 하다가 밤새 다 부쳤다.
한국에서는 녹두전이 뭔지도 몰랐고 만들어 본 적도 없는데, 먹고살려고 내 맘대로 녹두 불리고 껍질 가서 녹두전도 만든다. 이러다가 내가 병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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