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말하던 날

by 여름

초등학생 때, 친구의 집에 놀러 가면 각자 다른 집이라도 늘 비슷한 냄새와 소리가 났다. 압력밥솥 추가 세차게 흔들리는 소리와 고구마나 옥수수의 구수한 냄새가 집 안에 가득하거나, 프라이팬에 기름이 튀는 소리와 함께 부침개의 고소한 냄새가 나기도 했다. 친구의 엄마가 우리를 위해 간식을 준비하는 냄새였다. 기분 좋은 환대에 들뜬 마음으로 친구 방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으면, 금세 간식 먹으라는 친구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거실로 슬금슬금 나가면 긴 테이블 중앙에 고구마나 옥수수, 부침개, 떡 같은 간식과 아이들 숫자만큼 주스 잔이 놓여있었다.


“너넨 공부 잘하니?”


친구 엄마의 질문에, 실제 본인의 집에서와는 다르게 쑥스러움을 타며 간식을 먹던 우리는 서로의 얼굴과 낯선 중년 여성의 얼굴을 흘깃거리며 부끄러운 듯 키득거렸다. 초등학교 때 성적은 다 고만고만했지만, 그중에 특출 나게 잘하는 아이도 있었다. 그럴 때면 꼭 한 명이 ‘누구는 공부 잘해요.’하고 친구 엄마의 궁금증을 풀어주곤 했다. 친구 엄마는 우리의 얼굴을 찬찬히 살피며 이름을 외곤 했다. 너가 은지구나. 아, 너가 수현이니? 하면서. 그러다 불쑥 달갑지 않은 질문이 정수리 위로 쏟아졌다.


“너네 엄마는 뭐 하시니? 아줌마처럼 집에 있니?”


깜빡이 없이 훅 들어오는 친구 엄마의 질문에 나는 당황하며 괜히 앞에 놓인 주스를 마셨다. 누군가 먼저 입을 열 때까지 천천히 주스를 넘겼다.


“저희 엄마는 회사 다니세요.”


간식을 집어 먹는 친구를 따라, 나도 바로 입을 열었다.


“저희 엄마도요.”


이야기가 거기서 멈추면 다행이었겠지만 엄마의 직업을 시작으로 아빠의 직업, 형제, 사는 곳으로 질문은 다양하게 던져졌다. 이미 정답이 나와 있는 너무 쉬운 질문인데도 잠깐이라도 머뭇거리면 대형 사고가 날 것 같아 정말 생각나는 대로 입 밖으로 내뱉었다. 아빠의 직업을 묻는 말엔 나는 고모부가 근무하는 병원 이름을 말하곤 했다. 그 시절 내가 아는 회사라곤 고모, 고모부가 다니는 병원이 전부였다.


“아~ 수현이 아빠는 병원에서 일하시는구나.”


친구 엄마가 그렇게 말하면 나는‘네.. 의사는 아니시고 원무과에서 일하세요.’하고 덧붙이곤 했다. 괜히 의사로 오해할까 봐 한 말이었지만, 사실 원무과가 뭐 하는 곳인지도 잘 몰랐다.


형제에 관한 질문엔 나는 혼자라고 대답했다. 사촌 동생이 있긴 했지만, 친동생은 아니니 그냥 외둥이라고 말하는 게 거짓말을 덜 하는 쪽이라 생각했다. 내 말에 친구 엄마는 ‘그래도 형제 있는 게 좋은데.. 지금이라도 동생 만들어 달라고 그래.’하면서 드라마 속 시어머니 같은 말을 하곤 했다. 그러면 나는 그냥 웃고 말았다. 그런 날 보고 친구 엄마가 말했다.


“수현이는 되게 얌전하네.”

“아니야 수현이 진짜 웃겨. 쑥스러워서 그런가 봐.”


내 실제 성격을 아는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그러면 나는 진짜 쑥스러운 척하며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사실 나 역시 친구들처럼 떠들고 싶었다. 내가 좋고 싫어하는 것들과 잘하고 싶지만, 못하는 것들에 대해. 학교에서 친구의 모습은 어떤지, 친구들과의 관계나 선생님에 대한 약간의 험담도 늘어놓고 싶었다. 하지만 아빠, 엄마, 회사, 가족 같은 단어들이 친구들과 친구 엄마의 입에서 튀어나올 때마다 목구멍이 콱 막히는 것 같았다. 주스를 마시고 또 마셨다. 거짓말은 심장을 더 쿵쿵 뛰게 하고 귀를 벌겋게 만들었다. 벌게진 얼굴을 들킬까 괜히 집을 구경하는 척 시선을 다른 곳으로 옮겼다. 잠시 혼자 장롱에 들어갔다가 이야기가 다 끝나면 나오고 싶었을 정도로 나의 잘못도 아닌 일에 내가 부끄러워지던 순간들은 너무 갑작스럽게, 또 자주 찾아왔다. 내 생에 거짓말을 가장 많이 했던 순간들이었다.


친구들과 한참을 놀고 저녁쯤에서야 집으로 돌아왔다. 저녁 먹고 가라는 친구 엄마의 말에 친구들과 나는 괜찮다고 고개를 저으며 공손하게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 사실 저녁 먹고 오고 싶었다’라고 말하는 친구의 귀여운 고백에 애들은 ‘나도! 나도!’를 연발하며 순진하게 웃었다. 현관문을 나서기 직전 그 냄새는 돈가스가 분명하다며 확신에 찬 친구의 말에 우린 또 숨이 넘어갈 듯 웃었다. 예의와 민폐를 알아가는 친구들의 얼굴이 낯선 듯 익숙했다. 그리고 나도 고백하고 싶었다. 사실 아까 그 말들은 다 거짓말이라고. 아직 순수함이 남아있는 환한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가슴속에 얹혀있는 말들을 쏟아내고 싶었다. 내 고백에 질문만 하던 어른들과는 달리 그저 날 안아 줄 것만 같았다. 하지만 하지 못했다. 지금처럼 모두가 웃지 못할 거 같아서. 나의 거짓말은 언제쯤 끝날까. 친구들과 웃다가 저 멀리 쫓아오는 생각에 조용히 웃음을 거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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