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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21. 2022

너의 졸업식

어쩌면 우리의 졸업식

오늘 큰 아이 유치원 졸업식이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팡팡 터지는 소란스럽던 내 기억 속 졸업식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보호자는 졸업식에 아예 참여할 수 없어, 아이를 유치원 안으로 들여보내고 행사가 끝나기를 기다렸다. 평소와는 다르게 화장을 하고 구두를 신은 친구 엄마들과 인사를 나눴다. 저마다 손에 작은 꽃다발이 들려 있었다. 졸업식을 대하는 들뜬 마음은 그대로 인 것 같았다. 갑자기 날씨가 추워져 차 안에서 행사가 끝나길 기다렸다. 대략 1시간 정도 걸린다는 말을 들은 후였다. 차에서 운전석 열선을 가장 높게 틀고 가수 ‘오존’의 음악을 들었다. 차창 밖으로 졸업을 알리는 현수막이 흩날렸다. 앞으로 이렇게 나른한 음악과 엉덩이가 뜨끈한 졸업식은 없겠지-라는 생각을 했다.     


 시간에 맞춰 유치원 앞으로 가니 아이들이 줄을 서서 나오고 있었다. 엄마들 틈에서 목을 쭉 빼고 아이를 찾았다. “원상아!”내 목소리에 아이가 나를 바라보았다. 아이가 한 손을 들어 인사했다. 그러고는 무심하게 꽃을 받아 들었다. “졸업식 어땠어?”내 물음에 별 뜻이 없다는 걸 아는지 아이는 “그냥 그랬지. 뭐.”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그래. 졸업, 이별, 헤어짐 같은 단어를 이해하기엔 넌 너무 어리지. 괜히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이들이 서로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작별 인사 대신 포켓몬 캐릭터 이름이 거론되었다. 마치 내일도 만날 것처럼 느껴졌다.


 아이는 학사모 이미지와 풍선으로 꾸며진 배너 앞에서 친구와 사진을 찍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라고 쓰인 글귀가 잘리지 않게 하려고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몸을 움직였다. 시키지 않아도 가슴팍에 꽃을 가지런히 든 아이들이 핸드폰을 바라보며 웃었다. 나와 아이도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이 키를 맞추려고 구부정하게 허리를 숙었다. 아이 친구 엄마는 가까이에서 사진을 찍고 멀리 가서 또 몇 장 찍었다. 끝인 줄 알았더니 핸드폰을 가로로 누워 또 몇 장 찍었다. 허리가 아프고 날씨가 추웠다. 친구 몇몇과 사진을 찍고 또 어떤 가족들의 사진도 찍어주었다. 서로의 핸드폰을 주고받으며 졸업식이 마무리되었다.


 막상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는 나와는 다르게 아이는 춥다며 빨리 집으로 가자고 졸랐다. 구석에 놔두었던 아이의 가방을 들었다. 졸업 증서와 앨범으로 묵직했다. 3년의 시간이 이런 거예요. 누군가가 말하는 것 같았다. 한 번 더 유치원을 돌아보았을 때 아이의 담임 선생님과 눈이 마주쳤다. 웃는 얼굴로 다가오며 인사를 했다. 늘 상냥했던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친절했다. “원상이가 선생님 인사 영상 보다가 조금 울었어요.”그 말에 나는 조금 놀라 아이를 바라보았다. 선생님은 “원상아, 잘 지내.”라며 아이를 꼭 껴안았다. 아이는 어정쩡한 포즈로 안겨있다가 작게 “네.”하고 대답했다.      


집에 돌아와 유치원에서 보내준 USB 속 아이의 사진을 보았다. 막 입학했던 5살 때부터 지금까지 사진이 천 여장 정도 들어 있었다. 지금 둘째 나이와 똑같은 큰 아이의 5살 사진을 보니 헉! 소리가 절로 나왔다. 맞다. 이렇게 아기였지. 큰 아이가 그저 누워만 있던 아기였을 때 아무것도 모르는 표정을 바라보며 ‘언제 클 거야?’ 물었던 나를 혼내주고 싶은 순간이었다. 그때만 볼 수 있었던 순진한 미소를 한 아이를 다시금 꼭 안아주고 싶었다. 뭐 보냐며 곁으로 온 아이를 꼭 안았다. 영문을 모르는 아이는 왜 그러냐며 물었다. “원상아, 천천히 커.”나는 아이를 안은 채 말했다. “그럼 우유 안 마셔도 돼?” 묻는 아이의 말에 그건 안된다고 대답하면서. 천천히 커 주길. 다 컸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말하는 나를 따돌리며 어리숙하고 서툰 모습으로 조금씩 천천히 자라길 나는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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