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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19. 2022

겨울을 사랑하는 일


아이의 소변 실수로 일찍 일어난 탓인지 아침부터 몸이 찌뿌둥했다. 밀린 집안일이 가득했지만, 아이를 등원시키고 집으로 와 침대로 바로 다이빙했다. ‘할 게 많은데..’ 생각만 하다가 그대로 잠이 들었다. 눈을 뜨니 40분 정도 흐른 뒤였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일으켜 쌓여있는 집안일을 시작했다. 세탁기를 돌리고 설거지를 마무리하고 아이 방을 정리하는데 몇 시간이 걸렸다. 평소 같으면 금방 해치웠을 일인데 맘처럼 손이 따라주질 않았다.     


 원래 겨울이 되면 기동력이 떨어진다. 의욕도 사라지고 몸도 굼떠진다. 뇌도 반쯤 수면 상태에 들어간 듯 멍해지고 하품만 늘어진다. 아휴 귀찮아. 같은 말들이 수시로 입에 오르내린다. “사람은 왜 겨울잠을 안 잘까?” 같은 듣는 사람도 기가 차는 말들도 예전에 자주 했었다. 그리곤 엉뚱하게 “이래서 나는 겨울이 싫더라.”하는 결론을 내리곤 했다. 몸이 느려지고 굼떠지고 자꾸 침대에 눕고 싶어지는 겨울이 싫었다.      


 마지막으로 청소기를 돌리고 핸드크림을 바르며 책상 앞에 막 앉았을 때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눈 온다.”

고개를 빼고 창밖을 바라보니 친구의 말처럼 눈이 펑펑 내리고 있었다. 뭐에 홀린 듯 의자에서 일어나 베란다 밖으로 나갔다. 세상이 커다란 스노우볼에 갇힌 것처럼 눈은 아름답게 흩날리고 있었다. 추워서 팔짱을 끼고 어깨를 움츠렸다. 어렸을 때만큼 눈을 사랑하지 않지만, 내리는 눈에 쉽게 시선을 떼지 못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겨울이 싫었다기보다 추위 핑계를 대며 게을러지는 내가 싫었다. 호빵과 호떡, 군고구마 같은 겨울 간식을 좋아하고 캐럴이 흘러나오는 반짝이는 거리를 좋아한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선물 포장하는 일과 남편과 대상을 예측하며 연말 시상식을 보는 것을 좋아한다. 일 년 내내 쓸 다이어리를 고르는 일,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말과 올해는 꼭 보자는 약속이 담긴 문자를 좋아한다. 좋아하는 게 이렇게나 많은데 추위를 핑계 삼아 게을러지는 내가 한심했고, 나를 한심하게 만드는 겨울이 빨리 지나가길 바랐다.     


 온몸에 전원을 올리듯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기지개를 켰다. 기지개를 켜기에 늦은 오후였지만 나에겐 아직 할 일이 많았다. 가장 먼저 비타민을 먹자고 생각했다. 겨울을 사랑할 수 있는 체력을 만들자고, 내리는 흰 눈을 보며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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