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Oct 21. 2021

달마도가 걸린 집

   초등학교 4학년이 되고 나서 친구 집에 놀러 가는 시간이 많아졌다. 하교 후, 아무도 없는 친구의 집으로 가는 여학생들의 웃음과 발걸음엔 작은 자유로움과 해방감이 있었다. 친구는 학교 뒤편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빌라에 살았던 나는 엘리베이터를 타면서 조금 긴장하기도 했다. 낯선 엘리베이터의 버튼과 한 층, 한 층 올라갈 때마다 바뀌는 숫자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으면 어느새 친구가 사는 층에 도착해 있었다. 몇 초 되지 않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내겐 꽤 길게 느껴졌다. 


  우린 새로운 여행지에 도착한 사람들처럼 약간의 흥분과 설렘을 안고 신발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는 친구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현관문이 열리자 정체되어 있던 4인 가족의 체취가 공기를 타고 우리에게 밀려왔다. 집 안의 공백이 우리의 말소리로 채워졌다. 우리는 발걸음을 조심스레 옮기며 집 구경에 여념이 없었다. 


  “여기가 화장실이고, 저긴 안방, 저기가 내 방이야.”


  차분하게 집을 소개하는 친구의 모습은 교실에서만 보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상기된 말투와 표정에서 오늘 너희들의 재미를 책임지겠다는 다짐이 살짝 비치기도 했다. 아이들은 엄마를 쫓는 새끼 오리들처럼 친구 뒤를 따라다니며 집에서의 주의사항에 대해 들었다. 언니 방과 안방은 들어가지 말 것. 친구 책상 위에 놓인 것은 만져도 되지만 선반 위 것은 만지지 말 것. 물과 음료는 냉장고에 있으니 마시되 과자는 허락받고 먹을 것, 등등. 화장실 좀 써도 되느냐, 이것 좀 만져도 되느냐 하는 아이들의 물음에 성실히 대답하며 그 누구보다 열정 가득한 가이드가 된 듯 보였다. 


  친구의 방엔 친구 키만 한 작은 침대와 모서리가 조금 헤진 책상이 있었다. 책상 벽 쪽엔 친구의 유치원 졸업 사진과 초침이 고장 난 시계가 걸려있었다. 헬로키티 캐릭터와 연예인 얼굴이 그려진 스티커가 붙여진 책상과 손이 탄 인형이 놓여 있는 침대를 한참 동안 구경했다. 그때만 해도 내 방이 없었던 터라 친구의 방은 내게 부러움의 대상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침대가 가지고 싶어 집에 있는 이불을 죄다 꺼내 쌓아두고 위에 누웠지만, 내가 만든 이불 침대는 힘없이 쓰러지기만 해서 늘 울상이 되곤 했다. 침대 끝에 걸터앉아 인형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실제로는 할 수 없는 좋겠다- 라는 말을 속으로 중얼거렸다. 침대 스프링이 주는 단단하지만, 탄력 있는 고정력을 느끼면서.


  학교에서 틈만 나면 하던 이야기들을 두 시간 동안 떠들었다. 이야기가 끝이 날까 싶으면 바닥에 엎드려 있던 아이가 양반다리를 하고 앉으며 말을 붙였고, 의자에 앉은 아이가 의자를 빙빙 돌려가며 말을 보탰다. TV 속 연예인이 몇 번 언급되고 숙제와 공부 이야기가 한참 오고 가는 도중이었다. 


  “근데 우리 엄마는 맨날 공부하래.. 짜증 나..”


  내 옆에 앉은 아이가 내게 몸을 기대며 칭얼거렸다. 서로 나도, 나도 하며 입을 열었지만 제일 신나게 떠들던 나 혼자만 말없이 웃었다. 유일하게 입이 다물어진 순간이었다. 


  “울 엄마는 언니랑 나 차별한다? 언니만 더 좋아해.”


  아이들은 훌륭한 방청객이 된 것처럼 동시에 안타까운 탄식을 내뱉었다. 입을 삐쭉 내밀었던 친구는 무언가 생각난 듯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수현인 좋겠다. 외동딸이라서!”


  일순간에 아이들의 얼굴이 나를 향했다. 그 시절 나는 고모 내외와 함께 살고 있었는데, 늘 고모와 고모부를 엄마, 아빠로 둔갑시켜 말하곤 했다. 그래서 아이들은 나를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외동딸로 알고 있었다. 순간 당황스러움이 일었지만, 노련한 연극배우처럼 표정을 바꿨다. 


  “하나도 안 좋아. 난 언니 있었으면 좋겠는데..”


  앞에 놓인 과자를 입에 가져가 꿀꺽 삼키며 어색하게 웃었다. 내 말에 친구는 언니로 인해 자신이 받았던 차별과 부당함에 대해 토로했다. 언니의 흉을 볼 땐 진짜 억울하고 화가 나는 게 맞나 싶을 정도로 우리를 웃기며 이야기했다. 한참을 웃다 우리는 목이 말라 거실로 나왔다. 얼마나 많이 웃고 떠들었는지 목이 따가웠다. 거실을 가로지르며 부엌으로 가는 도중 TV 위에 걸린 커다란 가족사진이 내 눈에 들어왔다. 처음 집에 들어왔을 때, 가장 눈에 띄었던 가족사진이었다. 


  TV에서나 봤던 가족사진을 눈앞에서 처음 본 나는 박물관의 그림을 감상하듯 천천히 사진을 훑었다. 지금보다 몸집이 훨씬 작은 친구와 오히려 지금 친구의 얼굴 같기도 한 그녀의 언니, 그리고 그녀들의 부모님이 나를 향해 빙그레 웃고 있었다. 


  “너, 너희 언니랑 똑같다.”

  “우웩.”


  친구의 토하는 시늉에 아이들이 꺄르르 웃었다. 우웩 소리가 날 만큼 탐탁잖은 언니. 맛있는 반찬만 골라 먹는 얄미운 언니. 자기만 새 옷을 사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야속한 언니. 나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뭐 하나 맘에 드는 구석이 하나도 없는 그녀의 언니와 일곱 살쯤 돼 보이는 친구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았다. 그 나이에 맞게 어른이 시키는 대로 어색하게 웃어 보이는 얼굴. 이별을 모르는 평온한 얼굴. 


  가족사진을 보다가 우리 집 거실에 걸려있는 달마도가 생각났다. 잡귀를 쫓아내고 복을 불러온다는 명목으로 거실 가운데 떡하니 걸려있던 달마도. 도대체 어딜 보고 있는지 모르겠는 눈동자와 꾹 다문 입이 심술 맞아 보이기만 했던 달마도 속 그림이 내 눈엔 더 귀신같아 보였다. 늦은 밤 볼일을 보기 위해 거실로 나왔을 때도 달마도와 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고개를 푹 숙인 채 화장실로 들어가곤 했다. 언제고 할머니께, 이 정도 걸어 놨으면 내 소원 하나라도 이루어져야 하는 거 아니냐며, 저 달마도 좀 치우면 안 되냐고 우는소리를 했지만 어림도 없었다. 오히려 할머니는 ‘저걸 뭐 너 좋으라고 걸어놓은 줄 아냐’ 하시며 콧방귀를 뀌셨다.  


  거실 한가운데 가족사진이 있는 친구는 늦은 밤 달마도의 눈치 없이 화장실을 오갈 수 있었겠구나. 달마도 대신 사진 속 온 가족이 내려다보는 이 집 안에서 밥을 먹고, TV를 보고, 웃고 떠들며, 사소한 것으로 언니와 다투고, 또 엄마께 혼나기도 하면서 자랐을 친구의 모습을 상상했다. 그리고 상상이 길어질수록 친구의 얼굴은 내 얼굴로 변해갔다. 내가 웃고, 내가 울고, 내가 밥을 먹으며 ‘엄마’를 말하는 순간들이 짧게 내 속을 훑고 지나갔다. 쫓아낼 잡귀도, 더 많은 복도 필요 없는 평범한 4인 가족 속에 자연스레 섞여 있는 내가 있었다. 


  “수현아.. 뭐해?” 


  친구의 목소리에 TV 속 까만 화면에 비친 내가 보였다. 나는 홀로 우두커니 서 있었다. 가족사진 속 사람들처럼 서로의 어깨를 나란히 한 누군가도 없이.


  누가 먼저 가잔 말을 꺼내기 직전까지 일어날 생각이 없던 우리는 친구 언니의 등장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우리는 현관에서 쭈뼛쭈뼛 신발을 신으며 거실 소파에 삐딱하게 앉아있는 언니에게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히.. 계세요..”


  자기 몸보다 조금 커 보이는 교복을 입은 언니는 별 대꾸 없이 우릴 못마땅하게 바라보았다. 닫히는 문 사이로 언니의 목소리가 처음으로 들려왔다. 


  “야. 누가 친구 데려오래?”

  “뭐가. 너도 친구 데려왔었잖아~”

  “너? 지금 너라고 했냐?”


  친구와 언니의 목소리가 닫힌 문 너머로 들려왔다. 나와 친구들은 잠깐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눈치를 보았다. 진짜 싸우면 어쩌지. 내 표정은 심각해졌지만, 곁에 있던 친구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와.. 울 언니랑 똑같아. 울 언니도 저래. 진짜 재수탱.”  


  친구의 말에 심각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또 웃으며 엘리베이터를 탔다. 각자 집으로 돌아가는 갈림길에 서서 몇 분 동안 이야기를 나누고 겨우 손을 흔들었다. 먹먹해진 귀와 칼칼해진 목을 가다듬으며 제일 바빴던 입을 그제야 꾹 다물고 익숙한 간판과 건물들 사이를 유유히 걸었다. 재수 없는 언니 대신, 언니와 나를 차별하는 엄마와 아빠 대신 거실에 달마도가 걸려있는 우리 집으로. 그것이 가지고 올 복이 있는지, 없는지, 있다면 누구의 소원인지 아무도 모르지만, 침대 하나쯤 기대하게 되는 달마도가 있는 우리 집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엄마와 완벽하게 헤어지기> 책은 하단 링크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337857&start=slayer

작가의 이전글 소녀들의 눈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