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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린 Sep 15. 2021

좋은 후속작과 나쁜 후속작(part1)

게이머와 팬들은 후속 게임에서 무엇을 기대하는가?

게임을 즐겨하는 게이머에겐 소위 ‘인생게임’이라는 것이 있기 마련입니다. 객관적으로 고평가 받는, 소위 대중과 평단의 사랑을 받는 게임이 아니더라도 말이죠. 그리고 그런 게임들은 으레 해당 게임에서 만의 독특한 경험을 제공합니다.


최근 라스트 오브 어스 2 플레이했습니다. 이미 발매된  1년도 넘었기 때문에 발매 당시의 뜨거운 여론에 관계없이 비교적 차분하게 게임을 플레이할  있었네요.


 경우 라스트 오브 어스 1 무척 재밌게 플레이했기 때문에 당연히 후속작을 기다렸고, 라오어 2 발매 직후 몰매 맞는 것을 보며 과연 어느 정도길래 이토록 미움을 받는지 궁금했습니다.


결말까지 완료한 지금, 왜 그토록 미움을 받는지 이해할 수 있었고 저 역시 꽤 실망스러웠습니다. 특히 전작이 워낙 훌륭했기에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네요.


반면 전작에서 큰 기대감과 임팩트를 남기고 후속작에서 만족스러운 발전을 보여준 게임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번 글에선 만족스러운 후속작과 실망스러운 후속작을 플레이어의 시점에서 말해볼까 합니다.

오늘 라스트 오브 어스와 함께 리뷰할 게임은 Ori and the Blind Forest 시리즈입니다.(이하 Ori 시리즈)


(라오어 1에 대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먼저 라스트 오브 어스에 대해 얘기해볼까요.


라오어 1 플레이한 직후 느낀 것은 ‘이건 마스터피스다라는 감정이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압도되는 경험이었습니다.


게임 플레이와 라오어의 이야기, 세계에 몰입하지 않을 수 없었죠. 소재 자체는 어디서든 흔히 볼 수 있는 ‘아포칼립스 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생존 이야기’ 입니다만 라오어는 그것을 게임의 방식으로 잘 풀어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당신은 세상을 적으로 돌릴 수 있는가?

크게 색다를 것 없는 게임 소재임에도 라오어는 위 질문을 플레이를 통해, 정확히는 게임에서만 보여줄 수 있는 방식으로 플레이어에게 전달시키는 데 성공합니다.


아이를 잃은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한 조엘, 그리고 인류의 희망으로서 바이러스에 면역항체를 지닌 앨리. 플레이어는 조엘과 앨리를 조작하여 앨리를 병원까지 운반해야 합니다.


밀수꾼으로 살아가는 조엘에게 앨리는 그저 운반해야  짐덩어리고, 앨리에게 조엘은  미더운 꼰대에 불과하죠. 처음엔 말입니다.


그러나 게임이 시작되며 둘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로 변해갑니다. 약 24시간가량의 플레이타임, 게임 시간 속에서 거진 1년에 준하는 시간을 두 캐릭터는 함께 합니다. 그리고 유저는 그 과정을 직접 플레이를 통해 진행하며 관찰합니다. 플레이어는 이 두 캐릭터를 조작하면서 이 둘의 시선에서 게임 속 세계를 탐험하고 바라보고, 그들과 같은 감정을 느끼죠.


엘리를 얕잡아 보고 무시하는 조엘은, 후반부에 접어들면 엘리에게 ‘우리 아가’라는 다정한 말을 건넨다. 엘리는 더 이상 운반해야할 무언가가 아니라 자신의 딸과 다름없으므로.


 사람은 괴물과 싸우고,  괴물보다 무서운 인간과 싸웁니다. 그러면서도 목적지를 향해 달려갑니다. 혼자서라면 일찍이 목숨을 잃을 법할 상황을 서로 힘을 합쳐 생존해 나갑니다.


그리고 라오어 1   이야기를 플레이를 통해 경험하도록 각각의 스테이지와 컷씬, 인물 간의 대화를  구현해 뒀습니다. 그렇습니다. 라오어 1 게임의 ‘플레이 측면으로만 봐도 더할 나위 없이  짜인 게임입니다. 현실적인 세계에서 현실적인 제약을 만들어 두어 긴장감을 느낄  있죠.


물자는 풍족하지 않기에 때로는 위혐을 무릅쓰고 탐험을 해야 하며, 무턱대고 총알을 쏴대면 괴물들이 소리를 듣고 달려옵니다. 어느 것도 유저에게, 그리고 게임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조엘과 엘리에게 여유를 주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순간, 조엘은 엘리를, 인류의 희망이  엘리를 넘기지 않습니다. 엘리를 수술대로 보내면 엘리는 죽고  테니까요.


라오어 시리즈는 선택지가 없는 게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야기는  방향으로, 강제적으로 진행되기에 유저에게 납득할  있도록 이야기를 전달해야 합니다.


그리고 조엘이 저지른 행동은 참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인류의 희망을 스스로 꺾어버리는 셈이니까요. 그것도 자신의 친딸이 아닌 존재를 위해서 말입니다. 1년간 미국 대륙을 횡단하는 고생의 결실을 조엘은 끝에서 부정하고 맙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플레이어는 조엘의 결정을 지지하고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런 공감을 자아낸 이야기 전달 방식,  스토리텔링이야 말로 라오어의 최고 강점이라고   있습니다.


비록 세상을 등지고 자신의 욕망을 위한 선택을 대중들로부터 공감받을  있는 이야기 말이죠. 직접 게임을 플레이한 유저는 라오어를 세상을 타인이 아닌 조엘과 엘리의 시선에서 바라보고 직접 경험했습니다. 유저는 실패하면  번이고 죽어가는 조엘과 엘리의 모습을 보며 다시 도전해서 그들을 괴물과 적대적인 인간으로부터 구하려 했죠.


그것도 24시간이나 말입니다. 비록 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백신이라는 구원으로부터  발자국 멀어졌지만, 그럼에도  둘은 함께 살아갈 것입니다. 그런 묘한 상황 속에 라오어 1 끝이 납니다.


그리고 약 7년이 지나 후속작이 나왔고, 아시는 대로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출시 직후 평단의 평가는 만점에 가까웠으나 유저들의 반응은 그와 반대였죠. 유저들 사이에서도 평이 극단적으로 나뉘고 있고요.


재밌는 점은 대부분 라오어 2의 ‘플레이’ 적인 측면에 대해선 호평을 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적들과의 전투 설계나, 좀 더 정교해진 AI와 같은 부분은 모두가 만족한다는 점이죠. 문제가 되는 부분은 바로 ‘스토리’였습니다. 정확히는 스토리텔링에 더 큰 문제가 있었다고 할 수 있겠네요.


라오어 2의 주제는, 총괄 디렉터인 닐 드럭만에 의하면 ‘공감과 용서’라고 합니다. 그러나 많은 유저들은 전혀 이 부분에 대해 납득하지 못하고 있죠. 스토리에선 실제로 주제를 분명 다루고 있음에도 말입니다. 그리고 개발자의 의도가 유저에게 전달되지 못했던 것은 주제를 전달하는 방식이 몹시나 ‘교조주의적’이었기 때문입니다.


교조주의적인 전달 방식: 오만하고 엉성한 스토리텔링


게임을 해보기도 전에 라오어 1 조엘인 라오어 2에서 새로운 주인공 애비에게 골프채로 무자비하게 두들겨 맞아 사망합니다. 여기서  가지 문제점이 있죠.


하나는 전작의 주인공을 이렇게 험하게 다뤄도 되는지에 대한 ‘태도 문제, 그리고 하나는 ‘개연성 혹은 핍진성 문제입니다. 저는 여기서  번째 부분에 집중해서 글을 써보려고 합니다.



라오어 2  이야기는 조엘과 앨리가 잭슨이란 요새형 도시에 정착한   년이 지난 뒤의 이야기를 다룹니다.


새로운 주인공 애비는 라오어 1에서 조엘이 엘리를 구하기 위해 사살한 의사의 딸이죠. 애비는 우연히 조엘을 만나 살해하고, 엘리는 복수를 위해 길을 떠납니다.


유저는 엘리로 3일간 복수의 여정을 떠나고, 3일간 애비의 시점에서 게임을 플레이하며 다른 시각으로 게임을 플레이합니다.



엘리 파트로 플레이하는 동안의 유저의 감정은 전작처럼 충분히 몰입됩니다. 우리는 라오어 1에서 엘리와 조엘과 함께 기나긴 여정을 떠났고, 그중  명의 파트너를 허망하게 떠나보냈으니 내면엔 복수심이 충분히  상태죠. 그리고  감정을 깊게 갖고서 복수의 길을 떠납니다.


여기까진 괜찮습니다. 그러나 애비로 시점이 전환되는 순간부터 이야기의 몰입은 극도로 낮아집니다.  역시 애비로 플레이한  얼마 지나지 않아 몰입도가 낮아져 플레이 난이도를 가장 낮게 변경하고 숙제하는 느낌으로 게임을 최대한 빨리 진행하게 되더군요.  이런 일이 발생한 걸까요?



앞서 말한 교조주의적인 전달 방식 때문입니다. 개발진은 공감과 용서라는 이야기를 꺼내기 위해, 서사의 자연스러움을 붕괴시킵니다.


애비는 철저히  주제를 위해 설정된 만큼 매력이 없고, 납득 가는 행동을 하지도 않습니다. 아비는 애비가 속한 WLF 소속과 적대적인 세라파이트의 야라와 레브와 함께합니다.


라오어 1 조엘과 엘리가 함께 했듯 말이죠. 그러나 애비가  둘을 돕는 것엔 ‘그냥 마음의 짐을 덜고 싶어서라는 이유 외엔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전히 무자비한 아포칼립스 세계관에서 이런 행동이 과연 자연스럽게 보일까요? 사실 엘리 파트에서부터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은 하나  나왔었고(노련한 조엘이 무턱대고 자신의 이름을 밝혀 허무하게 죽는다거나, 하필 엘리가 지도를 현장에 두고와 애비가 찾아오도록 한다거나) 유저는 바보가 아니기 때문에 애비의 어처구니없는 행동을 보고 있노라면 ‘이게 뭐야?’ 하는 생각이  수밖에 없습니다.


이윽고 애비는 자신들의 적대 세력인  아이를 위해 몸소 자신의 동료들을 살해까지 합니다. 그러며 자신의 동료를 설득한다며 하는 말이 ‘얘들은 그저 아이들이다 ‘행복할 권리. 게임의 휴머니즘은 바로  대사를 통해  피웠고 플레이어의 입에선 탄식이 터져 나오는 순간이었을 겁니다.


플레이어는 바보가 아니다


플레이어는 바보가 아닙니다. 난해한 이야기나 어려운 주제는 파악하지 못할지언정 자신이   게임을 하는지,  게임이 재밌고 재미없는지, 자신이 무엇을 게임에 기대했는지에 대해선 개발자보다 명확하게 알고 있습니다.


누군가에게 라오어 1 전투적인 것만으로도 매력적인 게임이겠지만  많은 유저, 특히 라오어 1 재밌게 즐긴 유저들은 후속작에서도 전작에서 만큼  밀도 높은 이야기와 모험을 기대했을 겁니다.


그러나 유저가 경험한 것은 뻔한 소리를 터무니없는 설득력으로, 그리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인 이야기였죠.  게임에서 보여주는 복수의 허망함 만큼이나 게임의 스토리텔링도 허망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전작이 납득하기 메시지를 공감할  있도록  것과 무척 대비되죠.



라오어 2는 결국 전작에서의 가장 큰 성공 요인을 후속작에선 보여주지 못하며 반쪽짜리 걸작으로 남게 됐습니다. 분명 평단과 일부 유저에겐 사랑받지만 나머지 유저들에겐 메시지 전달도, 스토리텔링도 실패한 게임이니까요.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라오어 2는 오랜 기간 사람들에게 화자 되며 기억될 것 같습니다.


다음 글에선 라오어 2와 대비적으로 좋은 후속작으로 이어진 Ori and the Blind Forest 시리즈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이번 글과 마찬가지로 전작의 매력이 무엇이었고, 후속작에선 이를 어떻게 발전시켰는지에 대해서 말이죠. 다음에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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