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아빠하고 40대 나하고

아빠의 한 마디가 맴돈다.

by Mollie 몰리

설거지와 요리는 잡념에 딱 제격인 시간인 듯하다. 늘 고민과 해결되지 않은 문제, 또는 미처 생각하지도 못한 문제, 예전의 기억들은 꼭 이 시간에 불현듯 나의 머릿속에 떠오르곤 한다. 오늘도 딱 그랬다.


저녁밥을 준비하다가 갑자기 이유 없이 그의 목소리가 내 귓가에 울렸다. 전혀 그럴 상황이 아닌데, 막연히 떠오른 그의 얼굴과 뭔가 나도 모르게 울컥하며 눈물이 핑 돌았다. 어, 나 왜 그러지? 갱년기라도 온 건가? 내가 하고 있던 행동은 바쁘게 황태감잣국과 하이라이스를 인덕션 2개에 올려놓고, 양팔로 바쁘게 요리를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감성이 사라지고, 점점 현실적인 문제에 치이며 점점 나의 감수성은 사라졌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남아있나 보다. 특히 40대가 훌쩍 지나고, 해외살이를 오래 하면서, 코로나로 인해서 한국을 방문하지 못했던 지난 3년간, 보고 싶어도 보지 못하는 가족들에 대한 나의 마음은 마치 고향에 두고 온 맡기고 온 물건처럼 늘 순간순간 나를 괴롭혔다.


20대부터 셀카녀 저리 가라 할 정도로 그렇게 사진 찍기를 좋아했던 내가, 어느 순간부터는 사진 찍기가 겁이 나고 부담스러워지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사진을 찍을 때 나는 분명히 웃고 있었는데, 사진 속의 나는 울고 있다. 어, 이상하다? 왜 슬퍼 보이지? 평생 젊을 줄만 알았던 나도, 늙어가는 중이다. 점점 거울을 보기가 싫어지기 시작하고, 하나씩 없던 노화 과정이 생기면서, 겁먹기도 하고 적응하려고 노력 중이다.


나도 흰머리가 생기고, 정수리의 머리는 빠져가고, 피부는 칙칙하다 못해, 푸석거리며 주름은 늘고, 노화의 속도가 가속화되는 것처럼 못 본 사이에 많이 쇠약해진 부모님을 영상을 통해 보면,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어찌나 눈이 퀭하시던지, 점점 머리숱도 없어져가고, 종아리도 얇아지고 있었다. 한 번은 엄마와 서로 영상 통화를 하다가 서로 너무 늙어버린 모습에 새해부터 눈물을 흘리고 통화를 하다가 끊은 적이 있다.



나의 아빠,,, 평생을 바쁘게 일만 하시고, 모든 아버지들이 그렇듯이 자식들을 위해서 고생하고 헌신하고 희생하셨다. 어릴 적에는 무섭고, 말도 없으시고, 무뚝뚝해서, 아빠라는 사람에 대해서 크게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그냥 아빠'였다. 빨래가 많으면 엄마가 힘들다고 옷도 덜 갈아입으시고, 쇼핑 싫어하는 사람이 어딨냐며, 가면 사야 하니까, 쇼핑도 멀리하시고. 평생 일해서 다 벌은 돈 자식들 시집, 장가보내고도 늘 아빠의 머릿속에는 여전히 자식들 걱정뿐이다. 당신이 아프다는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한국에 귀국하는 문제로 고민하던 차에, 다른 방법이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 준비를 해오다가, 전화할 일이 있어서 통화를 하던 중 아빠에게 이야기했다.

아빠, 잘하면 또 해외로 나갈 수도 있겠어요. 아직 정해진 건 없는데, 가능성도 있어요.

그러니? 이제는 들어오는 줄 알았는데. 서운하다야.


아빠의 대답과 반응은 나의 예상을 깨고, 한참을 말이 없으시다가 서운하다고 말을 하셨다. 이제는 들어오는 줄 알았다고. 그 말을 듣자마자, 지금 오늘 내가 그랬던 것처럼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잘됐구나, 축하해.라는 답변을 기대하고 있었다.


아빠가 서운하다고? 내가 한국에 없는 게 서운하다고? 나는 그냥 존재감 없는 딸일 뿐이었는데. 아빠한테 해준 것도 없고, 별로 중요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무엇보다 이런 말을 할 아빠가 아니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그 진실성에 마음이 쓰라렸다. 진짜 가슴 한가운데가 매어지도록 아팠다. 아빠와 이런 통화를 해본 것도 처음이고, 나도 연락을 잘 못하는 무뚝뚝한 딸이고, 그냥 그렇게 자라고 지냈던 관계라서 부모로서의 고마움은 컸지만, 서로 표현을 잘 안 했기에 감정적으로는 무덤덤했다.



아빠 생신 때 짧은 안부 전화를 했다. 여전히 아빠는 자식의 미래 걱정뿐이다.

내가 어제 뉴스를 봤는데, 오늘 신문에도 대문짝만 하게 나왔더라. oo서방 한국에 와서 자리 잘 못 잡으면, 이런 거 해봐도 좋겠다, 아니다 알아서 잘할 텐데 괜히 내가 말했다. 그런데, 이런 거 해서 혹시 잘 풀리면, 해외 안 나갈 수도 있는 거지?

아들은 어떻게 하기로 했니? 준비 잘하고 있네, 그럼 해외 안 나갈 수도 있는 거지?


철없는 나는 곧이곧대로 우리의 예상 계획을 이야기하며, 아빠 생각해서 안 가요, 대신에, 그건 상황이 돼 봐야 알 수 있어요. 라며 못난 소리를 해댔다. 내 생각에도 아빠는 은근히 바라시고 계시는 것 같았다. 자식들이 근처에서 살았으면 하는 걸.


남편한테도 이야기했다.

장인어른도 이제 나이 드셨나 보다. 자식들 다 떠나가고 나가고, 외로우신가 봐.


아빠의 칠순잔치, 생신 등 중국에 온 뒤로, 가족 이벤트에 함께한 적이 없으니, 늘 우리는 영상으로 대신했다. 그래도 올여름에 오랜만에 가서 뵙고, 좋은 추억 만들고 와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긴 했었다. 아들과 할아버지랑 산책도 다녀오고, 생전 이럴 분이 아닌데, 아빠가 동네 아주머니한테 부탁해서 아들과 찍은 사진도 보내주고, 저녁 먹고 함께 동네 산책도 하고, 태어나서 아빠랑 처음 해보는 산책이었음에 더없이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사진 속의 나는 활짝 웃고 있지만, 또 여전히 울고 있다.



아,,, 이번주는 그 말들이 자꾸 문뜩문뜩 떠오르고, 짠하고, 해줄 것 다 해주고도 딸들한테 10원 하나 못 받는 아빠가 오늘 너무 보고 싶다. 만나서 얼굴 보고는 못할 말. 나와 하나부터 열까지 너무나도 닮은 아빠.

아빠, 사랑해요!

요새 우연히 뜬 영상인 ‘아빠하고 나하고‘에서 이승연 씨와 강주은 씨의 스토리를 보면서, 참 따뜻한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의 감정을 그 프로그램을 통해서 정리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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