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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13. 2023

가난하면 받는 상


7시가 다 되어가는 평일 초저녁, 중학교 2학년이었던 나는 동네 파출소에 어색하게 앉아 있었다. 할머니는 처음 와보는 파출소에 긴장한 듯 손에 쥔 머플러를 쉴 틈 없이 만지작거렸다. 나는 등을 구부리고 앉아 시계와 태극기가 달린 벽면을 바라보다 바쁘게 움직이는 경찰들 쪽으로 슬쩍 눈을 흘겼다. 뭘 이렇게까지 해. 돈을 줄라면 그냥 주지. 입을 삐죽 내밀고 다리를 까닥거렸다. 1년에 한두 번, 교회나 동사무소, 파출소 같은 곳에선 부모 없는 아이들에게 불우이웃 성금 또는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돈이나 쌀을 주곤 했다. 그날은 파출소에서 장학금 전달식이 있는 날이었다.

     

곧이어 내 또래 아이들 몇 명이 파출소로 들어왔다. 혹시라도 내가 아는 애가 있을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얼굴을 휙- 확인한 뒤 곧바로 시선을 거두었다. 모두 이곳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나는 맨 앞자리에 앉아 들어오는 아이들의 대화 소리를 들었다. 누군 나처럼 할머니와 온 것 같았고 혼자 온 아이도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이 되자 자리를 안내하던 경찰관이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 누굴 소개하자 나이가 제일 많아 보이는 경찰 한 분이 우리를 마주 보고 섰다.


“그럼 장학금과 상장 수여식을 진행하겠습니다. 제일 먼저 김수현 학생. 앞으로 나와주세요.”

갑자기 불린 내 이름에 엉거주춤 일어나 앞으로 나갔다. 돈만 주기엔 행색이 좀 그랬는지 상장도 함께 주는 모양이었다.


“선행상!”

경찰관이 상장을 바라보며 소리쳤다. 나는 그 앞에서 두 손을 가지런히 모으고 어깨를 움츠린 채 서 있었다. 누가 봐도 상 받는 자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위 학생은 불우한 환경에도 불구하고 솔선수범하며 타의 모범이 되었기에 장학금과 상장을 수여함!”

 무표정한 얼굴로 상장을 받아 들었다. 자리에 앉아 있던 아이들과 어른들이 조심스레 박수를 쳤다. 나는 상장을 받는 포즈로 한 컷, 카메라를 바라보고 또 한 컷 사진을 찍었다.     


터지는 플래시에 눈을 깜빡이며 방금 찍힌 이 사진이 설마 여기 걸리는 건가, 하는 걱정을 했다. 헉. 아까 시계 옆이 휑해 보이던데! 나는 우리 학교 학생이 이 사진을 보게 될 확률에 대해 생각했다. 일진들이라면 가능할지도.. 우리 학교 누군가가 그 사진을 보게 되는 건 아닐까 하는 상상만으로 벌써 왕따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나는 자리로 돌아와 앉으며 한숨을 쉬었다. 시계 옆에 걸리게 될 사진은 어느 정도의 사이즈일까. 과연 이 정도 거리에서 사진 속 나를 알아볼 수 있을까. 설마 신문 같은 곳에 나는 건 아니겠지! 나는 상이 아니라 벌을 받은 사람처럼 다리를 떨었다. 그러다 앞에서 나와 똑같은 상을 받고 있는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얼른 고개를 떨구고 무릎 위에 상장 케이스에 시선을 돌렸다. 함께 있는 아이들과 얼굴을 마주하는 게 무언가 민망하고 불편했다. 나뿐만 아니라 그곳에 있는 아이들 모두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으려 애쓰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사실 우린 다 알고 있었다. 우린 선행상을 받을 만큼 타의 모범이 되는 학생이 아니었다는 걸. 적어도 나는 그랬다. 내가 했던 선행이 무엇이었을까. 나는 손가락으로 푸른색 상장 케이스에 원을 그리며 골똘히 생각했다.     

난 할머니께 존댓말을 하지 않는 애였다. 할머니와 싸울 때면 ‘아! 어쩌라고!’ 같은 친구에게나 할 말들을 내뱉었다. 친구들과 대화할 땐 존나, 씨발 이란 단어를 서슴없이 했고, 시험을 보면 30명 조금 넘는 반 아이들 가운데 14등, 15등 정도의 애매한 등수를 냈다.  5-6명의 절친들과 싫어하는 아이를 함께 따돌렸고, 자주 가는 문방구에서 샤프나 지우개 같은 것을 소매에 넣어 훔친 적도 있었다. ‘2반에 깝치는 애’라고 하면 전교생이 다 알 만큼 까불거리고 장난치기를 좋아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나는 그저 그런 평범한 학생이었다.     


그런데도 어른들은 나를 끊임없이 칭찬했다. 가끔 집에 오시는 할머니 친구분들의 입에서도 칭찬이 흘러나왔다. 내 손을 꼭 쥐고 ‘어쩜 이리 잘 컸노. 아이고야 착하다~’하며 등을 연신 쓰다듬었다. 그러면 나는 체포된 범죄자처럼 양손이 붙들린 채 어색하게 웃었다. 친구의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내 사정을 아는 옆집 친구네 놀러 가면 아주머니는 친구의 옆구리를 툭 치며 ‘야. 너도 수현이 반만 닮아 봐라. 얼마나 성실하냐!’하셨다. 그러면 친구는 세상 억울한 표정으로‘재가?’ 하며 어이없어했고, 나는 또 어색하게 웃을 뿐이었다.     


왜 다들 나를 칭찬 못 해 안달일까. 어른들이 예측한 나의 모습은 무엇이었길래. 아마‘부모 없는 아이’하면 떠오르는 불량한 모습을 예상했었던 것일까. 교복 치마를 한껏 짧게 입고 후배들을 일렬로 세운 뒤, 골목에서 몰래 담배를 피워대거나 더 나아가 남자애 등에 매달려 오토바이를 타고 어두운 도시를 질주하는 여중생을 상상했던 걸까. 어른들의 말처럼 난 착한 게 아니라, 그냥 겁은 애일뿐이었다. 일진 언니 오빠들이 복도를 어슬렁거리고 있으면 눈을 내리깔고 복도를 지나가는 애. 호기심이 들어도 선생님과 할머니의 불호령이 무서워 담배는 쳐다도 보지 않는 그런 애였다.     


어른들이 나를 ‘불우한 가정환경을 이겨낸 씩씩한 소녀’로 바라보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삐뚤어지지 않고 할머니 말씀을 잘 듣고 학교도 성실히 나가며, 사고 치지 않는 밝고, 명랑한 소녀 가장. 나는 그 나이 또래의 아이들처럼 보이길 바랐다. 시끄러운 철부지에 바라보고 있으면 커서 뭐가 되려나 하는 걱정이 샘솟는 아이로. 누군가의 걱정이 되고 때론 웃음이 되는 그런 아이가 되고 싶었다.     


마지막 아이가 상을 받고 내려오는 동안 천장 모서리를 바라보거나 시멘트 바닥을 주시했다. 자리로 돌아가는 아이도 시선을 한 곳에 응시할 뿐 사람들을 바라보지 않았다. 우리가 서로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지 않았던 것은 이 상의 정확한 이름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불우한 이웃 상’. 내가 불우한 이웃이라는 걸 한 사람이라도 덜 알았으면 하는 마음을 알기에 우린 열심히 서로를 모른 척했다. 넌 이 박수받을 만큼 특별하지 않아. 누군가 이 말을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수여식이 끝나고 파출소에서 준비한 저녁 식사 자리로 가는 길에 나는 몸을 휙 돌려 집이 있는 방향으로 걸었다. 뒤에서 할머니가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와 상장을 주었던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난 뒤를 돌아 사람들에게 소리쳤다.


“전 안 먹을래요! 그냥 가세요.”

뒤에서 또 뭐라 뭐라 소리가 들렸지만 난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으로 걸었다. 오늘 찍힌 사진이 어떻게 쓰이는지 여쭤보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나와 같은 표정으로 상을 받았던 아이들의 모습을 지우려 애쓰며. 선행상을 품에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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