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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여행

경주, 천 년의 시간 속을 걷다

by 장기혁



첫째 날 – 고요한 전통의 골목을 따라


이른 아침, 경주 여행의 첫 발걸음은 양동마을에서 시작되었다. 산자락을 따라 자연스럽게 배치된 한옥들은 햇살을 머금은 채 오랜 세월을 말없이 품고 있었다. 마을을 걷다 보면 돌담 너머로 들려오는 새소리, 마당에 펼쳐진 고무신 한 켤레까지도 한 장의 그림처럼 느껴진다. 고요한 마을을 뒤로하고, 봄기운 가득한 충효로 벚꽃길로 향했다. 도로 양옆으로 흐드러지게 핀 벚꽃이 마치 분홍빛 터널을 이루고 있었고,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꽃잎은 잠시 시간을 멈추게 했다.


도심으로 들어서며 월정교와 석빙고, **동궁과 월지(안압지)**를 차례로 걸었다. 복원된 월정교의 단아한 자태와 석빙고의 묵직한 석조 구조는 조용한 감동을 주었고, 안압지에 이르러서는 물 위에 비친 건물의 실루엣과 바람에 흔들리는 버드나무가 마음을 사로잡았다. 가까이에 있는 첨성대와 대릉원 고분군까지 둘러보며, 고대 왕국의 숨결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교동 한옥마을과 최부자댁을 찾았다. 현대적인 감각과 전통이 조화롭게 공존하는 공간은 관광지를 넘어 살아 있는 문화의 현장이었다. 골목 사이로 번지는 장작 냄새, 낮게 깔린 기와지붕,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전통 가야금 소리는 마치 시간의 틈새를 걷고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저녁이 되자 발걸음은 자연스럽게 황리단길로 향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갈하고 개성 넘치는 레스토랑에서의 한 끼, 오래된 한옥을 개조한 감성 카페에서의 따뜻한 차 한 잔은 하루의 끝을 부드럽게 마무리해 주었다.


둘째 날 – 자연과 함께하는 경주의 품격


둘째 날 아침, 숙소에서 가까운 황룡원으로 향했다. 옛 황룡사 9층 목탑을 복원한 웅장하고 아름다운 건축물을 구경하고 보문관광단지로 이동해 활짝 핀 벚꽃길을 따라 산책했다. 바람결에 흩날리는 꽃잎과 호수에 비친 하늘은 봄이 선사하는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였다. 특히 보문정의 정자에 앉아 연못을 바라보는 시간은 경주에서만 누릴 수 있는 호사였다.


이후 찾은 불국사는 여전히 장엄했다. 정제된 돌계단과 다듬어진 정원의 고요함, 그리고 바람에 흔들리는 범종 소리는 정신을 맑게 만들어주었다. 불국사를 나와 해안가로 향하니 전혀 다른 분위기가 펼쳐졌다. 경주의 또 다른 얼굴, 감포다.


감포에 도착해 무열왕릉을 둘러본 후, 바닷소리를 따라 이어진 바닷소리길을 걸었다. 파도가 바위를 때리는 소리, 등 뒤에서 불어오는 해풍, 길 끝에서 맞이한 수평선은 가슴을 탁 트이게 만들었다. 여행의 마지막은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 마무리했다. 탑 앞에 서니, 아무 말 없이도 수천 년을 견뎌낸 존재감이 가슴에 와닿았다. 무언가를 더하지 않아도 충분히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이틀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경주는 그 안에 오래된 시간과 감정, 자연과 사람, 고요와 감동을 모두 품고 있었다. 유적을 보는 여행이 아니라, 그 시간을 온전히 걷고 마음으로 들여다보는 여행. 경주는 그런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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