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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더니

by 장기혁



어제 전 직장 후배의 부친상에 문상을 다녀왔다. 거의 십수 년 만에 전 직장 동료들의 상가를 찾는 자리였기에, 오랜만에 만날 선후배들에 대한 기대감과 함께 묘한 부담감이 동시에 들었다. 조문을 마친 뒤 식사를 하러 갔는데, 우연히도 내가 가장 부담스러워하는 세 사람이 한 테이블에 앉아 있었고, 그들은 나를 반갑게 맞으며 같은 자리에 앉으라고 권했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싶었던 후배들과는 눈인사만 겨우 나눈 채, 한 시간 넘게 그 테이블에 앉아 있어야 했다.


오랜만에 보는 반가움도 잠시, 그동안 교류도 없었고 앞으로도 교류할 일이 없을 것 같은 사람들 틈에 있으니 불편함이 앞섰다.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는 말처럼, 십수 년 만에 찾은 장례식장에서 어쩌다 딱 내가 피하고 싶었던 사람들과 마주 앉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그들에게 초라한 모습을 보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들도 나를 특별히 좋아하지는 않으면서도 회사 떠난 후 좋은 직장에서 잘 자리 잡은 것으로 알고 있었고, 약간의 부러움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듯했다.


나이가 들수록 인간관계의 호불호가 더 분명해지고 있다. 이제는 불편한 사람들과는 과거의 인연에 얽매이지 않고 관계를 정리하고 있다. 주변에 친구가 많지 않아도 외로움을 느끼지 않을 자신이 생겼고, 인간관계의 본질에 대해 생각해 보니 서로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지 못하는 관계는 과감히 청산하는 것이 맞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가족은 어쩔 수 없지만, 친구 관계는 인생관, 종교, 정치적 견해 등에서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늙어서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전화할 수 있는 허물없는 친구 한 명만 있으면 된다”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나에게 그런 친구는 누구일까? 고등학교 동창 녀석? 그리고는 딱히 떠오르는 사람이 없다. 어쩌면, 허물없는 친구보다 느슨한 관계의 친구들이 더 편안할 수도 있다. 지금의 이웃들, 직장 동료들처럼 말이다. 어찌 되었든 인간관계에 대한 나만의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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