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이제 달러 버는 여자랍니다.

한국 이름으로 받은 첫 알바 주급 $

by Mollie 몰리

트레이닝이 끝나고 드디어 혼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모든 게 전산화, 시스템화되어 있으니 나처럼 기기에 약한 기계치는 이해력도 딸리는 데다가,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영어로 혼자서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트레이너를 포함해서 주변에 물어물어 도움을 많이 받았다.


미국도 처음, 슈퍼마켓 알바도 처음, 그냥 모든 게 낯설고 처음인데 시작하면 완벽해야 성에 차는 꼼꼼한 성격은 나 자신은 물론 주변도 달달 볶아댔다. 혹시 모를 뒷일까지 걱정하고 대비를 하니,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들이 계속 늘어났다.


만일 이렇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해?

내가 이거 이해한 거 맞아?

온라인 교육에선 이렇던데 이해가 안 가.

내가 뭐 잘못 눌렀나 봐. 전 화면으로 어떻게 가?


내가 도움을 요청하지 않으면 누가 나서서 날 도와주는 사람은 없었지만, 반대로 내가 도움을 요청하면 다들 친절하게 도움을 주었다. 어느 순간에 트레이너의 껌딱지처럼 수시로 질문을 하며 내가 맞게 하고 있는지 확인을 했고, 지겨울법한 같은 질문들에도 짜증 섞인 말투나 표정 한 번 없이 마치 처음 설명해 주듯이 이야기해 주는 그가 너무 고마웠다.


내가 헤매고 있으면 Is everything all right? 하면서 상태 점검을 해주고, 그는 자기가 근무하는 요일을 알려주고 메신저에 나를 추가해서 혹시 일하다가 궁금할 때 자기한테 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답을 해주겠다고 했다. 너무 든든하고 감사했고 일하면서 처음 알게 되어 의지한 사람이라 정이 많이 갔다.

© Mollie

내가 하도 불러대자, 자신의 점심시간에 나를 도와줄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는지 다른 팀원을 내게 보내서 그가 너를 도와줄 거라고 메시지를 남겨놨는데 내가 이곳 슈퍼마켓에서의 적응을 했던 건 이 트레이너의 역할이 컸다. 만일에 처음 만난 사람이 까칠하고 말 꺼내기 불편한 성격의 트레이너였다면, 지레 겁먹고 도망갔을 것 같기도 했다.

© Mollie


수습 기간 동안에 지각을 하는 불성실한 모습을 보인다거나, 업무 내용을 이해 못 한 사람으로 찍힐까 봐 늘 일찌감치 출근 도장을 찍고, 내 구역으로 가서 준비를 하고 남들보다 몸을 두 세배로 움직였지만 눈에 보이는 성과는 내겐 보이지 않았다. 2시간 정도를 일하면 Paid Break가 있어서 의무적으로 15분씩 휴식을 갖는데 시간이 얼마 지난 지도 모른 채 쇼핑에 심취해 있었다. 트레이너한테 보내야 할 내용을 실수로 단톡방에 보내기도 하고 무슨 정신으로 일을 하고 있는지 계속 긴장의 끈을 놓을 수가 없었다.


경단녀 20여 년 차, 40대 아줌마가 언어가 불편하고 문화가 다른 미국에서 살아남으려면 몸도 남보다 빠르게 움직여야 했고, 잘 웃고 친절해야 했으며, 서비스는 기본적으로 탑재되어있어야 했다.



이름도 문제였다.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것부터가 대화의 시작인 미국에서 내 한국 이름은 그들에게 발음하기가 쉽지 않았다. 외국인들이 읽으면 꽤나 우스꽝스러운 발음이 되기도 하고, 그들이 나를 불러도 저게 내 이름인지 나도 잘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부르기 쉽고 편한, 예쁜 영어 이름을 정하고 명찰을 받았다.


하지만, 신분증과 다른 영어 이름으로 갑자기 나를 소개하고, 그 이름으로 불리자 뭔가 내 이름 같지 않고 남의 옷을 입은 느낌이 어색하고 낯간지러웠다. 무엇보다 회사 계정에는 페이와 세금 문제로 인해서 Preferred name이 아니라 온라인이나 서류상에는 법적 이름인 Legal name이 필수였다.


그러다 보니 리스트를 인쇄하면 늘 혼선이 생겼다. 한국 이름과 나의 영어 이름이 매칭이 되지가 않으니 내가 누군지를 잘 몰라서 그때마다 그게 나라고 설명을 하는 게 귀찮아졌고, 내가 자아가 두 개가 된 듯했다. 트레이너 및 몇몇 미국 동료들에게 내 한국 이름을 발음해 보라고 하자, 처음엔 어색한 듯했더니 곧잘 비슷하게 잘 따라 하는 게 아닌가.


이 정도면 괜찮겠다 싶어서 그냥 내 한글 이름을 쓰겠다고 수정해 달라고 요청했다.

과연, 그들이 내 이름을 잘 부를까?

결과적으로는 한동안 짬뽕이 되었다.


이름이 어려우니 명찰을 봐도 잘 부르지 않는 사람, 발음을 물어보며 읽기를 시도하는 사람, 이름 중에 가장 쉬운 글자를 한 글자만 부르는 사람, 아예 성을 부르는 사람 등 이름이 5개가 되었다. 슈퍼바이저들조차 이름을 잘못 불러대기 일쑤였다.

일한 지 1년이 지난 지금은 자연스럽게 1개로 통일이 되었고 이제 동료들이던, 고객들이건 누구나 내 한국 이름을 정확하고 자연스럽게 잘 불러준다. 외국인들이 한국 이름으로 날 불러주니 더 친근감이 든다.



이런 시간들을 거쳐, 드디어 한국 이름의 내 미국 통장에도 나의 첫 알바 주급이 들어왔다. 20여 년 만의 첫 경제활동으로 나도 드디어 달러를 버는 여자가 되었다. Pay day인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스케줄을 확인하다가 Payslip이 있다고 해서 눌러보니 급여명세서가 있었다.

© Mollie

Payslip, Payroll, Gross Pay(총 급여), Rate(시급) 등 처음 보는 이 단어들로 영어 공부는 매번 다시 시작이다.


나의 첫 슈퍼마켓 알바 주급으로 받은 첫 달러는 $243.20, 한화로 약 36만 원이다. 내가 한건 별로 없는 것 같은데 집에서 평생 살림만 하던 가정주부가 드디어 내 손으로 직접 코 묻은 달러를 벌게 되는 감격의 순간이다. 미국에 이민 오고 수입이 '0원'인 우리 집에 첫 소득이 생겼다.


Employee Taxes(직원 세금)으로 OASDI(사회보장세)와 Medicare(건강보험세)가 나가고, Take Home Pay(실지급액) 이 $224.59였다. 드디어 미국에 세금도 내는 여자다. 아직 일을 제대로 시작한 것도 아니고 가서 허둥지둥 대며 시간만 보내고 실수투성이로 근무를 하고 온 것 같은데 이렇게 돈을 받으니 너무 좋다.


내 이름으로 세금을 내니 뭔가 이 사회의 쓸모 있는 구성원이 된 것 같아서 가정주부로서는 느낄 수 없었던 희열감을 느낄 수 있었다. 열심히 남을 위해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에 대한 대가로 받은 나의 첫 달러벌이, 일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이 일로 인해서 당시 백수였던 남편은 나의 의지와 노력에 뭔가 마음을 내려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나도 이제 미국에서 세금 내고, 달러 버는 여자다!


대문 사진 : Timis Alexandra, Unsplash

이전 06화파란 눈의 훈남 트레이너와 밉상덩어리 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