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혼자 무대 앞에 서다 — 중년의 연극 취미를 회복하며
돌이켜보면 고등학교 시절이 내 인생에서 문화적으로 가장 풍요로웠던 때였다. 지금도 입시 준비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많지만, 40여 년 전, 우리는 상대적으로 여유로운 학창 시절을 누릴 수 있었다. 나는 그 시간을 꽤 알차게 보냈다. 교내 남성중창단과 이화여고와의 독서토론 연합서클에서 활동했고, 여가 시간에는 오페라, 판소리, 연극 공연을 찾아다녔다. 특히 연극을 자주 보러 다녔는데, 당시 신촌과 대학로를 중심으로 활발했던 연극계 덕분이었다. 입시공부 시간은 줄어들었지만, 전혀 후회는 없다.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은 1984년 연말, 덕수궁 옆 마당세실극장에서 관람한 *‘살아있는 이중생 각하’*였다. 마당세실극장은 2,000원 정도의 회원권으로 월 1편씩 다양한 공연을 볼 수 있어 자주 들렀다. 어느 날은 우연히 혼자 온 또래 여고생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1년 넘게 교제를 하기도 했다. 그 극장은 내게 문화 공간이자 작은 연애의 추억이 서린 장소였다.
세실극장은 이후 운영난으로 여러 번 문을 닫았다가, 2022년부터 정동극장 소극장으로 새 단장해 외국인을 대상으로 전통 공연을 올린다고 한다. 알고 보니 그 건물은 김중업이 설계한 건축적으로도 의미 있는 공간이었다.
당시 정말 좋아했던 연극은 남산 국립극장 소극장에서 열리던 국립극단의 정기공연이었다. 대학로 소극장에서는 실험적이거나 코믹한 작품이 대부분이었기에, 수준 높은 정극을 볼 기회는 흔치 않았다. 국립극단은 노련한 배우들이 출연하는 국내외 정극을 꾸준히 무대에 올려주었고, 나는 그 무대에서 연극의 깊이를 배웠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아내가 연극 관람을 부담스러워했고, 나도 혼자 몇 번 가보다가 어느새 연극과 멀어졌다. 지난 10년간 연극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코로나 시기 국립극장에서 해외 공연을 영상으로 상영하기도 했지만, 연극은 결국 현장에서 배우의 호흡을 직접 마주해야 비로소 살아나는 예술이라는 걸 알기에 만족할 수 없었다.
가끔 아내에게 푸념을 하면, “혼자 다녀오면 되잖아”라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괜히, “전공자도 아닌데 혼자 연극 보러 가면 민망하지 않겠어?”라며 투덜거리곤 했다. 그러나 요즘은 생각이 달라졌다. 오히려 혼자라도 극장에 앉아 다시 연극에 몰입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나이가 들수록 혼자서도 즐길 수 있는 취미가 필요하고, 연극은 그 리스트에 다시 넣고 싶은 활동이다. 요즘은 혼밥도 자연스러운 세상 아닌가. 혼자 연극 보는 일쯤이야, 이젠 아무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