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Jan 11. 2023

너의 죽음을 간절히 빌었다



 어른이라면 절대 믿지 않을 뜬구름 같은 소문을 믿었던 시절이 있었다. 책 보는 동상에 책장이 다 넘어가면 학교가 무너진다는 소문. 세 명이 길을 걸으면 가운데 사람을 제외하고 양옆의 사람 곁에 귀신이 와서 붙는다는 괴담과 이름은 행운의 편지면서 타인에게 보내지 않으면 불운이 온다는 편지까지. 우리는 어른들의 입에서 나오는 진실보다 출처가 불분명한 신비롭고 오싹한 이야기들에 더 귀 기울었다. 


 그 시절 골목에 한, 두 개쯤 있었던 건강원에 대한 한 소문도 돌았다. ‘건강원을 지날 때 숨을 쉬면 부모님이 죽는다!’ 건강원 사장님께서 들으면 얼마나 어이없어할 이야기인지. 누구의 입에서 시작되었는지 모를 그 소문을 동네 아이들은 철석같이 믿었다. 


 그도 그럴 것이 건강원은 아이들에게 미스터리한 곳이기도 했다. 빵집이나 떡볶이집을 지날 때 나던 식욕을 돋우는 냄새와 달리 건강원에서 나는 냄새는 묘한 불쾌감을 주었다. 흑염소, 붕어즙, 개소주, 각종즙 같은 글씨가 큼지막하게 쓰여있는 건강원 앞을 지날 때면 산속 깊은 곳에 땅을 파고 얼굴을 들이밀고 있는 듯한 농도 짙은 흙냄새가 났다. 냄새는 가게 안쪽, 커다란 스테인리스 기계 속에서 개와 붕어, 염소가 즙이 되는 기괴한 상상에 힘을 실어주곤 했다. 다리가 네 개인 것과 그렇지 않은 모든 것들이 즙이 되어 나오는 마녀의 아지트 같은 곳. 완전한 어른들의 세계인 건강원을 지날 때면 아이들은 입과 코를 막고 자신의 정체를 숨기듯 조용히 지나쳤다.  

             

 친구의 집에 놀러 갈 때, 놀이터를 가로지를 때, 지나는 골목 사이사이 건강원이 있었다. 공기 중에 은은하게 즙 냄새가 퍼지면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호들갑을 떨었다.          


“숨 꼭 참아! 절대 웃지 마!”     

“숨 쉬면 엄마 아빠 죽어! 알지?”          


우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원을 지나며 우린 ‘헙!’하고 숨을 참았다. 겨우 5초도 안 되는 길을 걸으면서 입과 코를 손으로 막았다. 서로의 얼굴을 보며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금방이라도 웃음이 터질 듯 친구들의 볼이 울렁거렸다. 이 허무맹랑한 미신 같지도 않은 미신을 믿는 서로가 우스워서. 그럼에도 내가 숨을 쉬면 행여나 엄마, 아빠가 죽을까 봐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숨을 참았다. 나는 그럴 필요가 없는 아이였는데도 그렇게 했다. 아빠는 이미 죽고 엄마의 생사를 알 수 없었지만 나 역시 아이들처럼 무언가를 지켜야만 하는 사람처럼 숨을 참았다. 건강원을 지나자마자 손을 내려놓은 우리는 깔깔깔 웃었다.          


“야! 아까 너 때문에 웃을 뻔했잖아!”     


친구가 웃으며 내게 손가락질을 했다.     


“뭐래~ 네 표정이 더 웃겼거든.”     


나는 웃으며 친구 탓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서서 웃다가 부모의 생명을 연장한 효녀의 얼굴을 하고 놀이터로 달려갔다.               


고백하자면 나는 건강원 앞에서 친구들 모두가 푸하하- 웃어 버리길 바랐다. 그들이 그토록 지키고자 하는 부모의 존재가 모두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언젠가 내게 부모님이 계시지 않다는 걸 아는 친구가 하굣길 내내 부모님에 관한 이야기를 했다. 함께 걷는 다섯의 아이 중 내 비밀은 아는 친구는 그 아이가 유일했다. 그 친구는 아이들 가운데에 자리 잡고 걸으며 잘 알지도 못하는 아빠의 월급에 대해 떠들었다. 그러다 너희들 아빠 월급은 얼마나 하냐며 물었다. 아이들은 이백, 삼백 하며 신나게 떠들었고 나는 가장 끄트머리에서 조용히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러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 한 명이 내게 물었다.          


“수현아 너네 아빠는?”          


나는 나도 모르게 처음 말을 꺼낸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게 부모가 없다는 걸 아는 유일한 친구. 그 아이는 내 눈을 빤히 바라보았다. 너의 연기가 어떨지 기대한다는 눈빛이었다.          


“음.. 잘은 모르는데.. 한.. 삼백?”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는 풋-하고 웃었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들이 묻는 얼굴로 친구를 돌아보았다. 친구는 ‘아니야, 아니야.’ 하며 고개를 저었다. 그러면서 또 피식 웃었다. 아이들은 ‘아~ 왜~’ 하며 궁금해했고 친구는 ‘아니야. 아무것도.’ 하며 나를 슬쩍 바라보았다. 그 웃음에 마음이 불이 난 것처럼 뜨거웠고 나는 불을 달래는 사람처럼 천천히 숨을 내쉬었다. 마음의 불이 옮겨 붙은 얼굴은 터질 듯 벌게졌다.


 당황해하는 날 보고 피식 웃던 친구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내게도 몇백을 버는 아빠가 있었으면, 하는 게 아니라 저 애 아빠가 지금 당장 사라졌으면 좋겠다고. 아빠가, 엄마가 하며 종알거리는 친구의 얼굴을 보며 이 아이의 우는 얼굴을 상상했다. 평화로운 오후, 수업 중간 교실 밖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교감 선생님을 따라 밖을 나섰던 아이가 한참 뒤 교실로 돌아와 친구들 앞에서 숨이 넘어갈 듯 우는 모습을.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는 엄마, 아빠가 죽어버렸을 때 무너지는 친구의 얼굴을, 나는 꼭 보고 싶었다.               


불씨에 흰 종이가 그을리듯 내 마음은 질투심으로 고요하게 태워졌다. 수련회에 가서 초를 앞에 두고 우는 친구의 어깨를 다독이면서도 나는 그 앞에 놓인 촛불을 후! 불어 꺼버리고 싶었다. 아빠가 사줬다던 친구의 새 신발을 실수인 척 밟기도 했고, 친구 엄마가 만들었다던 도시락 반찬을 함께 먹으며 ‘맛이.. 좀..’하며 인상을 쓰기도 했다. 나는 한동안 엄마, 아빠가 있는 친구들을 모조리 건강원 앞으로 데려가 소리치게 만들고 싶었다. 


내가 아무리 기도하고 소원한들 내게 부모는 절대로 생겨나지 않았지만, 친구들의 부모는 사라질 수 있는 존재였기 때문에. 차라리 모두가 엄마, 아빠를 잃어버렸으면. 나는 간절히 바랐다.               


내 바람이 쉽게 이뤄지지 않는 지지부진한 날들이 이어졌다.          


“걔 있잖아, 엄마 아빠 이혼했데.”          


친구 한 명이 전학 간 아이의 비밀을 속삭이듯 전했다. 다른 이의 비밀이 은밀하게 서로의 입과 귀로 흘렀다. 교실에 함께 모여 있던 아이들은‘이혼’이란 단어에 놀라며 눈을 굴렸다. 뒤이어 나는 ‘아. 불쌍하다.’하며 안쓰러운 표정을 보였다. 나와는 상관없는 이야기처럼. 그렇게 듣기 싫어하는 ‘불쌍하다’는 말을 가볍게 내뱉었다. 그 순간 내 비밀을 아는 친구가 입을 열었다.          


“차라리 이혼이 낫지. 죽는 것보단.”          


그 친구와 나의 눈이 마주쳤다. 당황하는 나와 달리 친구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지긋지긋한 순간이라고 느꼈다. 나는 원망의 눈길로 친구를 바라보았다. 그때 처음으로 친구를 죽이고 싶었다. 정말로 친구의 부모가 아닌 이 친구가 죽어버렸으면. 울컥 차오른 눈물을 애써 참으려 했지만 끝내 울고 말았다. 갑작스러운 내 눈물에 아이들이 당황반, 의문반 표정으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수현아, 왜 그래..”          


난 책상 위로 엎드렸다. 눈물이 우두두 떨어졌다. 아무리 참으려 해도 한번 터진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왜 그래?’‘나도 몰라’ 눈물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은 내 등을 토닥이며 서로 속삭였다.          


“친구가 불쌍해서 그런가 봐. 수현아 울지 마~”          


듣기 싫은 뻔뻔한 목소리. 당장이라도 벌떡 일어나 너 때문이라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비명을 지르지 못하는 몸이 웅크린 채 들썩였다. 나는 눈을 찔끔 감고 다시 한번 간절히 빌었다.               


이 아이를, 아이의 엄마를, 아이의 아빠를 제발 죽게 해 주세요. 이뤄지기에 희박하고 잔인한 소원이었지만 나는 엎드린 자세로 간절히 빌었다.          


누군가의 죽음을 간절히 원했던 시절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