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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llie 몰리 Jan 26. 2024

주재원 와이프 모임에 안 나가는 이유(3)

말도 많고, 모임도 많고, 목적을 갖고 접근한다

주재원들의 회사는 갑작스레 들어가고 나가는 이동이 많다. 해외에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갑자기 한국 복귀 발령을 받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필요에 의해서 반대로 급하게 해외로 나오는 사람들도 있다. 알아볼 시간이 여의치 않아서 그런 건지, 아니면 이미 적응한 편한 한국 사람을 통한 루트를 이용하고 싶은지 이유는 모르겠지만, 집을 구하거나 학교를 구할 때 회사 선배의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 지원해서 다니거나, 회사 선배나 지인들이 사는 집을 찾기도 한다. 아예 귀국하는 가족들의 집을 이어서 받는 경우도 있다. 우리와 달리, 아는 사람과의 교류가 편한 사람들이다.


새로 발령받은 남편들은 현재 살고 있는 주재원 가족생활의 고충과 애로사항, 해외살이 경험, 그리고 가장 궁금한 것 중의 하나인 자녀들의 국제학교 생활 정보나 아내들의 현지 적응 상황 등 궁금한 이야기를 묻기도 한다.



문제는 말의 시작이다. 기존의 어떤 스토리가 아는 사람들의 선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한테도 퍼진다는 거다. 허심탄회하게 중국 생활과 고민을 이야기하다가, 결국은 그 일을 모르는 사람한테도 속사정이 퍼지기도 한다. 이렇게 그냥 답답해서 내뱉은 말들이 당사자는 모른 채 돌고 돌아서, 나중에 속상함을 품고 있는 사람의 귀에 들어가는 황당한 일이 생기기도 한다.


또, 이미 들어오기 전에 그 집의 내막을 아는 경우도 있다. 당사자는 아무것도 모르는데, 현지에 있는 사람은 새로 발령받은 가족의 아이는 몇 명인지, 학년은 어떤지, 어느 동네에서 왔는지 다 알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좁은 사회이다 보니 새로오는 가족들에 대해서 궁금함과 관심도 많고 반가운 마음일 수도 있지만, 때로는 그 관심이 지나치면 독이 될 수도 있다.



엄마들의 경우에는 동네 아파트 엄마들 모임, 학교 엄마들 모임, 학년 모임, 또 어쩌다가 만들어진 모임, 학원 모임, 운동 모임 등 모임의 종류가 참 많다. 학교 행사나 정기 모임이 아니면 정해진 모임이 아니라도, 주로 모여서 다니는 경우가 많다. 루트가 비슷하니, 마트, 운동, 병원을 같이 다니기도 한다. 학교 행사에서도 얼굴 보고 그냥 헤어지는 게 아니라, 주로 밥모임으로 이어질 때도 많아서, 하루가 참 길어지고 집에 오면 지치는 일들이 많다. 물론 개중에 반가운 사람들도 있지만 늘 단체로 모이니 또 불편한 자리가 된다. 중국은 위챗으로 모든 연락을 하기에 위챗 단톡방이 넘쳐나는 지경이 된다.


이야기를 듣다 보면 결국은 학교 이야기나 애들 이야기를 하게 되는데, 국제학교는 이메일로 각 부서에, 심지어 교장 선생님한테까지 모든 컴플레인과 각종 질문이 가능함에도 불구하고, 학교가 다르면 학교 비교, 학년, 반에 따라서 담임 선생님에 대한 비교, 또는 학교 담당자의 일처리에 대한 불만이 나오기도 한다. 교육 정보 교환의 자리라고도 할 수 있지만, 별다른 해결 없이 험담처럼 끝이 날 때도 많다.


아내들만의 골프 문화 외에, 남편들도 골프 회원권을 저렴하게 구매한 후, 회사에서 주말에 골프 칠 사람들을 모아서 모임을 한다. 새벽부터 김밥을 주문하고, 커피를 주문해서 주말에 오후까지 골프를 즐기면, 아내와 아이들은 주말에 각자의 시간을 보내게 되고, 가족의 주말이 이곳에서는, 사적으로 동네 이웃이 되어버린 회사 사람과의 연장선에 묻히기도 한다.


내향형 가족이자, 주말에는 가족의 개인 시간이 필요한 우리 집 남자는, 한 손에 꼽을 정도로 정말 필요에 의한 골프 약속을 제외하고는 골프 모임을 가지 않았다. 본인이 골프를 즐기지도 않고, 주말에는 가족과 놀고 시간을 보내야 한다는 생각이 강하다. 개인적으로 친하거나 본인을 좋아하는 직원들과 즐긴다면, 그 시간을 오롯이 휴식과 진정한 게임의 승부에 쓰며 유쾌하게 즐길 수 있다.


하지만, 불편하고 소모적인 짜 맞춰진 모임 문화는 때론 부담이 되기도 한다. 순수하게 정말 골프만 즐기러 가는 게 아니라, 윗사람을 챙겨야 하니 마음이 편할 수가 없다. 커피를 사람 수에 맞춰서 준비해서 가기도 하고, 각자 맡은 해야 할 역할이 있다면 그건 업무의 연장선이기 때문이다.



갑자기 누군가 다가온다. 시작은 가벼운 커피 한 잔과 밥 한 끼다. 친해지자며 다가오는 사람들 중에는 주변 사람에 대한 정보를 넌지시 떠보기도 한다. "누구랑 친해요?", "누구는 어때요?" 가볍게 커피나 밥을 먹으러 갔다가 소위 말하는 탈탈 털림을 당한다. 초반의 스캔으로는 모자란가 보다.


다른 엄마의 정보를 캐거나, 제삼자에 대한 나의 관심을 떠보며 무슨 의중인지 모르겠지만, 의미 없이 괜히 시간 버리고 돈 쓰는 경우를 겪기도 한다. 물론, 서로 잘 모르다가 관심이 있어서 차 한 잔 하자고 다가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지 않은 경우도 있어서 잘 구분해야 한다. 물론 나는 "그분 좋은데요? 왜요?"라고 이야기를 한다. 나의 대답이 Yes인지, No 인지에 따라 제삼자에 대한 주제의 방향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 자리에 없는 사람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말리면 이간질이 시작될 테니.


나 같은 유형의 사람은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지 않으면, 밤새 그 하루가 찝찝하고 내가 오늘 무슨 말실수한 게 없는지 곱씹게 되고, 몇 날 며칠 그 일이 떠오르다가 그게 스트레스로 작용해서 몸이 아프기도 한다. 이런 경우는 아이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발달이 빠른 영악한 친구들은, 안 배웠으면 좋을 법한 어른의 흉내를 내어서 왕놀이를 하듯, 일명 군기반장 역할을 하는 친구들도 있다.



자신이 원하는 대로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사는 데도, 상대의 입장에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을 하게 되면 그 모습을 고깝게 보는 시선들이 종종 있다. 마치 운전기사라도 된 것처럼 상사 분들의 아내들을 태우고 다닌 사람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듣기도 했고, 개인의 사생활을 침해받은 사람의 이야기도 들었다. 그렇게 해도 눈 밖에 나거나 눈총을 받는 결과가 생기자, 결국 거리 두기를 선택했다. 해외살이는 숨만 쉬어도 에너지 소모가 많이 되는데, 감정적으로까지 겹치면 현타가 온다.


여러 경험과 초기 정착 시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나는 주재원 와이프 모임에 나가지 않고, 개인적으로 편한 사이가 아니면 굳이 만남을 가지지 않았다. 그래도 어쩔 수 없이 겪어야 하는 여러 불편한 상황을 거듭 마주한 끝에, 결국은 나에게 맞는 환경을 찾아서 떠났고, 그곳에서는 떠나면 아쉬울 정도로 단조롭지만 나에게 맞는 소중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초기 정착 시절의 경험이 허비되지 않았던 건,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고, 그 이후의 시간은 새로운 환경에서 좋은 사람들을 만나며 내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코로나라는 복병이 찾아오기 전까지는.


*사람들은 저마다의 취향과 개인 관심사, 그리고 호불호를 가지고 있다. 나는 내향형인 사람이라, 사람이 많은 곳에 있으면 금방 에너지가 소진되고, 스트레스에 취약해서 좁은 인간관계를 즐긴다. 또 개인 주관이 강하다 보니 남들이 하는 대로 따르는 게 아니라, 직접 경험하고 부딪치고 사는 게 편했다. 외향적인 사람은 외향적인 대로의 문화가 있고, 나 같은 사람들은 생활 반경을 넓히지 않고 소소한 일상의 삶을 즐긴다. 그 문화가 편한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을 뿐이다.


이 글은 내향적인 나에게, 기존의 주재원 아내들이 가지고 있던 관습을 따르는 게 당연하다고 여겨지고, 또 남들이 사는 방식대로 사는 게 정답이라는 은근한 강요가 불편했던, 당시의 나의 지극히 개인적인 감정을 적은 글이다. 보통은 싫어도 따르는 사람도 많지만, 그들 역시 뒤에서는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았다. 내가 이곳에 온 목적은 남편을 내조하는 아내이자, 아이를 키우는 엄마다. 주재원 가족이라도, 삶의 터전만 옮겨졌을 뿐 나는 그냥 나이다.


사진 출처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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