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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몰린 Sep 23. 2021

좋은 후속작과 나쁜 후속작(part 2)

80%의 익숙함과 20%의 새로움, 그리고 훌륭한 전달 방식

지난 글에선 라스트 오브 어스 시리즈를 예로 들어 나쁜 후속작에 대한 얘기를 했습니다. 요약하면 전작에서 유저들이 좋아하는 부분을, 후속작에서 잘 보여주지 못하면 유저들은 실망한다 정도 되겠네요.


이번엔 좋은 후속작의 예시를 들어볼까 합니다. Ori and the Blind Forest(이하 눈먼숲)와 후속작 Ori and the Will of the Wisps(이하 도깨비불)입니다.



Ori 시리즈에 대해 간단하게 설명하면 액션 플랫포머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슈퍼 마리오처럼 점프와 스킬을 사용해서 목적지로 이동하며 긴 여정을 떠나는 것이 주요한 포인트인 게임이죠. 그런 Ori 시리즈에서 유저들이 입을 모아 얘기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Ori 시리즈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탈출 시퀀스’입니다. 탈출 시퀀스는 여타 다른 게임의 보스전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반적으로 보스전이라 하면 게임의 하이라이트이고, 그렇기 때문에 가장 큰 긴장감과 극복의 성취를 느낄 수 있는 부분입니다. 그러면 보통 게임들은 보스전을 어떻게 부각할까요? 다크 소울 시리즈를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높은 난이도로 유명한 소울 시리즈(데몬즈 소울, 다크 소울, 블러드본)를 상징하는 가장 큰 요소 중 하나는 보스입니다. 소울 시리즈는 주로 첫 보스에 이르기 전까지 간단한 튜토리얼을 진행시켜 유저가 조작 방식을 익히도록 합니다. 그리고 유저의 몸집보다 몇 배는 큰 보스를 처음으로 등장시켜 유저에게 무력감, 압도되는 감정을 보여주죠. 그리고 첫 보스 전투는 이렇다 도망갈 공간을 주지 않습니다. 인간의 몸집을 지닌 유저와 대비되는 크기의 보스, 어둡고 좁은 공간을 통해 앞으로 있을 전투는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효과적으로 전달하죠. 그리고 끝없이 유저는 실패를 반복하며 보스가 주는 공포에 익숙해지고 한 걸음씩 나아가 거대한 괴수를 쓰러뜨려 성취감을 느낍니다.



Ori 시리즈의 탈출 시퀀스 역시 전반적인 형태는 소울 시리즈의 보스전과 비슷합니다. 압도되는 상황을 만들어 두고, 무수히 많은 실패를 전제로 플레이하죠. 그러나 웅장한 노래와, 아름다운 시각적 요소, 유저가 배운 능력을 모두 활용하게끔 유도하는 레벨 디자인을 통해 극복했을 때의 엄청난 성취감을 제공합니다. 그리고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유저가 첫 번째로 마주하는 탈출 시퀀스인 ‘긴소 나무’ 파트입니다.


해당 파트의 멋진 점은, 1분가량 유지되는 이 탈출 구간을 클리어했을 때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유저는 클리어와 동시에 안도의 숨을 내쉬며 머릿속으로 자신이 플레이한 것을 떠올립니다. 아래로부터 치솟아 오르는 거센 물길을 피해 위로 돌진하고, 위를 가로막는 장애물을 하나하나 극복해가는 장면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며 한 편의 롱테이크씬을 유저가 직접 자신의 손으로 만들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이죠. 특히 긴소 나무 파트는 최초의 탈출 시퀀스인 만큼 그 감동의 크기와 지속시간은 이루 말할 수 없습니다.

(긴소나무 분석 영상: https://youtu.be/VQ_KrRq4UiA)



하지만 멋진 탈출 시퀀스 하나만으로는 아쉬움이 사라지진 않습니다. 전투 요소의 비중이 결코 낮지 않음에도 전투의 재미가 없기도 하며, 긴소 나무 이후의 2번의 탈출 시퀀스는 긴소 나무에 비하면 속도감도 느리며 긴장감도 덜하죠. 즉, 긴소나무 라는 비장의 카드가 게임에서 가장 먼저 나왔기 때문에 이후의 탈출 시퀀스는 긴소나무에서 만큼의 감동을 주질 못합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훌륭한 게임으로 평가받으며, 사람들은 후속작을 기다리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후속작 도깨비불이 작년에 출시됐습니다. 출시 직후 잦은 버그가 있었으나 이 점을 제외하면 평단과 대중의 사랑을 모두 한 몸에 받았다고 할 수 있겠네요. 요컨대, 좋은 후속작으로 뽑혔다는 얘깁니다. 

그러면 무엇이 이 게임을 좋은 후속작으로 만든 걸까요?


개발사는 전작에서 보여준 Ori 시리즈의 장점을 그대로 계승합니다. 독특한 이동 시스템인 ‘Bash’와 시원시원한 다중 점프는 그대로 가져왔고 심지어 초반부에 매력적인 능력을 해금시켜 본 작에선 유저들이 처음부터 빠르게 다양한 능력을 맛볼 수 있죠.


도깨비불에서의 핵심 역시 탈출 시퀀스라 할 수 있습니다. 전작에서 긴소나무의 장점을 극대화하고, 아쉬웠던 부분을 보강한 것이 도깨비불에서의 탈출 시퀀스라고 할 수 있겠네요.


우선 이동기를 빠르게 해금시켰고, 그 외에 전작엔 없었던 상호작용 오브젝트를 배치했습니다. 이를 통해 유저는 전작보다 훨씬 더 먼 거리를 역동적이고 빠르게 움직일 수 있게 됐죠. 그리고 당연히 이 부분은 탈출 시퀀스와 연결됩니다. 그럼에도 각 탈출 시퀀스는 평균 1분 내외의 플레이 타임으로 이루어져 있고요. 더 먼 거리를 1분 안에 움직여야 하니 그만큼 이동 전개 속도는 더 역동적이고 빠르게 전개됩니다. 이것이 바로 익숙한 80%에 해당하는 부분입니다. 장점을 가져오고 더 강화시키거나 보완해서 내놓는 것이죠.


낯선 20%는 보스 전투입니다. 도깨비불은 전작의 부족한 액션/전투 부분을 보강할 수 있는 다양한 무기 옵션과 보스전을 추가했습니다. 게임 특유의 유려한 비주얼, 시원한 움직임과 맞물리는 보스 전투는 높은 시각적 만족감을 제공합니다. 중간중간 탈출 시퀀스를 연상시키는 연출과 기믹도 재밌었고요. 이처럼 도깨비불은 전작의 개성은 유지하면서도 새로운 방식으로 Ori시리즈의 재미를 전달하는데 집중했습니다.



하지만 단점 또한 명확합니다. 새롭게 보강한 전투는 엉성하다는 이유로 많은 유저들의 질타를 받았거든요. 무기 밸런스와 유저가 납득하기 어려운 히트박스는 분명 좋기만 한 전투 경험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스토리 부분도 역시 전작과 마찬가지로 비교적 평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깨비불은 훌륭한 게임, 훌륭한 후속작으로 평가받았습니다. 유저들이 즐겁게 플레이했고 몰입할 수 있었단 얘기입니다. 도깨비불은 라스트 오브 어스 2와 무엇이 달랐을까요.


그건 '선택과 집중'의 차이일 겁니다. 라스트 오브 어스 1 이후 많은 유저들은 끝내주는 스토리텔링과 밀도 높은 전투 경험을 기대했습니다. 두 가지 요소가 라오어1의 가장 큰 매력 요소였으니까요. 그러나 라오어2는 많은 유저들이 납득하기 어려운 스토리텔링을 보여줬습니다. 이 게임에 몰입과 재미를 담당하는 가장 큰 요소 하나에 문제가 생긴 것이죠. 반면 Ori시리즈는 연출과 게임 플레이에 집중하며 충분한 몰입, 그리고 독특한 경험을 제공하며 전작과 후속작 모두 사랑받을 수 있었던 거죠.



팬덤을 무시한 게임은 좋은 후속작을 내놓을 수 있는가?


모든 게임은 장르, 플랫폼 등의 차이로 인해 같은 기준으로 평가받지 않습니다. 테트리스 하면서 모험의 재미가 없다고 따질 수 없는 거죠. 하지만 게임은 재밌어야 하고, 그래야만 대중에게 사랑받고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재미라는 것은 각각의 게임에서 저마다의 방식대로 구현됩니다. 어떤 게임이든 후속작을 기대하는 것은 전작에서의 개성과 가능성에 매료된 사람입니다. 개발자가 원하는 대로 개발하는 것은 자유겠지만, 후속작을 기대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외면할 때, 그리하여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는 게임을 내놓을 때에도 여전히 사랑받을 수 있을까요? 어려운 일일 것 같습니다. 유저 입장에서 그건 게임의 '정체성'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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