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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 (제19 화)

(소설) 기쁨

by 황윤주

제19 화


하늘에서 펄펄 눈이 내린다.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해가고 있다.

거리는 금세 눈이 쌓여갔다.

사람들은 엉금엉금 거북이걸음을 걷는다.

조심조심

살금살금

혹여 미끄러져 넘어질까 잔뜩 웅크리고 걸어간다.

도로옆 가로수 가지마다 눈꽃이 피었다.

이따금 빛을 받아 영롱하게 반짝거렸다.

갑자기 내린 눈 때문에 도로 위 차들도 속도를 줄인 채 천천히 달리고 있다.

교통순경 아저씨가 호루라기를 불며 수신호로 막혔던 차들을 정리하고 있다.

꽉 막혔던 도로가 제 모습을 찾아간다.


희경은 크리스마스가 얼마 남지 않아서 카드를 서둘러 만들기 시작하였다.

책갈피에 꽂아두었던 나뭇잎들을 꺼냈다.

단풍잎, 은행잎을 하나하나 집어 들고 카드 위에 살포시 얹고 물감을 눈이 내리듯 칫솔로 살살 뿌렸다.

그런 다음 물감이 번지지 않게 조심조심 단풍잎과 은행잎을 치웠다.

다 마른 카드는 그럴듯해 보였다.

시도 조금 써넣고,

즐거운 크리스마스 글자도 써넣었다.

소녀의 감성도 조금 불어넣었다.

희경은 카드를 받고 기뻐할 친구들을 떠올리며 줄곧 미소를 지었다.

처음 만들어 본 카드지만 나름 성공적이었다.

정성스럽게 평소 하고 싶었던 말들을 한 글자 한 글자 적고는 곱게 접어 봉투에 넣었다.

우정과 사랑도 듬뿍 담았다.


거리는 크리스마스 캐럴송으로 한껏 부풀어 올랐다.

사람들은 저마다 어깨를 들썩이며 흥얼거리고 다녔다.

저 멀리 들리는 교회 종소리,

거리 곳곳에서 반짝이는 크리스마스트리가 금빛 찬란하다.

거리를 걸어가는 사람들 발걸음이 캐럴송에 맞춰 걸어가니 한결 가벼웠다.

희경도 캐럴송을 따라 부르며 한껏 들떠서 신이 났다.


크리스마스이브부터 눈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다.

온 세상이 눈이 부시게 하얗다.

하나님과

성모마리아의 은총이 온 세상에 널리 퍼져나갔다.

교회 종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땡~~ 땡~~ 땡~~~~

교회를 다니지 않아도,

성당에 다니지 않아도,

모두가 즐겁고 기쁘게 성탄절을 즐겼다.

크고 작은 선물도 주고받았다.

모두가 한마음인양 축복의 날이었다.

집 근처 교회에서 아이들에게 빵과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아이들은 신이 나서 하하 호호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밤이 되자 신도들이 집집마다 다니며 촛불을 들고 창문 앞에 서서 복음성가를 불러주며 하나님의

은총을 전파하였다.

'고요한 밤 거룩한 밤 어둠에 묻힌 밤~~'

조용한 밤하늘에 울려 퍼졌다.

희경은 말없이 조용히 듣고 있었다.

듣고 있는 동안 가슴에 몽글몽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피어올랐다.

껌벅이던 눈은 어느샌가 스르르 감겨 잠이 들었다.


영호가 고등학교에 합격을 하였다.

꿈만 같았다.

뛸 듯이 기뻤다.

떨어질 줄 알았는데 합격을 한 것이다.

영호는 가슴이 뭉클하였다.

시험을 보고 난 이후 줄곧 불안했었다.

마음이 조마조마했었다.

이제야 안도의 숨을 쉬었다.

비록 신설 학교지만 영호에겐 꿈같은 현실이 눈앞에 펼쳐진 것이다.

희경부모님도, 형제들도 모두 축하해 주었다.

영호는 기쁜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다.

고등학교를 못 가고 낙오될까 봐 속이 까맣게 타들어 가고 있던 차에 단비 같은 소식이 전해왔기에

그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컸다.

예비 소집일 날 학교 교정을 둘러본 영호는 입을 다물 수가 없었다.

깨끗하고 커다란 건물을 보고 두근대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커다란 포부도 갖었다.

기필코 잘 해내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였다.

영호는 시골에 계시는 할머니께도 기쁜 소식을 전했다.

할머니께서도 우리 장손이 합격했다며 엄청나게 좋아하셨다.

그리고 축하의 말씀과 함께 학비에 보태라며 돈도 조금 보내주셨다.

그 기쁨은 며칠 동안 계속 이어져 웃음이 끊이질 않았다.

하하하~~~

호호호~~~


희경아버지와 남규는 같이 일을 다녔다.

사위와 함께 다니면서 틈틈이 일을 가르쳐 주었다.

남규도 가르쳐 주는 대로 제법 잘 따라 했다.

일을 하면서도 가끔씩 콧노래를 불렀다.

일을 배우는 것이 기쁘고 즐거웠다.

시골에서 처음 올라왔을 때만 해도 망막하였는데 우연히 인연이 되어 여기까지 온 것이다.

남규는 열심히 돈을 모아서 독립을 해야겠다 마음먹었다.

자신만의 가정을 꾸미고 싶었다.

희경아버지도 생활 형편이 점점 나아지자 아랫동네로 이사 가려고 계획을 세웠다.

식구도 늘어나고 형편도 나아지면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집을 알아보고 다녔다.


오빠영호는 학교에 들어가자마자 연대장이 되었다.

집안에 경사가 났다.

영호는 꿈 인지 생시 인지 얼떨떨하였다.

실감이 안 났다.

얼떨떨 하기는 희경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마치 구름 위에 붕 떠있는 것만 같았다.


영호는 목청이 엄청 컸다.

운동장에서 구령을 할 때면 교정이 쩌렁쩌렁 울렸다.

담임선생님도 그런 영호를 눈여겨보며 엄청 좋아하셨다.

학교 재단 이사장님도 점점 영호를 관심 갖고 지켜보면서 마음에 두고 계셨다.


영호는 학교 생활이 즐거웠다.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고 활기차게 생활하였다.

축구도 하고, 운동도 하면서 하루가 다르게 두각을 나타냈다.

자주 상장도 받고, 상품도 받았다.

상품은 언제나 동생희경에게 주었다.

영호는 날이 갈수록 어깨가 으쓱해졌다.

희경도 오빠영호가 자랑스러웠다.

시골에서 올라올 때만 해도 잘 적응할 수 있을까? 가족 모두 걱정했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엿한 고등학생이 되었다.

희경의 가족 눈엔 반듯하게 교복을 입고 모자를 쓴 영호가 멋있어 보였다.

그때부터 조금씩 집안의 기둥이 되어가고 있었다.


희경과 영호는 희숙에게 미안했다.

특히 희경은 언니가 자신을 돌보고 살림하느라 학교를 중퇴한 것이 내내 마음에 걸리고 미안했었다.

희숙도 못 배운 것이 아쉽고 미련이 남았다.

하지만 가족들에게 내색은 하지 않았다.

그저 속으로 동생들이 부러웠다.

그래도 머리는 좋은지 쉬운 글자는 조금씩 알아갔다.

계산도 빠르게 척척 해냈다.

가게를 보면서 웬만한 것은 암산으로 계산할 정도로 머리가 좋았다.

한마디로 똑순이었다.

희숙은 노래를 구성지게 잘 불렀다.

언제 배웠는지 꺾기도 잘하고 노랫가락이 간드러졌다.

타고난 듯하였다.

노래는 희경부모님도 잘 부르셨다.

희경아버지 애창곡은 '한 많은 대동강'이고

희경어머니 애창곡은 '여자의 일생'이다.

희경은 부모님께서 노래를 부르실 때마다 가슴이 철렁거렸다.

한과 애절함이 배어있었기 때문이었다.


희숙의 아들 민혁은 아장아장 걸어 다니며 이것저것 만지고 끌어내리며 호기심을 자아냈다.

"엄마"

"아빠"라고 한마디 할 때마다 가족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박수를 쳤다.

민혁은 이목구비도 또렷하고 피부도 허여멀 건하니 잘생겼다.

엄마도 예쁘고, 아빠도 잘생겨서 똑 닮았다.

온 가족 사랑둥이, 귀염둥이다.


따스한 봄 햇살이 밝게 창을 비추었다.

아지랑이가 스멀스멀 피어오른 듯 웃음꽃이 피어올랐다.

매일매일 웃을 일이 많아졌다.

기쁨이 충만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지난날 가난 속에 찌들었던 어두운 표정들이 어느샌가 기쁜 얼굴로 환하게 웃는 밝은 표정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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