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중함
제3 화
희경의 나이 여덟 살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를 받았다.
그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초등학교 들어가서 공부도 하고 친구들도 사귀는 거라고 아버지께서 설명을 해주셨다.
두려움도 있었고,
설렘도 있었고,
기대감도 있었다.
그 나이 먹도록 연필 한 자루, 색연필 한 자루, 크레파스 하나 잡아본 적이 없었다.
한 번 본 적도 없는 것들이다.
희경아버지는 문방구에서 종합장 만들 것을 비롯해 이것저것 학용품을 사 오셨다.
그러나 책가방 살 것은 엄두를 못 내고 그냥 왔다.
책가방 대신에 커다란 보자기 하나를 내미셨다.
까만 표지에 시험지를 송곳으로 구멍을 뚫고 끈으로 묶어 종합장을 만들어 주셨다.
희경은 학용품을 보며 신기하고 좋았다.
이리보고 저리보고 만지작거렸다.
아버지는 나를 앉아 보라 하셨다.
며칠 있으면 학교에 입학을 해야 했다.
다른 건 몰라도 내 이름 석자는 쓸 줄 알아야 한다며 종합장에 박희경을 써 놓고 그 위에
똑같이 따라 쓰라고 하셨다.
색연필을 처음 잡아 본 희경에게 잡는 법부터 가르쳐주셨다.
그리고는 따라 써 보게 하였다.
써 놓은 이름 위에 쓰는데도 비뚤배뚤 하였다.
난생처음 잡아 본 색연필로 생전 처음 내 이름 석자를 써 보았다.
가슴이 콩닥콩닥 두근거렸다.
세모, 네모, 동그라미, 동글동글 달팽이를 따라 그렸다.
물결 모양도 그렸다.
형형색색으로 종합장에 그려 넣었다.
내 이름 석자를 쓰고 또 쓰고 무한 반복이었다.
보지 않고, 따라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연습하였다.
입학식 날이다.
아침부터 분주하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손수건을 접어서 가슴에 달아주셨다.
코가 나오면 그걸로 닦으라고 하셨다.
동그란 갈색 이름표도 달아주셨다.
운동장에 아이들이 줄지어 서 있다.
모두가 신났다.
싱글벙글 싱글벙글 재잘대는 소리가 운동장 기득 울려 퍼진다.
선생님 구령에 발맞춰 설레는 가슴 안고 교실로 들어갔다.
희경은 글씨를 읽어 본 적도,
글씨를 써 본 적도 없었다.
아예 책을 본 적이 없었다.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앵무새 마냥 따라 읽었다.
무슨 글자인지 희경에겐 중요하지 않았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아버지께서 책을 한 글자 한 글자 손으로 짚으면서 따라 읽으라 하였다.
희경은 배운 대로 손가락으로 한 글자씩 짚으면서 책을 읽어 내려갔다.
조금씩 글자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딱 일주일 공부를 가르쳐주셨다.
희경은 글을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매일 큰소리로 읽고 또 읽었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비가 내렸다.
책을 보자기에 둘둘 말아 허리에 찼다.
파란 비닐우산 하나 들고 비바람에 용을 쓰며 학교를 향해 걸어간다.
개울을 건너야 했다.
그곳에 육교를 만들려고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빠질까 봐 조심조심 걸어가는데 철근 사이로 그만 신발 한 짝이 끼고 말았다.
아무리 빼려 해도 꼼짝도 안 하는 신발.
신발이 물로 떨어질까 겁이 덜컹 났다.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안간힘을 써서 가까스로 신발을 빼냈다.
그런데도 심장은 여전히 두근거렸다.
그러고는 학교에 늦을까 걸음을 재촉하였다.
집에서 학교까지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리는 거리다.
보자기를 풀고 책을 꺼내는데 비를 맞아 그런지 책이 얼룩져있었다.
희경은 속상했다.
새책인데...... 입을 삐쭉거렸다.
작은아버지 딸이자 희경과는 동갑내기 여자아이 사촌 경애와 같은 반이 되었다.
그런데 경애는 집이 잘 살아서 그런지 네모난 빨간 책가방을 메고, 까만 끈 달린 구두를 신고,
예쁜 하늘색 원피스를 입고 학교에 왔다.
희경은 부러웠다.
아이들도 와~~~ 하며 경애 곁으로 모여들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그저 그랬는데 경애가 유독 눈에 띈 탓이다.
희경은 부러웠지만 집에 가서 아무 말도 안 했다.
희경이 할 줄 아는 건 오로지 이름 석자 쓰는 것이 전부였다.
희경은 말이 없는 조용한 아이였다.
친구를 사귀어 본 적이 없어서 말을 걸 줄도 몰랐다.
새침데기 여자아이.
항상 제자리에 조용히 말없이 앉아있는 그런 아이다.
그래도 이름만큼은 공책에 자신 있게 적는다.
한 가지 더 쓸 줄 알게 된 것은 학년, 반, 번호였다.
그것도 아버지가 가르쳐 준 결과다.
학교 생활은 재미있었다.
노래도 부르고,
율동도 하고,
신나게 운동장에서 뛰어도 보았다.
한참 뛰어놀다 목이 마르면 운동장 수돗가에서 벌컥벌컥 물도 마셨다.
물이 목구멍으로 내려가면서 시원해졌다.
공책마다 꾹꾹 눌러 이름 석자를 썼다.
책마다 꾹꾹 눌러 이름 석자를 썼다.
그런데
보자기에는 내 이름 석자를 쓸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보자기를 허리에 묶고 다녀도 창피하거나 부끄럽지 않았다.
몇몇 아이들도 보자기를 메고 다녔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매일 학교 가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몇 달을 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가 남색 책가방을 사 오셨다.
빨간 신발주머니도 사 오셨다.
희경은 뛸 듯이 기뻤다.
너무 좋고 신이 나서 가방을 셀 수 없을 만큼 들었다 놨다 하였다.
그리고
책가방과 신발주머니에 내 이름 석자를 꾹꾹 눌러썼다.
혹시라도 지워질까 봐 더 힘주어 썼다.
아버지가 지어주신 이름 박희경
내 이름 석자
가슴에 깊이깊이 새겨두었다.
멀리서 들리는 새소리가 희경의 귓가엔 신나는 노랫소리로 들려온다.
*다음화에 계속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