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마음의 상처를 지우기 위해
살다 보면 누군가로부터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고 가슴 아파하면서 괴로워할
순간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면 냉정하게, 냉철하게 생각하다가도 울컥거리는 마음을 주체 못 하고 마음의 병을
앓게 되기도 한다.
그러한 상태가 심할 때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그런데 정작 상처를 준 사람은 본인이 그렇게 한 줄도 모르고 아무런 인식조차 못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그래도 한 사람이 그러면 조금은 나은 편이다.
가족이라는 명목하에 집단적으로 행해지는 경우에는 자칫하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구렁텅이로 몰아넣는 상황을 초래한다.
한 두 번 그러다 말면 그 와중에 다행이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집단 따돌림을 하면서 끝도 없이 얼토당토않은 일들을 트집 잡으면서
괴롭히는 경우는 결코 있어서도 안 되지만 혹여 있더라도 용서할 수 없는 일이다.
가족이니까 어떻게 해도 된다는, 어떻게 해도 괜찮다는 사고방식하에 아무렇지 않게
상처를 주는 일들이 반복되는 그런 일만은 결코 없어야겠다.
아는 사람이 더 무섭다는 말도 있듯이,
그 사람을 잘 알기 때문에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더 악용하고, 이용하는 경우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 그런 사람들을 용서해야 할 때가 있다.
결코 쉽지 않은 일임에도 마음의 문을 열어 용서를 해야 한다.
누군가를 용서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상대방의 얼굴을 마주해야 한다는 것은 몹시 힘들고 괴롭기 마련이다.
상처를 입었던 마음이 채 아물기도 전에,
혹여 상처가 아물고 굳어져 딱지가 생겼다 해도 그 쓰라림은 기억 속에 계속 남아있어
조금만 건드려도 봇물 터지듯 아픔과 고통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다.
잘 알수록 더 조심하고, 배려하며 상대를 대해야 함에도
너무 편하다고,
너무 잘 안다고,
그 정도는 괜찮다고,
그냥 흘려버려도 괜찮다는 사고방식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망가뜨리게 되는 것이다.
가끔 왕따가 사회 문제로 되는 경우를 보면서 안타까울 때가 많았다.
왕따를 당하는 당사자는 물론이거니와 그 가족이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 마음이 다분히 헤아려진다.
나 또한 그런 아픔을 겪었던 세월이 있었다.
상상하기 조차 싫은 기억이다.
누구에게서 비롯되었는지 알고 나면 마음은 더 힘들고 괴롭다.
원인을 곱씹어 보고 되새겨 보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떻게 상대방에게 얘기하고 해결할 것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게 된다.
그럴 땐, 우회적으로 돌려 말하기보다는 정면으로 직선적으로 얘기할 때가 더 나았던 것 같다.
처음 문제가 발생했을 땐,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생각하고 기다리게 된다.
또한 언젠가 진심을 알아주겠지... 하고 생각하게 된다.
나만 그렇지 않으면 되지 하고 가만히 있게 되면 사실이 아님에도 기정 사실화 되어간다.
그러다 보면 더욱더 오해의 싹을 낳고 확정적으로 나쁜 사람이 되어간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오랜 세월 침묵으로 일관하다가 어느 순간에 침묵을 깨뜨렸다.
정면으로 맞서면서부터 점차 그런 일들이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나의 경우를 비춰봤을 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있다.
하지만 이미 멍든 가슴은 쉽게 회복되지 않는다.
설사, 사과를 받았다 해도 그 상처는 똑같은 상황이 발생하면 다시 덧난다.
상대방을 겉뿐만이 아니라 깊은 속까지 용서하려면 많은 인내가 필요하고 힘들었던 마음을
모두 내려놓아야 한다.
그래서 쉽지가 않은 것이다.
완전히 용서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다시 돌출될 수 있기에
서로 똑바로 쳐다볼 수 있을 때까지,
스스럼없이 대할 수 있을 때까지,
마음을 다스리고 용서를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상처 입은 마음이 치유되기 때문이다.
자신을 위해서라도, 홀가분한 마음으로 밝게 살아가려면 다 털어내고 비워내야만 하는 것이다.
나 또한 오랜 세월 동안 그 굴레를 벗어나지 못하고 다람쥐 쳇바퀴 돌듯 무한 반복 되었었다.
그러면서 가슴 깊숙이 멍이 들었었다.
심지어 병원에 다니면서 상담을 받고 약을 먹기도 했었다.
그러한 것들은 불과 몇 년 전에야 모두 씻어낼 수 있었다.
어느 날
괴롭혔던 그 사람들을 당당히 마주할 수 있었던 순간이 있었다.
그 이후로 지금은 그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보고 산다.
이제는 그 누구도 나를 함부로 대하거나 억지스러운 말들로 왕따를 시키거나 모함하지 못한다.
나를 대하는 태도도 달라졌고, 말하는 말투도 달라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급적 일정거리를 두고 살아가고 있다.
세상을 살아가면서 한 가지 터득한 것은 아무리 가까워도 내 맘 같지 않다는 것과 최소한의 거리는
유지하면서 관계를 유지해야 함을 알았다.
너무 늦은 깨달음이다.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내면의 불편한 마음을 모두 비워야 진정으로 마음의 평온을 가져올 수
있음을 알았다.
말뿐인 용서가 아니라 마음속에 쌓아 두었던 묵은 감정을 모두 털어내고 담담하게 대할 수
있을 때 진정 용서했다고 할 수 있으리라.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도 입에 발린, 흉내만 내는 사과가 아니라 진심을 다해 솔직하게...
진정한 사과를 하는 것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용서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힘든 과정이다.
용서는 서로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
상처받은 나 자신을 위해서 분명 필요하다.
용서를 함으로 인해서 더 홀가분한 삶을, 더 밝은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힘들고 아프지만
용서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 그러한 일들이 없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가 용서하여 마음의 평화를 누리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