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 아무 곳에나 시선을 두어도 그곳에 꽃이 있다. 개나리가 있고 목련이 있고 벚꽃이 있다. 곧 사라질 것을 알기에 두고두고 오래 바라본다. 길을 걷다가도 갑자기 서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내 뒤에 걸어오던 사람이 나를 앞서가도 신경 쓰지 않고 나는 계속 꽃을 본다. 바람이 거칠게 불어와 꽃잎이 힘없이 떨어진다. 떨어진 꽃잎을 바라보다 다시 걷는다. 그러다 또 뒤를 돌아본다. 보고 또 보아도 ‘이만하면 되었다’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이 좋은 걸 누군가와 함께 보고 싶다는 생각에 아버님께 전화를 건다.
결혼한 지 10년이 다 되어가지만 나는 아직도 시댁이 어색한 며느리다. 그런데도 꽃을 보니 아버님 생각이 났다. 아버님은 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한 달 만에 사고로 장애인이 되셨다. 60년 넘게 걸음을 걷던 아버님은 이제 휠체어에 앉아 생활하신다. 아버님이 꽃을 보셨을까. 나는 그게 궁금하다. 하지만 꽃보다 밥이 더 중요한 아버님은 내게 점심은 먹었느냐 물으신다. 고구마로 끼니를 때웠지만, 밥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한다. 아버님 꽃이 참 예쁘게 피었어요. 그래. 여도 꽃이 많이 피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아버님이 느껴졌다. 나는 시댁 창밖엔 휑한 놀이터뿐 볼만한 꽃나무가 없음을 안다. 날씨가 좋아요. 아버님. 꽃구경 가자는 말은 끝내 하지 못하고 날씨 이야기만 하다가 통화가 끝난다.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느릿느릿 걷는다. 아버님과 함께 걸을 때마다 들리는 휠체어 굴러가는 소리를 떠올린다. 내가 올려다본 벚꽃잎을 더 낮은 곳에서 바라볼 아버님을 생각한다. 핸드폰을 꺼내 벚꽃 가까이 사진을 찍어 아버님께 보낸다. 아까 통화로 하지 못한 말을 메시지로 건넨다. 다음에 벚꽃 구경 가요. 아버님. 나는 여전히 시댁이 어색한 며느리라 매번 다음으로 미룬다. 내 메시지를 확인하시고도 말씀이 없으신 아버님은 내가 보낸 벚꽃 사진을 보고 계신 듯하다. 휠체어에 앉은 채 맞이한 열 번의 봄날 중 벚나무 아래서 꽃을 올려다본 날들이 얼마나 있었을까.
아버님은 두 팔로 휠체어를 끌며 거리로 나온다. 걷기 좋은 길은 많지만, 아버님은 걸을 수 없다. 그래서 갈 수 없는 길이 더 많다. 흔히 보았던 ‘함께 걸어요.’ 같은 말이 아버님께 응원이나 의지가 되지 않음을 깨닫는다. 걷던 내 두 발이 멈춘다. 왔던 길을 되돌아보며 이 길 역시 아버님께 쉽지 않은 길임을 알게 된다. 내년이 되면 아버님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꽃 사이를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