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한인타운에 집을 구하다
살다 살다 집을 구하다가 사기 비슷한 경우를 겪은 경우는 처음이었다. 해외살이에서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 한다는 걸 중국살이 초기에 경험했다. 그냥 정해진 수순에 따라서 부동산에서 구해주는 대로 한인타운에 살았다면 겪지 않았을 일이지만, 인생의 실패 경험은 늘 언젠가는 돈주고도 살 수 없는 인생의 큰 자산이 되기도 한다.
베이징에 머물면서 집을 구하니, 언제든 달려가서 집을 구경할 수 있어서 편리하기도 했다. 호텔 장기 투숙이 흥미진진하기도 했지만, 점점 빨래와 취사의 불편함에 지쳐가던 시점, 한인타운 근처에서 그나마 마음에 드는 집을 찾았다.
보통 임대를 위한 집이라서 가구가 뒤죽박죽 짝짝이인 경우가 많고, 체리색 몰딩에 중국 고가구 스타일의 어두운 분위기가 많은데 이 집은 현대적이고 딱 있을 것만 있는 집이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아무 때나 입주할 수 있는 빈집이라, 사진으로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서 저녁에 남편의 퇴근 후, 함께 보러 갔다.
그런데,,, 온 방에 방문이 안 달려있다. 집주인은 인테리어상 일부러 설계했다고 하는데, 화장실까지 문이 안 달려있는 건 많이 난감했다. 그리고 희한하게 중국 세탁기는 기본 5kg이라서 큰 세탁기를 찾기도 어려웠다.
젊은 집주인과 문을 달아줄 수 있는지를 가지고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주인을 설득하지 못하고, 모두가 모든 소리를 공유하는 집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인테리어에 빠져서 그냥 이 집을 선택하려고 했으나, 남편은 화장실에 문이 없는 방에 대한 충격이 컸다.
3주 간 조선족 부동산과 한인타운 근처에 한국 사람들이 선호한다는 아파트 위주로 집을 둘러보았지만, 마땅한 곳이 없었다. 날짜가 안 맞거나, 위치가 별로거나, 층이 낮거나, 가격이 너무 높거나 이유는 다양했다. 이미 나의 마음은 동화마을에 푹 빠져있었고, 조선족 부동산이 이를 해결해주지 못하자, 우리가 스스로 집을 알아보기로 했다.
남편은 부동산 앱을 하나 알아왔고, 거기서 지도를 통해서 우리가 원하는 지역을 정해서 집 스타일과 가격을 정해놓고 몇 가지 집을 주말에 보려고 생각해 두었다. 해당 앱에서 중국 직원 버튼을 누르면 위챗으로 대화를 하는 듯했지만, 직접 동네도 구경할 겸, 주말 나들이로 중국 택시인 Didi를 타고 목적지 동네로 향했다.
호텔 이름을 우리가 중국어로 발음하면, 택시 기사들도 성조 때문에 잘 알아듣지를 못해서, 호텔 명함을 들고 다녔는데, Didi는 목적지를 이미 지정하고 가는 거라서 쉽게 이용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용감한 우리 가족은 부동산 같아 보이는 곳에 들어가서 "집을 볼 수 있나요?"라고 하고 싶었지만, 담배를 여기저기서 피워대는 정장 입은 부동산 직원들을 향해 누구 하나 입을 뗄 자신이 없었다.
다들 겁만 먹고 우리끼리 가보자며, 지도의 핀이 가리키는 집의 건물을 찾아갔는데, 이상했다. 앱의 사진과 다르게 입구도 없고, 오히려 막힌 길이 떡하니 나왔다. "이게 아닌데? 이상하다."
주위만 빙빙 돌다가 안 되겠다 싶어서, 용기를 내서 그나마 인상이 가장 선해 보이는 아저씨를 향해서 그나마 할 줄 아는 말인 "니하오!"를 하고 번역기를 들이밀었다. "우리가 집을 몇 개 찾았는데, 직접 보고 싶어요." 물론 대화가 전혀 통하지 않아서, 부동산 직원과 위챗 친구를 추가해서 위챗으로 무안하게 도로에 서서 서로 무언의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에게 기대하지 않은 황당한 답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집은 없어요. 가짜예요."
"네? 집이 어떻게 가짜집이 있죠?"
"사진만 찍어서 짜깁기 한 집이에요. 집 볼 때 유의해야 해요."
우리가 예쁘다고 저장해 놓은 집들은 모두 가짜집이었다. 중국에 아무리 짝퉁이 판을 친다고 하지만, 집까지 가짜집일 수가 있다니,,, 그쪽에서 집을 볼 수 있다는 한 집을 보려고 했는데, 주인이 열쇠가 없어서 기다려야 한다고 며칠을 기다리다가 집을 볼 수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를 듣고 포기하기로 했다.
결국 우리는 모든 우리의 바람을 접고, 조선족 부동산과 한국인이 많이 사는 한 아파트에 집을 구하게 되었다. 호텔 난민살이를 한지 거의 한 달 되어가는 시점이었다. 아직도 한국에서 보낸 우리의 이삿짐이 도착하려면 보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지만, 미리 구한 집에 들어가서 정착이라도 하고 싶었다.
전실이 없이, 문을 열면 전실이 없이 바로 거실인 중국집도 신기했고, 우여곡절 끝에 이곳에서 우리의 파란만장한 베이징살이가 시작되었다.
좀 신기했던 건, 보통 한국에서는 이 부동산에 물건이 없거나, 부동산 담당자를 바꾸고 싶으면, 다른 부동산에 문의해서 다른 집을 보는 게 너무 당연한 절차였고, 언제든지 변경이 가능했다. 당시 우리 담당자가 너무 초보 직원이라서 다른 소개받은 사람한테 변경하려고 했으나, 내부적으로 그들끼리 암묵적으로 계약이 있는지, 또 서로의 영역 싸움, 즉 밥그릇 싸움을 할 오해의 소지가 있는지 담당자를 바꿔주지 않았다.
우연히 소개받은 담당자한테 연락을 하니, 원래 담당자한테 다시 전화가 와서 "제가 더 신경 써 드릴게요. 저랑 해요." 이러는 바람에 담당자를 바꾸지도 못했다. 담당자를 바꾸려면 아예 다른 부동산 회사로 연락을 해야 했다.
난 불편해도 된다. 쇼핑몰도, 학원도, 지하철도, 차도 다 필요 없었다. 그냥 주변에 마트만 있는 조용한 곳을 원했지만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사진 출처 : Pixab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