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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21. 2021

소녀들의 눈물

   초등학교 고학년 무렵, 학교에서 나눠 준 내 생활 통지표엔 늘 ‘밝고 명랑하다.’라고 쓰여있었다. 좋게 표현하면 그렇고 안 좋게 말하면 너무 왈가닥이랄까. 반쯤 텐션 업 되어있어 등교부터 하교 때까지 쉴 틈 없이 쫑알거리는 아이. 할머니는 그런 내 텐션을 감당하기 어려워, 늘 앉아있어라. 나대지 마라. 말씀하셨지만 고모들은 애가 어두운 것보단 낫다고 하셨다. 


  그 텐션이 가장 발산되는 시간은 친구들과 함께하는 하굣길이었다. 나대지 말라는 할머니의 말씀을 잊은 채 그날도 손이며 발이며 입이며 어느 하나 가만있지 않고 열심히 나대기 시작했다. 방향이 같은 친구 중 몇몇이 집으로 사라지고 한 친구와 단둘이 남았을 때 나는 손가락에 열쇠고리를 빙빙 돌리며 반 발 앞서 걷고 있었다. 그 시절엔 쓸데없고 의미 없는 말들이 왜 그렇게 웃기기만 했는지 말과 웃음이 반씩 섞여 나오며 내 입은 쉴 틈 없이 재잘거렸다. 나의 재잘거림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친구가 우뚝 멈춰 섰다. 별안간 멈춰 선 친구를 돌아보는데 그날따라 유난히 강한 햇볕에 저절로 인상이 써졌다. 친구의 얼굴이 벌겋게 익어있었다. 


  “있잖아. 수현아, 나랑 있을 땐 행복한 척 안 해도 돼.”


  나는 대뜸 행복이 어쩌고 하는 친구의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빙빙 돌던 열쇠고리가 손가락 사이에서 힘없이 멈췄다.


  “뭐?”

  “너 슬픈 거 다 아니까 맨날 그렇게 안 웃어도 된다고.”

  “내가?”

  “너 부모님 안 계시니까.. 좀 슬프잖아.”


  뜨거운 물이 순식간에 얼굴로 쏟아진 기분이었다.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그 친구는 같이 노는 친구 무리 중 유일하게 내 가정사를 알고 있었다. 늘 모른 척하던 친구가 내겐 금기어 같았던 부모님의 부재를 입에 올렸다는 사실이 당혹스러웠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귀밑이 화끈거렸다. 나를 바라보는 친구의 표정이 오히려 더 슬퍼 보였다. 내가 슬펐나? 나는 친구의 표정에 턱까지 차오르는 숨을 몰아쉬며 오늘 하루를 되짚어 봤다. 아침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등교하기 전, 집에서 할머니와 잠깐의 말씨름이 있었지만 슬플 일까진 아니었고, 학교에서도 수업 시간은 지루하지만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떠들고 웃느라 슬플 겨를이 없었는데. 


  “나 안 슬퍼.. 안 슬픈데..”


  그런데 ‘슬픔’이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꺼내는 순간 눈물이 핑 돌았다. 슬퍼서 우는 게 아니라 억울해서, 당황스러워서 눈물이 나왔다. 슬플 일이 하나도 없던 하루였는데. 내가 왜 슬퍼야 하지? 나 하나도 안 슬퍼! 목구멍을 치고 올라오는 말들을 내뱉는 대신 흐르는 눈물만 연신 닦아냈다.


  “울지 마... 괜찮아..”


  친구는 내 어깨를 다독였다. 나 안 슬프다고. 눈물을 비집고 겨우 내뱉은 한마디에 친구는 말없이 내 등만 쓰다듬었다. 어쩐지 이상한 위로였다. 지금 날 울린 사람이 떠난 부모님도, 제발 좀 까불지 말라던 할머니도, 단순한 산수 문제를 못 풀어서 핀잔을 줬던 선생님도 아닌 지금 날 위로하고 있는 사람이란 게. 친구의 말 한마디에 나는 졸지에 슬픔 속에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내가 어떤 표정으로 친구와 헤어졌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겨우 집에 와 거실 바닥에 풀썩 엎드렸던 기억이 있다. 친구가 쓰다듬었던 등에 무거운 돌이 얹어진 기분이었다. 그 친구 눈엔 부모가 없는 난 늘 그늘을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사람이었을까. 나의 길에 환한 볕이 들더라도 뒤에 길게 드리운 슬픔을 절대 외면하고 살아선 안 되는 사람. 햇볕을 바라보는 나를 몇 번이고 그늘로 돌려세우는 말들에 나의 마음은 그늘 속으로 웅크리곤 했다. 엎드린 등을 짓누르는 말의 무게를 체감하면서 두 눈만 깜빡거렸다. 눈 속에 그렁그렁한 눈물이 똑 떨어졌다. 옷 속으로 바닥의 냉기가 느껴졌다. 한참을 엎드려 있던 나를 화장실에서 나오던 할머니가 들짐승의 죽음을 확인하듯 발로 툭 찼다. 


  “바닥 차. 들어가서 자.” 하시면서. 


  그날 밤, 턱 끝까지 이불을 올린 채 까만 천장을 한참 바라보았다. 안 슬프다면서 울던 내가 정말 슬퍼 보였겠지. 알아도 모른 척하던 친구가 왜 갑자기 내 슬픔이 어쩌고 하면서 나를 위로했던 걸까. 나 하나도 안 슬프다고. 부모님이 안 계신 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생각하면 슬프긴 하지만 매일 슬프진 않으니 날 위로할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친구에게 하지 못한 말들을 곱씹으며 속으로 몇 번이나 중얼거렸다. 그 말을 친구에게 직접 했으면 좋았겠지만, 오히려 학교에선 그 친구 눈치를 봤다. 웃긴 농담에 까르르 웃다가도 나도 모르게 내 눈이 그 친구를 향해 있었다. 혹시라도, 아주 혹시라도 친구가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하면 어쩌지. 어젯밤 쉬이 잠들지 못했던 가장 큰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어쩌면 내가 슬픈 아이가 되는 게 친구가 진짜 바라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과 함께. 지금 내 웃음이 도를 넘진 않았는지, 부모가 없는 아이의 웃음은 어느 정도가 적당할지. 이런 생각을 하며 비실비실 새는 웃음을 막으려 입술을 꾹 다물었다. 웃고 싶어도 뭔가 처량해 보여야 하는 신세. 어제 본 드라마 속 주인공 흉내를 내며 아이들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도 자꾸만 브레이크가 걸렸다. 


  나대지 않는 불편한 생활을 며칠간 이어오던 어느 날, 친구와 함께 손엔 부채를 들고 하교하는 늦은 여름날이었다. 곧 가을이 오는 것을 아는지 매미의 울음소리는 절정에 이르렀고, 땅바닥엔 개미 떼로 들끓는 바짝 마른 지렁이와 몸통 절반이 사라진 죽은 매미가 지뢰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최대한 그것들을 밟지 않으려고 땅만 바라보며 말없이 걸었다. 어색한 기운이 감돌았다. 그 일이 있고 난 후 그 친구와 단둘이 있을 때 나는 철저하게 처량한 척을 했다. 왠지 그래야 할 것 같았다. 


  “엄마 없으면.. 슬퍼?”


  친구의 목소리에 놀란 내가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아. 얜 작정했구나. 곧 친구들에게 내 이야기를 하겠구나. 엄마, 아빠, 부모님 같은 가족에 관련된 단어만 들어도 심장이 잠깐 정지되는 기분이 들던 때에 그렇게 노골적으로 엄마의 부재를 입에 올리는 친구를 보며 나는 온몸이 땅속 깊이 가라앉는 것 같았다. 산 사람이 땅에 묻히면 이런 기분이겠구나 싶었다. 


  “아니.”

  “엄마잖아. 엄마가 없는 건데?”

  “안 슬퍼.”


  이번에도 눈물이 먼저 목울대를 치고 올라왔지만, 다행히 울지 않고 대답했다. 나 아빠, 엄마 없는 거 얘들한테 말할 거냐고 그 말을 내뱉고 싶었지만, 눈물을 참느라 쉽게 입을 열 수 없었다. 그 순간 친구가 울 듯한 표정으로 입을 삐쭉거렸다. 잠시 당황한 내가 묻는 얼굴로 바라보자 친구가 대뜸 으앙-하고 울었다. 내 눈물에 전염된 것처럼 친구는 내 몫의 눈물까지 대신 흘리기 시작했다. 누가 소리 내어 우는 걸 너무 오랜만에 보기도 했고, 친구가 갑자기 우는 상황에 당황한 나머지 나는 한참을 멍하게 서 있었다. 친구는 치아가 다 보이도록 으앙- 울다가 금방 입을 꾹 다물고 끅끅거리며 서럽게 울었다. 조심스럽게 어깨에 손을 올리며 왜 우느냐고 무슨 일이냐고 물었지만, 친구는 고개만 저을 뿐, 말이 없었다. 햇볕에 그을린 볼에 눈물이 비처럼 내렸다. 누굴 위로해 본 적 없는 나는 친구가 내게 했던 것처럼 친구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왜 그래.. 괜찮아. 울지 마.”


  무엇이 괜찮은 건지도 모른 채 열세 살의 나는 ‘괜찮다’라는 말을 연신 주문처럼 외며 여름의 빛을 등진 채 한참을 서 있었다. 친구가 우는 이유가 궁금했지만, 때론 타인의 눈물을 모른 척해야 한다는 걸 조금씩 알아가던 나이이기도 했다. 내가 묻고 싶은 말이 무엇이었는지도 잊어버린 채 가방을 멘 친구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이후 우린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행동했다. 각자의 눈물을 본 적 없는 것처럼. 정말로 슬픔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소녀의 얼굴을 하고 전처럼 웃고 나댔다. 그리고 그 친구는 한 달 뒤 전학을 갔다. 전학 사실을 알았을 때 다들 왜 전학을 가느냐고 팔에 매달려 가지 말라고 우는 시늉을 했지만, 어쩐지 나는 그러질 못했다. 한참 뒤 다른 친구가 말하길,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를 따라 먼 타지로 전학 간 거라고 했다. 아마 자기 엄마와 다른 아주머니가 하는 말을 곁에서 주워듣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다들 이혼이라는 단어에 깜짝 놀랐지만 그뿐이었다. 


 하굣길에 친구와 함께 걷던 골목길을 혼자 걸으며 그 친구를 생각했다. 엄마와의 헤어짐을 코앞에 둔 친구의 슬픔이 그제야 너무 생생하게 느껴졌다. 슬픔이라는 게 그런 얼굴로 눈물이 쏟아지는 것이구나. 엄마와의 헤어짐이 친구에게 얼마나 큰 아픔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부모가 없는 건 슬프긴 하지만 맨날 슬픈 건 아니야. 캄캄한 밤에 홀로 연습하던 말을 친구에게 해주었다면 그건 위로가 되었을까. 우리의 나이가 더 많았더라면 더 근사한 위로를 건넬 수 있었을 텐데. 헤어짐과 위로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는 이른 낙엽을 밟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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