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마트 신입 직원 트레이닝 이야기
백그라운드 체크가 끝나고 Form I-9 작성을 통해서 나의 신분 조회와 합법적으로 미국에서 일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정상적인 Onboarding 절차가 진행되었다. 메일 속의 안내대로 영주권 카드를 준비하고, 첨부된 어떤 링크를 누르자 갑자기 예상치 못했던 영상이 연결되면서 사람이 인사를 하는 등 갑작스레 영상통화가 걸리는 바람에 많이 당황했었다.
영상 속의 미국인은 내게 영주권 카드 실물의 앞 뒤를 카메라를 통해서 보여달라고 요청했고, 실제 정보와 매칭이 되는지 번호를 묻기도 했다. 그렇게 정말 최종 관문을 거쳐 드디어 담당 팀으로부터 'XX 마트 Start Date'란 이름으로 메일이 도착했다. 그 메일 안에는 내가 다운로드해야 하는 앱들과 Time Availability(근무 가능 시간)을 적는 종이, 그리고 내가 해야 할 알 수 없는 마치 암호 같아 보이는 내용들로 가득했다. 또, Training Start Date란 제목으로 진짜 출근을 앞서 집에서 끝내야 할 온라인 교육 내용이 안내된 내용들과 마트 현장 교육 일정을 여러 개 주고 가능한 시간을 회신 달라고 했다.
메일을 보는데 지원할 때의 패기 넘치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번역을 하고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한글로도 알 수 없었기에, 메일을 여러 번 보내서 내가 잘 이해한 게 맞는지 질문을 재차 하기도 했다. 또 근무 가능 시간을 적는 종이에는 주말과 저녁이 가장 바쁘니 그때는 꼭 해야 한다는 어투의 글이 적혀 있어서, 마음을 다잡고 지금까지 주말은 쉬는 날이었던 나를, 앞으로는 바뀌어야 할 새로운 나로 리셋했다.
이런 트레이닝을 받아본 게 언제였던가. 한국에서도 결혼하고 긴 시간이 지나지 않아 전업주부를 해야 했던 환경이라 짧은 직장 생활을 했지만, 이 미국 마트의 교육 내용보다 어려운 교육을 받아보지 못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걸 되지도 않는 영어로 해야 하니 부담이 더 컸고, 대충 넘어가지 못하는 성격이 발목을 잡아, 아이한테 빈 노트를 얻어서 거기에 메모를 하며 적기 시작했다. 쓰고 보니 거의 스프링 노트 1권이 가득 찼다.
교육 내용은 이 마트의 가치관인 고객 우선주의, 운영 우수성, 고객을 만족시키는 일 등에 대한 내용으로 시작되었다. 매장의 각 직급이 소개되고 그 역할이 각 내용에 맞게 아주 자세하게 세분화되어 있었다. 알레르기 교육이 있었는데 알레르기의 종류는 무엇인지, 알레르기 반응 시 행동요령은 무엇인지, 교차 오염은 어떻게 일어나는지 등, 식품의 위생과 이 음식이 오는 과정 및 처리되는 과정까지 마트에서 일어나는 모든 내용을 총망라하는 교육이었다.
약간은 내 부서가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알아야 하는 내용이라고 생각되는지 타 부서에서 사용하는 기기나 라벨 읽는 법, 상품의 라벨 종류, 가격 표시판, 프로모션, 그리고 위험한 화학적 독성 위험 물질의 분류까지도 있었다. 또 일을 하면서 부상 방지를 위해서 물건을 어떻게 들고 옮겨야 하는지, 관절 움직임의 방법과 염좌 예방 방법, 재고 처리 방법과 나의 책임 의식까지 정말 이제껏 본 적 없는, 아니 수능 영어 지문보다도 어렵다고 느껴졌던 트레이닝 내용이었다.
Theft Prevention이라고 물건을 훔쳐가려고 하는 듯한 고객이 보이면 어떻게 행동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직원이 물건값을 계산하지 않고 가져가는 걸 발견하면 어떻게 행동을 해야 하는지 등 여러 예상 상황들에 대한 매뉴얼도 아주 상세했다. 특히 음식 취급을 하는 쪽은 온도나 식품 위생에 대한 내용이 많았는데 각 트레이닝마다 중간중간에 퀴즈가 나오기도 하고, 이 트레이닝을 마치면 일정 이상 점수가 있어야 교육 과정을 패스하기에 너무 어렵고 며칠간 컴퓨터 앞에 앉아서 끙끙거리며 씨름을 했다.
트레이닝 목차 앞에 예상 트레이닝 시간이 30분이라고 쓰여있다면, 나는 번역하랴, 이해하랴, 검색하랴, 노트 필기하랴, 30분이 아니라 3시간은 족히 걸렸던 것 같다. 이 모든 트레이닝은 내가 교육하는데 투자한 시간을 적고, 그 시간을 시간당 계산해서 페이를 받는 유급 트레이닝이라서 이 시간을 사실대로 적어야 하는 것도 너무 부끄러웠다. 그래서 실제 시간이 아닌, 예상되는 시간의 1.5배로 적어서 약간의 외국인임을 감안해 달라는 느낌을 얹었다.
이런 전문적인 지식 이외에 내가 가장 신기하면서도 오싹했던 교육내용들이 있다.
바로, Active Shooter Training(총기대응법)과 Diversity, Equity & Inclusion (DEI) Training(다양성 교육)이다.
이곳은 미국. 언제 어디서든 총기 사고가 날 수 있다 보니, 직장 내에서도 총기 사고에 대비한 교육을 한다는 게 너무 신기했다. 교육 자료의 비디오도 너무 실감이 나서 진짜 그런 상황이 나면 무서워서 어쩌지? 교육이고 뭐고 그냥 소리 지르고 울 것 같은데? 이런 상상도 하며 교육을 이수했다.
총격 슈팅 발생 시에는 가장 중요한 게 Run(달리고), Hide(숨고), Fight(싸워라.) 이게 기본 메시지였다. 평상시에 Exit를 알아두고, 가장 빠른 출구로 달려가서 문을 닫고 문을 열지 못하게 무거운 물건들로 막으며 바리케이드를 만들고. 불을 꺼야 한다고. 그룹으로 뛰지 말고 흩어져라, 전화 불빛도 끄고 무음 모드로 바꾸고 경찰이 안전하다고 할 때까지 기다려라.
혹시나 최후의 수단으로 싸워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소화기 같은걸 눈에 뿌리거나 주변 물건들로 너를 방어하라고. 안전하다면 911에 신고하고, 경찰이 도착했을 시에도 어떤 식으로 행동해야 하는지 행동 요령에 대한 영상 교육과 퀴즈가 제공되었다.
또 어떠한 경우도 차별금지와 직장 내 괴롭힘 및 성희롱 금지에 더해 제일 어려웠던 분야는 바로 성차별을 금지하는 동성애 교육이었다. 여러 성의 내용들이 열거되고, 전문적인 지식으로 설명이 되어도 번역해도 듣도 보도 못한 성별들로 무슨 말뜻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서 이 부분은 대충 넘겨서 봤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일하면서 보니, 이 교육이 왜 필요한지가 이해되는 상황들을 많이 목격하게 되었다. 내세우거나 튀지 않아 몰랐지만 지내고 보니, 내가 생각하는 성별과 다르기도 하고, 자신이 불리고 싶은 대명사를 알리기도 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만으로 선입견을 꼭 가질 필요는 없다는 경험도 하게 되었다.
합격의 기쁨도 잠시, 장작 며칠에 거쳐서 마트에서 제공된 내가 해야 할 필수 온라인 트레이닝을 이수했고, 교육 시간을 적는 종이에는 말도 안 되게 짧은 시간을 적어서 제출했다. 내가 사용한 시간을 다 적기에는 나 자신이 무능력해 보이기도 했고, 교육 시간 내용을 보고 오퍼를 취소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또, 내가 부족해서 할애한 시간을 그만큼 돈으로 다 받는 비양심적인 행동을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도 꽤 자세한 교육 덕에 매장으로 출근을 하기에 앞서, 조직도는 어디서 보는지, 휴가는 어디서 신청하는지, 페이 관련은 어디에서 보는지, 궁금한 질문들은 어느 라인을 통해서 하는지, 내가 해야 할 역할의 매뉴얼은 무엇인지, 지켜야 할 룰은 무엇인지 누가 설명해주지 않아도 한번 훑고 간다는데 있어서 꽤 도움이 됐다. 물론, 휴가 쓰는 법과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문제들과 질문들은 지금도 끊임없이 하고 있지만 말이다.
이제 매장 출근만 남았다.
대문 사진 : Kiko Camaclang,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