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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Oct 21. 2021

엄마도 가끔은 내 생각을 하겠지

오전부터 내린다던 비는 내내 소식이 없다가 늦은 저녁이 돼서야 내리기 시작했다. 8시 40분. 버스에 타는 사람보다 내리는 사람이 더 많아질 무렵 한 여학생이 버스에 올라탔다. 비를 맞았는지 어깨와 머리가 조금 젖어있었다. 유난스럽게 어깨를 털며 내 앞자리에 앉자 주변의 공기가 금세 눅눅해졌다. 


  “엄마! 어디야?” 


  앞자리에 앉은 학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창밖에 비를 맞으며 나란히 달리고 있는 차들이 보였다. 차들이 멈출 때마다 붉은 브레이크 등이 어두운 길을 밝혔다. 


  “지금 막 버스 탔는데 우산이 없어. 한 20분 뒤에 나오면 될 거 같아.” 


  통화하는 여학생의 핸드폰 너머 한 사람에 대해 생각했다. 딸의 전화 한 통에 어디서든 달려올 준비가 되어있는 존재. 이 여학생의 입학식과 졸업식. 그 사진 속에서 꽃다발을 들고 함께 웃고 있을 그녀의 엄마에 대해. 내 생각의 끝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의 엄마 앞에 다다랐다. 


  나의 엄마는 지금 어디일까?


  이름 모를 꽃다발과 아이들의 웃음과 눈물로 가득했던 나의 졸업식과 입학식. 궁금한 것이 많았던 처음 생리를 시작하던 어느 날과 버진로드를 걸으며 울었던 나의 결혼식 날에. 첫 아이를 낳고 병원에 누워있던 15년도 6월에 엄마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졸업식 사진 속 꽃다발을 들고 웃고 있는 내 곁에도. 양가 어머님이 함께 초를 밝히던 결혼식에도. 첫 아이를 낳고 고생했다며 땀으로 젖은 내 머리카락을 넘겨주던 가족들 틈에서도, 엄마가 필요했던 순간들 사이사이에 엄마는 없었다. 우리는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번도 서로의 삶을 바라보지 못했다.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쳐도 우린 서로를 알아볼 수 없다. 영화 속 뭉클한 장면처럼 건널목 가운데서 서로를 돌아보는 일 같은 건 내 삶에 없을 것이다. 엄마와 딸이 서로를 알아보지 못하고 지나쳐 버리는 안타까운 인생을 각자가 살아가고 있다.


  그래도 얼굴도 모르는 엄마가 가끔 생각나는 순간이 있다. 


  백화점에서 옷을 입어 본 딸을 보고 잘 어울린다고 고개를 끄덕이는 아주머니 얼굴을 스치듯 바라본 날, 무슨 말이 안 통하는지 엄마와 통화하며 잔뜩 주름이 진 친구의 미간을 바라보다가 그렇게 가끔 엄마를 생각했다. 얼굴도 모르지만 어딘가에 닿아 있을 엄마를, 하나의 희미한 그림자를 떠올리듯 생각했다. 


  내가 그랬듯 엄마도 가끔 나를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빠의 기일이나 내 생일이 다가오는 겨울이 되면, ‘수현아!’라고 부르는 우연한 목소리에, 지하철에서 엄마 손을 붙잡고 칭얼거리는 꼬마를 보았을 때, 어쩌면 나를 떠올리지 않았을까. 엄마와 헤어졌던 6살에 내 모습 그대로를 떠올려보지 않았을까.


  아이를 키우면서 가끔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어렸을 때 나와 엄마를 마주하는 기분이 든다. 세상을 모르는 내가 엄마를 향해 웃고 울고 안기며 작은 손과 입으로 엄마에게 사랑을 말했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 조금이나마 위안이 된다. 지금은 비록 서로를 가끔 생각하는 사이가 되었지만, 우리에게도 사랑한 시간이 있었다는 것이. 


  먼저 자리에 일어서는 여학생의 뒷모습을 따라 시선이 옮겨갔다. 버스가 이리저리 움직일 때마다 가방에 달린 인형이 흔들렸다. 바람 빠지는 소리와 함께 버스 뒷문이 열리자 여학생이 내렸다. 여학생의 뒷모습에서 시선을 거둬 반대편 차도를 바라봤다. 버스 밖의 세상은 습기를 머금고 크게 숨 쉬고 있었다. 한 번씩 숨을 내쉴 때마다 비와 먼지가 섞인 냄새가 버스 안을 뒤덮었다. 


  여름을 알리는 창밖에 찍히는 빗방울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비록 나는 함께하지 못하지만 만개한 꽃과 찬란히 부서지는 파도와 다채롭고 또 눈부시게 하얀 설산을 뒤로하고 찍은 사진들이 엄마의 앨범 속에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웃는 날들이 지금까지도, 또 앞으로도 가득했으면 좋겠다고.


  나를 잊되 아주 가끔 생각하면서 부디 행복하시기를.


  나 역시 그렇게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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