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미안한 마음
제20 화
오월의 여왕이라 불리는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담장 너머에 드리워졌다.
코끝에 스치는 라일락 꽃, 아카시아 꽃 향기가 거리를 지나가는 내내 솔솔 풍겨왔다.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향긋한 꽃내음에 미소가 저절로 지어진다.
희경은 향기로운 꽃내음이 가득한 거리를 지날 때마다 행복하였다.
희경어머니는 아직 새벽이라 식구들이 모두 잠들어 있기 때문에 곤히 잠들어 있는 희경이를
살며시 흔들어 깨웠다.
청과물 도매 시장을 가려고 새벽부터 서둘렀다.
희경은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났다.
어젯밤에 미리 얘기해 둔 터라 당황하지는 않았다.
잠을 깨느라 세수를 하고 곧장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집 앞에 세워두었던 리어카를 조심스레 내렸다.
희경어머니는 만삭이었다.
어머니를 따라나서는 희경은 걱정이 되었다.
새벽바람에 졸음이 싹 달아났다.
아무도 다니지 않는 거리를 덜그럭거리는 리어카를 끌고 서서히 밝아오는 새벽길을 걸어가고 있었다.
문래동 청과물 시장은 걸어서 한 시간 거리다.
희경어머니가 만삭의 배를 하고 걷기엔 다소 먼 거리다.
희경은 어머니가 걱정이 되었다.
괜찮은지 여쭤봐도 희경어머니의 대답은 한결 같이 "괜찮다"였다.
과일을 떼어다가 한 푼이라도 더 벌려는 마음에 무거운 몸을 하고 발걸음을 시장으로 향해갔다.
시장에 도착했을 땐 날이 점점 밝아져 환해졌다.
시장은 과일을 사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희경어머니 배가 뭉쳐서 딱딱해져 있었다.
숨 고르기를 하고 심호흡을 하였다.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뱃속의 아기도 힘이 들었던 모양이다.
희경어머니는 이것저것 과일을 맛을 보며 신중히 골랐다.
여름이라 개구리참외, 복숭아를 골라 실었다.
조그만 구멍가게에서 팔아야 하기 때문에 너무 많이 사가도 안 되었다.
어느새 날이 밝아 아침 햇살이 가득하였다.
왔던 길을 다시 가야 하기에 희경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조마조마했다.
리어카에 짐을 싣고 나니 끌기가 더 힘겨운지 희경어머니는 땀을 흘리기 시작하였다.
이마에 송골송골 맺혔던 땀방울은 금세 줄줄 흐르더니 온몸으로 흘러내렸다.
희경어머니는 잠시 리어카를 멈춰 세우고 흐르는 땀을 닦았다.
희경은 마음이 불안 불안하였다.
"내가 끌까?"
말을 건네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집까지 잘 갈 수 있을지 걱정이 한가득 쌓여갔다.
출산 예정일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욱더 긴장이 되었다.
조마조마하였다.
그리고 미안했다.
자신이 한없이 작게 느껴졌다.
희경어머니는 괜찮다며 다시 리어카를 끌기 시작했다.
다리를 건너는데 경사 가져서 뒤에서 밀어도 오르기가 힘들었다.
좀처럼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다.
한참만에 겨우 겨우 다리를 건넜다.
집까지 가려면 아직도 한참 더 가야 한다.
이제 겨우 절반정도 지났다.
만삭의 배를 하고 가기엔 까마득한 거리다.
그래도 한결 편안한 지 거칠게 몰아쉬던 숨소리가 조금은 잦아들었다.
햇빛이 쨍하고 내리쬐었다.
날씨가 무더워 땀으로 목욕을 하다시피 하였다.
옷이 땀에 젖어 축축하더니 더운 열기로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드디어 집에 도착하였다.
희경어머니는 선 채로 과일들을 팔기 좋게 진열하였다.
그리고 허기를 달래려고 늦은 아침을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눈이 퀭하니 쑥 들어갔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희경은 어머니를 바라보며 짠한 마음이 들었다.
또 한편으로는 생활력이 강한 어머니가 존경스러웠다.
자신이 너무 어려 힘이 못되어드린 것이 못내 아쉽고 미안했다.
희경어머니가 잠시 쉬려고 누워 있는데 갑자기 배가 아파왔다.
쥐어짜듯이 아파왔다.
배를 움켜쥐었다.
출산 예정일은 아직 남았는데 심상찮은 진통이 시작되었다.
'너무 힘이 들었던 탓일까?'
희경은 속이 타들어갔다.
아무래도 출산 징후 같았다.
희경어머니도 긴장되고 초조한 건 마찬가지였다.
진통은 점점 더 빨라지고 심해졌다.
그러더니 양수가 먼저 터져 나왔다.
희경어머니는 그토록 아픈데도 소리 한 번 지르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힘을 주기 시작하였다.
희경은 어머니 말씀대로 출산에 필요한 것을 준비해 두었다.
힘이 다 빠질 정도로 계속 힘을 주고 또 주었다.
그러자 조금씩 아기의 머리가 보이기 시작하였다.
마지막 있는 힘껏 힘을 주자 아기가 쑥 빠져나왔다.
"응애~~~ "하는 울음소리가 들렸다.
희경어머니는 기진맥진하여 축 늘어진 채 그대로 드러누웠다.
희경아버지는 문밖에서 서성이며 안절부절못하고 초조해하더니 언제 미역국을 끓였는지 밥과 함께
가지고 들어왔다.
얼굴엔 미안함이 가득 배어 있었다.
널브러진 아내를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슴 언저리 한켠이 아려왔다.
수고했다.
애썼다.
그 말 한마디조차도 건네지 못하고 방을 나왔다.
그저 가슴이 먹먹한 채 서성일뿐, 답답하고 미안한 마음에 애꿎은 담배를 벅벅 피우며 허공에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희경어머니는 남편이 가져다준 밥과 미역국을 꾸역꾸역 다 먹었다.
얼른 좋아져야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기는 엄마 곁에 누워서 천진스럽게 입을 오물거리기도 하고, 입을 삐쭉거리기도 하고,
금방 울듯이 눈을 찌푸리기도 하였다.
그동안 엄마 뱃속에서 하던 배냇짓을 하고 있었다.
엄마 뱃속에서 많이 힘들었었나 보다.
희경은 갓 태어난 동생을 바라보면서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서 활짝 웃으며 밝게 살아가기를
빌었다.
"동생아 애 많이 썼다."라고 말을 건네며 웃음을 지어 보였다.
어머니와 함께 청과물 시장을 다녀올 때를 생각하면서, 어머니께도, 동생에게도 한없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하늘은 그 마음을 알고 있을까?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푸른 하늘에 햇살만이 반짝이며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