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 속에서 피어난 꽃 (제23 화)

(소설) 인연, 다시 만난 선생님

by 황윤주

창문으로 살랑살랑 불어오는 봄바람의 향기가 솔솔 풍겨왔다.

학생들은 설레는 마음으로 처음 마주 할 담임선생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딩~ 동~ 댕~ 종이 울렸다.

교실은 얘기 소리로 웅성웅성거렸다.

교실 문이 열리자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희경은 교실로 들어오시는 선생님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런 경우도 있나?'싶었다.

담임선생님은 희경이 다녔던 중학교에서 생물을 가르치셨던 남자 선생님이셨다.

생김새는 약간 대머리에 짧은 머리카락, 동그란 얼굴에 이목구비가 또렷하고 몸집은 작고

통통하였다.

예전 중학교에서 뵙던 그 모습 그대로였다.


희경은 무척 반가웠다.

내심 '선생님께서 날 알아보시려나?'

궁금하기도 하였다.

몰라 보실 수도 있지만 생활기록부를 보셨다면 알 법도 하였다.

희경은 일부러 먼저 아는 체 하지는 않았다.


인연은 돌고 도는 거라고 하지만 실감이 나지 않았다.

반 학생수가 70명 가까이 되기 때문에 학기 초에 일일이 알아보시기는 힘들 거라 생각했다.


중학교 때 생물 수업이 잠시 떠올랐다.

워낙 특별한 수업을 했었기에 기억이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실험실에서 개구리를 해부하여 각각의 부위를 배우고, 그런 다음 끓여서 뼈를 하나하나 일일이 발골하여

맞추는 것이었다.

실험하는 내내 '이걸 왜 하나?'싶었다.

해부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끓이는 동안에도 냄새가 강하게 풍겨서 숨을 쉬기도 힘들었다.

살을 발라내고 뼈를 하나씩 골라내 맞추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비위가 약해 가끔씩 "욱~ "하고 올라오기도 하였었다.

그나마 알코올로 소독을 해서 견딜 수 있었다.

뇌리에 콕 박힐 정도로 실험은 강열하게 남아 있었다.


그 밖에 붕어도 해부를 했었다.

붕어 배를 가르고 부레를 처음 보았다.

부레 때문에 물에 뜬다는 것도 신기하고 또 신기했다.

비늘과 지느러미에서 풍기는 비릿한 냄새가 코를 찌를 때마다 가까스로 숨을 참기도 했었다.


사람의 인연이란 알 수가 없는 것 같다.

언제 어느 곳에서 다시 만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럼에도 다시 만난 걸 보면 예사로운 인연은 아닌 듯싶다.

그것도 담인선생님으로 만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선생님은 차분하고 조용한 편이었다.

젊으셨지만 말씀도 적고 성품이 인자하셨다.


오빠 영호는 이사장님 손녀딸, 그녀를 만나면 만날수록 부담감은 커져만 갔다.

자꾸 기울어진 집안 환경이 신경 쓰였다.

그래서 점점 말수가 줄어들었다.

만나고 와서도 가족 누구에게도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았다.

그녀를 계속 만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만 깊어질 뿐이었다.

부모님께서는 소개받아서 만나고 있다는 얘기만 했을 뿐 더 이상은 해주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도, 나이도, 성격도.

그래서 가족들은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계속 만나야 할까?'

'그만두어야 할까?'

마음속으로 갈등을 하면서도 쉽사리 결정을 못 내렸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대학교도 가야 하고 군대도 가야 했다.

물론 대학교는 시험을 봐서 붙어야 갈 수 있는 것이었다.

현재로서는 불투명하기에 마음만 오락가락하였다.

집안 형편도 그리 넉넉한 편이 아니었기에 군입대 지원을 할까도 생각하였다.


예배를 보고 교실로 가는 길 양옆으로 빨간 샐비어꽃이 줄지어 아름답게 피어있다.

어찌나 예쁜지 희경은 몇 번씩 고개를 돌려 쳐다보았다.

여학생들의 재잘거림이 계속되는 가운데 발걸음도 덩달아 신이 났다.

교실로 들어가는 내내 얘기 소리가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제2 외국어인 독일어 수업시간이 되었다.

희경은 어떤 선생님이 들어오실지 사뭇 궁금하였다.

교실 문을 열고 들어오시는 여자 선생님은 아주 세련된 멋쟁이셨다.

짧은 갈색 웨이브 머리에 얼굴은 하얗고 갸름한 형에 짙은 쌍꺼풀, 오뚝한 콧날, 얇은 입술에

핑크빛 립스틱을 바른 30대 중반 정도 돼 보이는 날씬한 몸매를 가지신 젊은 분이었다.

첫눈에 딱 봐도 우아하고 매력이 넘쳐흘렀다.

희경의 눈은 초롱초롱 빛이 났다.

눈이 뚫어져라 선생님을 향하고 있었다.

Y대를 나오신 분으로 모교에 대한 자부심도 대단하셨다.


희경은 처음 대하는 언어가 다소 생소하였다.

하지만 재미도 있었다.

한 단어 한 단어 발음할 때마다 신기하기도 하였다.

수업을 하는 동안 한순간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꼼꼼히 메모도 하고 밑줄도 그어가며 수업을 받다 보니 매우 흥미로웠다.

그렇게 푹 빠져 수업을 듣다 보니 어느새 수업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려왔다.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희경은 처음 만난 선생님 이미지가 너무나 좋았는지 얼굴 가득 미소를 띠었다.

톡톡 튀는 말씀, 자신감 넘치는 모습이 꽤 인상 깊었다.

너무나 멋있어 보여 그 잔상이 뇌리 깊숙이 저장되어 계속 빙글빙글 돌며 떠올랐다.

한발 더 나아가 멋있는 여성상을 그려 보기도 하고, 롤 모델로 삼기도 하였다.

많은 인연들 속에 이토록 희경의 마음을 흔드는 경우는 처음이었다.


새로운 꿈들이 계속 샘솟았다.

그동안 잠자고 있던 모든 것들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책을 읽고, 교정을 거닐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문예반에 들어가서 조금 더 구체적으로 꿈을 향해 나아갔다.

문예반 할머니 선생님도 희경의 가슴에 문학이라는 씨앗을 심고 싹이 움트게 해 주셨다.

희경은 시를 지어 보았다.

책을 읽고 독후감도 써 보았다.

에세이 글도 써 보았다.

조금은 서툴고 어색하였지만 한 글자 한 글자 꼭꼭 눌러썼다.

작은 기쁨들이 모여 커다란 행복을 가져다주었다.


하루하루가 새롭고 기다려졌다.

희망의 빛이 비쳐왔다.

학교와 집을 오가며 버스와 전철 안에서 모락모락, 몽글몽글 작은 꿈들이 피어올랐다.

하고 싶은 것, 되고 싶은 것이 점점 더 많아졌다.

마음 한편에 오로지 자신만을 위한 생각과 시간들로 꽉 채워졌다.

매일 썼다 지웠다 하면서 새롭게 그려 나갔다.

아직은 미완성이지만 언젠가는 완성하리라 굳은 신념이 뿌리 깊이 내려졌다.

전철을 타고 가는 동안 스르르 미끄러져 달리다가도 어느 지점에선 덜커덩 덜커덩거렸다.

창밖으로 보이는 맑게 갠 하늘 위로 뭉게구름이 뭉개 뭉개 떠다니고, 긴 강줄기 따라 강물이

햇빛을 받아 넘실대며 반짝반짝 반짝거렸다.

잔잔하게 빛나는 물결이 마음의 호수에 평온을 가져다주었다.

철교 위 레일을 달리는 전철 소리가 기차를 타고 가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정감 있게

들려왔다.

한강 물 위로 새들이 날갯짓하면서 빙빙 돌며 푸른 하늘을 향해 높이높이 날아올랐다.

너무나도 아름다운 경치를 희경의 마음속에, 눈 속에 계속해서 한 폭의 그림을 그려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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