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보스토크

유럽 감성 가득한 두 시간 거리의 도시

by 장기혁



한국에서 가장 가까운 유럽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블라디보스토크라고 말하고 싶다. 소련 초기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수많은 슬라브계 백인들이 이주하면서 이 도시는 유럽풍 근대 건축물로 가득 차게 되었다. 그 덕에 거리 곳곳을 걷다 보면 마치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곤 한다. 비행기로 단 두 시간 거리, 시차는 단 한 시간에 불과한 이 도시는 관광, 문화, 쇼핑, 음식, 역사 모든 면에서 나에게 보석 같은 곳이다.


블라디보스토크의 가장 큰 매력 중 하나는 세계적인 수준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을 단돈 5만 원으로 VIP석에서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공연장인 마린스키 극장은 규모는 작지만 감동은 결코 작지 않다. 또한 러시아 전통 요리부터 중앙아시아식 케밥, 그리고 싱싱한 해산물까지 다양한 음식을 저렴하게 맛볼 수 있는 미식의 도시이기도 하다.


쇼핑도 빼놓을 수 없다. 고품질의 러시아산 가죽 제품, 천연 꿀, 버섯류, 냉동 킹크랩, 차(tea), 화장품 등은 가격 대비 만족도가 매우 높아 매번 방문할 때마다 가방이 넘칠 정도다. 역사적으로도 가치가 깊다. 구한말과 일제강점기 한인 독립운동가들의 발자취가 곳곳에 남아 있어 이 도시를 걷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블라디보스토크는 시베리아 횡단열차의 종점이며, 러시아 해군 태평양 함대의 본거지이기도 하다. 푸틴 대통령의 극동개발 정책에 따라 지속적으로 발전하고 있는 전략적 거점 도시다. 도시 곳곳에는 한국산 자동차가 즐비하고, 한국 기업들의 광고도 쉽게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북한 국영 항공사인 고려항공이 취항하는 몇 안 되는 도시 중 하나로, 공항에서 북한 노동자들이 단체로 입출국 수속을 밟는 모습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2019년 처음으로 블라디보스토크를 방문한 이후, 매년 다시 찾기로 결심했고 이듬해 또다시 다녀왔다. 그러나 코로나 팬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이 이어지면서 방문이 불가능해졌고, 지금은 전쟁이 끝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며 마린스키 극장의 오페라와 발레 공연 일정을 주기적으로 확인하고 있다. 하루빨리 평화가 찾아와 다시 블라디보스토크의 거리를 자유롭게 걷고 공연장을 찾을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