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Oct 21. 2021

복숭아와 벚꽃과 태몽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내뿜는 핸드폰 속 시간은 4시 30분을 알리고 있었다. 아침 4시 30분에 깨어있던 적이 언제였더라. 불 꺼진 조용한 거실에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된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베란다 너머 건너편 아파트를 바라봤다. 불 꺼진 창문들 사이로 두어세 대의 집이 불을 밝히고 있었다. 저 집도 나처럼 수유하고 있을까 싶다가 저렇게 환한 불로 수유하는 엄마는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재밌는 드라마를 정주행 하는 중일까. 아니면 큰 시험을 앞두고 공부 중일까. 멀리 출장을 가서 이 새벽에 깬 걸까.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사람의 집에서 흘러나온 불빛에 내 생각은 이미 그 집 베란다를 서성이고 있었다. 결국, 수유 때문에 깨어있는 사람은 나뿐이라는 결론에 도달하자 괜히 마음이 울적했다. 드라마도, 공부도, 일도 아닌 이유로 이 새벽에 불도 켜지 못한 채 졸린 눈을 비벼대는 사람은 나뿐이구나. 텅 빈 우주 속에 나 혼자 남겨진 기분이 들 때면 아이는 내 기분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작은 몸을 움직이며 자기 존재를 확인시켰다. 아이가 젖을 다 먹고 나면 나는 능숙하게 왼쪽 어깨에 아이를 안고 등을 쓸어내렸다. 이미 잠에 취한 아이는 작은 몸을 내게 온전히 맡긴 채 옅게 숨을 내쉬었다. 아이가 숨 쉴 때마다 목덜미에 얕은 바람이 지나갔다. 나는 가만히 아이의 뺨에 내 볼을 가져갔다. 온 세상을 집어삼킨 것 같은 고요함 속에 아이의 숨결이 가만히 나를 쓰다듬었다. 


  임신 후 태몽으로 잉어 꿈을 꾸었을 때 남편과 나는 인터넷에 '잉어 태몽 꿈'에 관련된 글을 읽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우리 애는 인성이 바르고 착할 거래.”

  “색이 흰색에 검은 무늬가 있었으니까 아들이려나,”

  “잉어가 팔뚝.. 아니, 사람만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 엄청나게 컸어.”


  나는 만나는 사람들에게 무용담을 늘어놓듯 태몽에 대해 이야기했다. 가끔 내 의지와 상관없이 조금씩 부풀려지기도 했는데, 하늘로 승천하는 용꿈은 아니어도 내 아이만의 전설 같은 이야기가 남들에게도 대단하게 느껴졌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임신 초기엔 시어머님도 고추 따는 꿈을 꾸셨다 하고, 고모도 창고에 곡식이 가득한 꿈을 꾸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는 인터넷에 태몽을 하나씩 검색하며 첫애의 태몽을 무엇으로 할 것인가를 고심했다.


  어렸을 때 아이들이 자신의 태몽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나는 내가 궁금해졌다. 나는 어떤 흥미로운 이야기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일까. 한 번은 할머니께 태몽을 물어봤다가 ‘모르지 뭐..’하는 시큰둥한 답변에 집에 있는 해몽 책을 정독하며 나의 태몽을 복숭아로 할 것인지 벚꽃 나무로 할 것인지 고민했다. 결국 나는 '엄마가 치마폭에 탐스러운 복숭아를 가득 넣었다'라는 짤막한 스토리를 나의 태몽으로 결정했다. 친구들이 마치 본인을 전설 속의 인물로 과대 포장할 때, 나 역시 복숭아 태몽을 들먹이며 나를 귀한 아이로 예쁘게 포장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나는 내가 궁금해졌다. 우리 부부는 임신 기간 내내 입덧도 없고, 먹고 싶은 것이 딱히 없어 아이가 엄마, 아빠 고생 안 시키는 효자라고 입에 침이 마르도록 떠들었다. 그럴 때면 우리 엄만 어땠을까. 뱃속의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하고 궁금해졌다. 아빤 밤늦게 엄마가 먹고 싶다는 음식을 사 왔을까? 나는 뱃속에서 태동을 심하게 하는 아이였을까? 낳고 나서 기질은 순했을까? 무엇으로 엄마를 고생시켰을까? 엄만 자연 분만했을까? 난 몇 시간 만에 태어났을까? 태몽만이 아니라 아이를 키우며 느끼는 모든 것에 난 내가 궁금했고 엄마에게 하고 싶은 질문이 많아졌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나를 기억해주는 사람. 나의 유년 시절의 목격자가 내겐 없었다. 엄마가 없다는 건 어린 시절의 나를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이럴 거면 사진이라도 많이 남겨주지. 내게 남아있는 어린 시절의 사진은 내가 12개월쯤 되었을 때 빨간 모자를 푹 눌러쓰고 아빠 품에 안겨 있는 사진이 전부였다. 나는 아기 때 내 얼굴이 어땠는지조차 모르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지금 내 아이가 어린 시절 나를 닮았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엄마가 없는 건 왜 이렇게 모르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일까. 내 인생에서 단 한 명이 사라진 것뿐인데 내 한 시절이 통째로 사라져 버렸다.  


  아이가 깊은 잠에 빠졌을 때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를 침대에 뉘었다. 약간의 아토피가 있어 붉어진 볼과 어떤 DNA가 섞인 것인지 모를 긴 속눈썹. 지금의 나를 닮은 듯한 뭉툭한 코를 한참이나 바라봤다. 내 아이가 크면 지금의 모습을 전부 말해줘야지. 나는 절대 잊지 않을 거야. 잉어 꿈. 잉어 꿈. 잉어 꿈. 



-

<엄마와 완벽하게 헤어지기> 책은 하단 링크에서 구매 가능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8337857&start=slayer

작가의 이전글 달마도가 걸린 집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