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이 되면 두 아이의 소풍 도시락을 준비하느라 꽤 요란한 아침을 맞이하곤 한다. 소풍 가기 3일 전부터 아이에게 먹고 싶은 메뉴를 묻고 전날 가득 장을 봐, 냉장고에 욱여넣었다. 전쟁을 앞둔 전사처럼 냉장고 안을 몇 번이고 확인한 뒤 비장하게 문을 닫았다.
손이 둔한 탓에 만들기와는 거리가 멀었던 내가 이른 아침부터 검은 참깨로 소시지에 눈을 붙이고 있는 모습에 실소가 흘러나왔다. 엄마가 되니 별걸 다 하네 싶었다. 엄마란 아이를 위해서라면 소시지로 문어도 만들어 낼 줄 아는 사람인가 보다.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아이가 기뻐하는 모습을 상상하며 다리가 네 개인 문어 소시지와 미니 유부초밥을 만들었다. 걔 중에 잘 만든 것들만 뽑아 도시락 속에 넣으니 작은 공간이 벌써 꽉 찼다. 누가 잡고 흔들기라도 한 듯 어질러진 주방에 비해 도시락은 단출했다. 이른 소란에 잠에서 깬 남편이 ‘아침에 문 연 김밥집 많은데.’라며 한마디 했다.
“그래도 소풍이잖아.”
2단 도시락 위에 갖가지 과일을 담으려 말을 이었다.
“소풍 도시락은 내가 싸 줘야지.”
유치원 소풍날, 손바닥만 한 돗자리에 아이들과 엉켜 도시락 뚜껑을 열었던 날이 기억난다. 시금치, 단무지, 소시지가 전부인 밋밋한 김밥의 형색에 나는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소풍날 들뜬 마음이 순식간에 가라앉았다. 노랗고 빨갛고 온갖 색이 어우러지다 못해 깨까지 뿌려져 있는 친구의 김밥을 보자 내 김밥은 더 초라해 보였다. 그런 나를 보곤 선생님은 격려 아닌 격려를 보냈다.
“와! 수현이 김밥 정말 맛있겠다! 선생님 이런 김밥 정말 좋아해!”
이런 김밥이 무슨 김밥인지는 모르겠으나 선생님 눈에도 내 김밥이 뭔가 다르긴 한가 보다 생각했다. 이른 아침 거실에서 김밥을 말고 계셨던 할머니 모습이 떠올랐다. 김밥을 말던 할머니의 손이 곧 대단한 요리를 만들어 낼 것처럼 보여서 딱히 훈수 두지 않았는데 결과가 이럴 줄이야. 이럴 줄 알았으면 그냥 사달라고 거실에 드러눕는 거였는데. 선생님은 이런 김밥을 좋아할지 몰라도 나는 아니었다.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시늉만 하는 내게 선생님은 옆 친구, 또 그 옆 친구의 김밥을 내 앞에 날랐다. 시금치, 단무지, 소시지로 맛을 낸 김밥보다 훨씬 다양한 맛이 나는 친구의 김밥을 입에 넣고 꼭꼭 씹었다. 김밥을 꿀꺽하고 삼키는데 꼭 돌을 삼키는 것처럼 목이 콱 막혔다. 목이 막히자 눈물이 차올랐다. 초라한 김밥만큼 우는 것 또한 창피해서 소매 끝으로 빠르게 눈물을 닦아냈다. 선생님의 손이 내 어깨에 앉았다가 내려갔다. 선생님은 애써 모른 척했는데 앞에 앉았던 친구가 아는 체를 해 왔다.
“선생님, 수현이 왜 울어요?”
선생님은 그 친구의 질문도 모른 척하며 그냥 웃기만 했다. 지금의 나였다면 ‘김밥이 못 생겨서.’라고 대답이라도 해줬을 텐데. 도시락을 비우고 제각기 뛰어노는 아이들을 돗자리 위에 앉아 바라만 보았다. 가을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그림자가 쭉 뻗은 내 발끝에 닿았다. 유치원 가방 앞주머니에서 땅콩 맛 알사탕을 꺼내 입에 넣었다. 곱게 빻은 땅콩이 촘촘히 박힌 고소한 알사탕을 입안에 굴리다 보면 어느새 땅콩 잔해만 입안에 남아있었다. 금방 녹아버린 사탕처럼 초라한 김밥 행색은 하루 만에 잊혔지만, 못생긴 김밥을 받아 본 적 없는 친구의 순수한 눈빛은 아직도 까슬까슬하게 남아있다.
이십 년이 지나 어느 날 할머니께 왜 소풍날 김밥에 시금치만 넣어주었냐며 물었던 기억이 있다. 너무 뜬금없는 질문에도 할머니는 마치 대답을 기다려온 사람처럼 ‘다른 건 몰라도 김밥에 온갖 재료 다 넣어 싸줬다’라며 펄쩍 뛰셨다.
“참나, 내가 김밥 싼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어이없다는 듯 눈을 흘기는 할머니가 귀여워서 나는 인심 좋은 사람처럼 웃었다.
“아이고~ 그렇다고 칩시다.”
할머니가 그렇게 기억하고 있어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보이지는 않지만 세 가지 재료로 만든 초라한 김밥 속에 할머니가 꾹꾹 눌러 담은 손녀를 향한 사랑과 애정이 있었겠지. 할머니 나름의 최선이었던 소풍날 김밥은 9월 가을바람이 불 때면 자꾸 생각났다. 그땐 먹기 싫어서 닫고만 싶었던 도시락 뚜껑을 가을볕 아래 활짝 열어두고 싶다. 이젠 맛볼 수 없는 할머니의 사랑 대신 모난 파인애플 조각을 입에 넣으며 아이의 도시락 뚜껑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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