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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Mar 02. 2022

교가를 모르는 학생들

너의 첫 입학식 날

3월 2일. 오늘은 큰 아이의 초등학교 입학일이었다. 이른 아침 부지런히 아이를 씻기며 “잘할 수 있지?”하고 물었다. 아이에게 하는 당부이자 나에게 하는 말이었다. 정작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이 매니저 노릇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긴장이 되었다. 


 새 옷, 새 가방, 새 신발에 양말까지 새것으로 무장한 아이가 학교 운동장에 섰다. 나는 운동장 스탠드에 서서 아이를 지켜보았다. 키가 고만고만한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눠 준 종이 왕관을 쓰고 목엔 이름표를 걸고 있었다. 아는 얼굴이 보이면 아는 척을 하느라 다들 바쁘다. 입학식이 시작되고 교장 선생님의 말씀이 이어졌다. 길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몇몇 아이들은 운동장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앉아있는 아이가 내 아이가 아니라 다행이란 생각을 했다. 그러면서도 어제까지 용변 후 처치 연습을 시켰던 나와 어정쩡한 자세로 밑을 닦는 시늉을 했던 아이가 떠올랐다. “나 학교에선 똥 참을래.”하며 시무룩 해하던 표정까지.   

   

 가사를 모르는 교가가 운동장에 울려 퍼졌다. 아이들은 옆 친구 얼굴에 가사가 적혀있는 것도 아닌데 어리둥절한 모습으로 서로의 얼굴만 바라보았다. 차렷, 인사! 하는 구령에 맞춰 아이들이 고개를 숙인다. 머리에 쓴 왕관이 떨어지지 않게 하려고 애쓰는 모습에 웃음이 났다. 입학식이 끝나고 저마다 사진을 찍느라 바빴다. 나도 학교에서 마련한 현수막 앞에서 아이와 사진을 찍었다. 나중에 확인해보니 아이는 햇볕에 잔뜩 찡그린 표정이었다. 아이들은 사진을 찍자마자 운동장으로 내달렸다. 어쩔 줄 모르는 망아지 같았다. 운동장은 드넓은데 어디로 뛰어야 할지 몰라 옆 친구가 달리는 쪽으로 무작정 함께 뛴다.     


 ‘6년 금방이다’ 입학식 사진을 보내자 고모가 말했다. 6년이라는 시간이 또 얼마나 순식간에 지나갈까 생각했다. 아이가 걷지도 못하던 시절, 자는 아이를 유모차에 태우고 남편과 학교 운동장을 가로지르며 했던 대화가 떠올랐다. “우리 아기도 크면 여기 다니겠네.”유모차 바퀴가 데굴데굴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굴러갔다. “운동장이 좀.. 작은 거 같은데.”난 집을 보러 온 사람처럼 학교와 운동장을 눈으로 훑었다. 그러면서 그런 날이 오긴 올까. 생각했다. 유모차 안에서 세상모르고 자는 아이를 보면 그 시간이 영원할 줄만 알았다. 그렇게 덜컹거리는 유모차 안에서도 아이는 자라고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엄마, 발에 돌 들어갔어.”아이가 한쪽 발로 뛰며 내게 다가왔다. 신발을 벗겨 안에 모래를 털어주었다. 새 양말 바닥도 털었다. 곧 신발 속 자잘한 모래들까지 적응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운동장엔 남은 아이들이 열심히 달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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