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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제13 화)

(소설) 도움의 손길 & 새로운 보금자리

by 황윤주

제13 화


고모네로 피난을 간 희경의 가족들은 그곳에서 하룻밤을 지냈다.

날이 밝자 그렇게 무섭게 퍼붓던 비도 그치고 언제 비가 왔었나 싶게 말짱한 하늘에

햇살이 쨍쨍 내리쬐었다.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날이다.

비를 맞아 쫄딱 젖은 옷가지들을 햇볕에 널어 말렸다.


고모네 집은 박스 공장을 해서 바쁘고 분주하였다.

매우 비좁은 공간이라 희경의 가족들은 미안해서 더 이상 머물 수가 없었다.

희경아버지는 비가 더는 오지 않을 것 같다며 집으로 가자고 하였다.

고모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발걸음을 집으로 향했다.


비를 맞으며 걸어왔던 길은 따가운 햇살에 다 말라서 질퍽거리지 않았다.

햇살 가득한 들길을 걷고 또 걸었다.

이번엔 찌는 듯한 더위가 기승을 부린다.

땀이 줄줄 흐르고 목도 말랐다.

헉헉거리며 걷는 동안 등줄기로 타고 내려온 땀 때문에 온몸이 땀범벅이 되었다.

지치고 힘은 들었지만 천둥 번개 치며 요란하게 퍼부었던 어두운 빗속을 걸었던 밤길보다는

훨씬 나았다.

무서움도 없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한낮이 훌쩍 지났다.


동네 어귀에 들어서자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려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서 그곳을 향해 걸어갔다.


커다란 트럭주위에 사람들이 몰려 서로 아우성치며 손을 뻗고 있었다.

적십자에서 수재민에게 생필품을 나눠주려고 온 것이었다.

그릇이며 옷가지, 담요, 라면등 구호 물품을 한가득 싣고 와 나눠주는데 서로 먼저 받겠다고 아우성이다.

하나라도 더 받으려고 서로 밀치며 야단이었다.

마치 도떼기시장 같았다.

늦게 간 희경이네는 비집고 들어갈 엄두도 못 냈다.

그렇게 한바탕 아우성이 끝났다.

늦게 갔음에도 그릇 몇 개와 라면을 받았다.

또 다른 트럭에서는 식수를 공급해 주고 있었다.

물통들이 즐비하게 늘어져 있었다.

먹을 물을 받느라 모두들 분주하게 움직였다.

희경이네도 당장 먹을 물이 필요해 한 통 받았다.


사람들은 수해를 입어 모두 실의에 빠져있다가 도움의 손길덕에 그나마 힘을 얻고 활기를 되찾아갔다.

물에 잠겨 못 쓰게 된 살림살이를 치우고, 물에 젖은 옷가지들을 빨아 널고, 그릇들을 씻고 하느라

모두가 진땀을 빼고 있다.


희경이네도 방까지 물이 들어와서 치울 것이 많았다.

아궁이에 물이 한가득 차서 그것부터 퍼냈다.

불을 피워 방을 말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라면을 받아서 간단하게 요기를 면할 수 있었다.

소독차가 와서 온 동네를 지나면서 소독을 하고 다닌다.

철 모르는 아이들은 소독차 뒤꽁무니를 신나게 쫓아다니며 달려 다닌다.

소독 연기가 부옇게 퍼져나갔다.


희경은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마음속으로 이다음에 커서 불우한 사람들을 보면 꼭 도와야겠다고 다짐했다.


며칠이 지났다.

학교에서 불우이웃 돕기 성금을 모금하였다.

누군가 도움의 손길이 필요로 하는 사람이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많은 돈은 아니지만 천 원을 성금으로 냈다.

가난에 지독히 찌들어본 희경은 도움의 손길이 얼마나 중요한지, 얼마나 간절한지 잘 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사람들의 심정을 그 누구보다 잘 안다.

그렇기 때문에 희경의 집도 가난하지만 동참하는 것이다.


희숙과 남규의 사랑은 날이 가면 갈수록 무르익어갔다.

서로에 대한 애틋함으로 가득 찼다.

서로 눈빛만 봐도 마음을 알 수 있을 만큼 사랑이 깊어졌다.

가족들과도 화기애애하게 지냈다.


희경어머니는 팥을 고아 팥물을 만들고, 밀가루 반죽을 하여 칼국수를 만들어 팥칼국수를 끓였다.

사위남규가 좋아하는 것이다.

남규는 커다란 그릇에 가득 담긴 팥칼국수에 설탕을 넣어 휘휘 저은 뒤 게눈 감추듯 뚝딱 먹었다.

얼굴엔 흐뭇한 표정이 가득 담겼다.

잘 먹는 남규를 바라보는 희경어머니도 덩달아 기분이 좋았다.


희경어머니는 음식 솜씨가 남달랐다.

뭐든 하면 입에 쩍쩍 달라붙을 정도로 맛깔나게 만들었다.

동네 사람들도 칭찬을 할 정도로 손맛이 좋았다.


희경아버지가 직장에 잘 다니면서 집안 형편도 많이 좋아졌다.

식구가 늘어서 집이 비좁았다.

희경아버지는 이사를 가야겠다 마음을 먹었다.

사위남규를 데리고 다니면서 일을 가르쳐주었다.

두 사람은 콤비를 이루었다.

남규도 가르쳐 주는 대로 일을 배워나갔다.

그런데

걱정거리가 생겼다.

남규가 군대를 가야 했다.

군대를 가야 할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희숙과 남규도 군입대를 앞두고 불안하고 걱정이 되었다.

3년이라는 긴 세월을 떨어져 지내야 하기에 하루하루가 초조하였다.

밤에 잠을 설치는 날이 많아졌다.


희경아버지는 남규가 군입대 하기 전에 이사를 가야겠다고 결심울 하고 서둘러 집을 보러 다녔다.

가진 돈이 그리 많지 않아서 고민이 많았다.

번듯한 집을 구하기엔 돈이 턱없이 부족하였다.

온 동네를 다 다녀봐도 희경이네가 이사 갈 집은 구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고민 끝에 윗동네 뚝집이 생각났다.

판자로 지은 집들이긴 하지만 지금 살고 있는 집보다는 훨씬 넓어 더 낫겠다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거기라면 지금 가진 돈으로 살 수가 있겠다 싶었다.

내 집을 갖게 되는 것이다.

고민고민 끝에 그렇게 하기로 결정하였다.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큰방이 두 개, 넓은 부엌, 가게를 할 수 있는 공간이 있었다.

단지 흠이라면 먹을 물을 아랫동네에서 길어다 먹어야 한다.

그렇지만 훨씬 마음 편히 살 수가 있어서 이사하기로 한 것이다.

비록 판잣집이기는 하지만 내 집으로 이사한 게 꿈만 같았다.

무두들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희경아버지는 방 하나를 희숙과 남규에게 쓰라고 하였다.

그동안 다락방에서 지내왔는데 처음으로 반듯한 방이 생겼다.

희숙은 처음 갖는 자신의 방을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제법 신혼 분위기도 났다.

모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신혼을 즐겼다.


남규의 입대 날짜는 하루하루 빠르게 다가왔다.

희숙과 남규가 정이 두터워질수록 3년이라는 긴 세월을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아쉬움과

불안이 더욱 짙어만 갔다.


아랫동네에 살 때보다 조금은 더 시끄러웠다.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보니 조금만 큰소리를 내면 다 들려왔다.

그래도 두 다리 쭉 펴고 잘 수 있어서 모두가 즐겁고 행복했다.

희경부모님은 조그맣게 가게를 내기로 하였다.

희경어머니도 생선을 머리에 이고 다니지 않아도 되고,

희숙도 공장에 일을 안 다녀도 되기에 모두에게 좋은 것이다.


남규가 군입대 하는 날이다.

희경어머니는 물론 희숙도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아침 준비를 서둘렀다.

남규가 든든히 먹고 갈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훈련소에는 갈 수 없지만 배웅을 잘하고 싶었다.

아침을 먹는 내내 모두가 표정이 어두웠다.


희숙과 남규는 포옹을 하며 작별 인사를 하였다.

눈가에 눈물이 촉촉이 젖었다.

남규는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뒤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고 몇 번을 거듭 그렇게 돌아본 후에야 발걸음을 재촉하였다.

희숙도 남규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홀로 서서 물끄러미 바라보며 훌쩍거렸다.

남규가 가고 난 후에도 한참 동안 멍하니 바라보며 서 있었다.

희숙은 방문을 닫고 서럽게 울고 또 울었다.

가슴이 터질 듯 아려왔다.

꺼이꺼이 우는 희숙의 울음소리에 희경어머니도 가슴이 무너져 내렸다.

희경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멍하니 먼산만 바라보았다.

희숙은 울음을 그치고 나서도 허공을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있었다.


찌르륵거리는 풀벌레 소리만이 한여름 밤하늘에 울려 퍼지고 있다.

휘영청 밝은 달빛이 창문에 드리워져 어두운 방 안에 홀로 앉아있는 희숙을 밝게 비추고 있다.

밤하늘에 별들만이 소리 없이 반짝반짝 반짝인다.

희경은 새 보금자리에서 설레는 가슴 안고 꿈나라를 날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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