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름 Feb 17. 2022

우리 또 이기자

가족 운동회 추억속으로 


아이들의 졸업식을 앞두고 감상에 젖는 날이 많아지는 2월이었다. 정작 두 아이는 별 감흥이 없어 보이는데 괜히 나 혼자 원에서 보낸 아이들의 사진을 들여다보곤 했다. 봤던 사진을 어제도 보고 오늘도 봤다. 사진 속 아이들은 모두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마스크만 없었어도 아이들의 다채로운 표정을 볼 수 있었을 텐데, 그저 웃고 있겠거니 짐작만 해야 했다. 아쉬운 건 사진만이 아니었다. 가족 운동회와 가을 소풍, 음악회 등 다양한 행사들이 줄줄이 취소되었다. 초대를 받았다면 조금 성가셔했을지도 모를 유치원 행사들이 몽땅 사라지고 나니 어떤 특권을 빼앗긴 기분마저 든다. 코로나만 아니었다면 우리 아이들은 유치원에서 더 깊고 진한 추억들을 남길 수 있었을 텐데.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인 19년 가을, 마지막이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유치원 가을 운동회에 참가했다. 팀별로 흰색 옷과 검은색 옷을 입고 줄을 맞춰 서서 준비운동을 했다. 앞,  뒤로 선 엄마 아빠들이 어색해 옆에 선 아이를 보며 웃기만 했던 기억이 난다. 달리기 시합을 하려고 줄 선 아이들 틈에 단번에 내 아이를 찾았던 기억. 이름을 외쳤지만 끝내 돌아보지 않았던 아이의 뒤통수 같은 것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눈에 선하다. 너무 오랜만에 쥐어서인지 낯설기만 했던 콩주머니 감촉과 터질 듯 말 듯한 박 주둥이에 애가 타던 순간들도. 출발 신호에 엎치락뒤치락 내달리던 아이들을 응원했던 함성소리와 승패와 무관하게 점수를 주던 사회자의 목소리가 예전과 너무 똑같아 연신 웃음이 났다. 어떻게 나 어렸을 때랑 하나도 변한 게 없을까 하면서. 그러면서도 운동회는 난생처음 참가해 본 사람처럼 핸드폰으로 이곳, 저곳을 찍기 바빴다. 사진 속 주인공이 나에서 아이로 바뀐 것 말고는 모든 게 그대로였다.      


 “우리 다음에도 이기자!”운동회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 아이의 손을 맞잡으며 말했다. 당연히 다음이 있을 줄 알았다. 박을 터트리고 환호하고 응원하고 아이의 땀을 닦아주는 순간이. 내 인생에 영영 사라진 줄만 알았던 순간이 다시 되돌아오는 일이 이렇게 어려운 일인지도 모르고. 언제쯤 다시 운동회에 초대받을 수 있을까. 큰 아이의 나이를 헤아리다 몇 번밖에 남지 않았다는 사실에 괜히 아쉬워진다.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아이인데, 나는 자꾸 주책없이 운동장을 밟고 싶어 진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