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큰 아이와 주 3회 한글 공부를 하고 있다. 공부하기 전 우리는 책상에 나란히 앉아 손가락을 걸고 약속한다. “엄마, 내가 못 해도 화내지 않기~”약속이라기보단 아이의 간절한 부탁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아이의 말에 나는 새끼손가락에 힘을 주며 “응! 약속해~! 엄마 화 안 낼게.”하고 대답했다. 하지만 나는 번번이 약속을 어긴다. 입학을 코앞에 둔 지금까지도‘마’와‘바’를 헷갈려하는 아이가 답답해 꽥!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만다.
“가. 나. 다. 라. 마!! 마!! 그 마!!라고!! 이건 바! 바! 바 바고!”
나는 렉 걸린 로봇처럼 바와 마를 반복적으로 외치며 씩씩거린다. 그러면 아이는 풀이 죽은 모습으로 입을 삐쭉거리며 조심스럽게 ‘마’를 적는다. 처음부터 이렇게 화내려던 건 아니었다. 그래 몰라도 괜찮아. 배우면 되는 거야. 모를 수 있지. 이건 어렵지. 그래 그래... 이런 말들을 해가며 입꼬리를 최대한 올리고 참을 인을 세 번 아니 수천 번 외쳤다. 그렇게 앵그리 게이지가 쭉쭉 올라가다 결국엔 펑! 하고 터지고 만다. 내게 핀잔을 얻은 아이는 끝내 흰 종이에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한다.
“엄마.. 내가 몰라서 미안해.”
아이의 말이 은쟁반이 되어 내 머리 위로 쿵 떨어진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나는 아이를 꼭 안아주었다. 왜 나는 아이의 눈물을 봐야만 정신을 차리는 걸까.
“아니야. 이건 엄마가 잘못한 거야. 화내지 않기로 했는데. 엄마가 사과할게. 미안해.”
아이가 울고 내가 사과하는 일은 사실 오늘, 내일 일이 아니다. 아이와 한글 공부를 할 때마다 약속과 윽박과 눈물과 사과의 대 환장 파티가 매일 일어난다. 나는 우는 아이를 꼭 껴안았다. 어깨가 아이의 눈물로 축축해졌다.
예전 회사 동료가 해줬던 말이 생각났다. “솔로몬이 칼을 꺼낼 게 아니라 학습지를 꺼냈어야 해.”두 여자가 한 아이를 두고 자신의 아이라며 주장했을 때 솔로몬은 칼을 꺼내는 대신 학습지를 꺼내 아이를 가르치게 했으면 되었을 거라고. 그때 애한테 화를 내는 사람이 진짜 친엄마라는 말에 나는 내 앞날은 생각도 못 한 채 깔깔 웃기 바빴다.
한글 공부는 잠시 접어두고 오랜만에 수학 학습지를 꺼냈다. (그렇다. 나는 아이의 눈물을 보고도 공부를 멈추지 않는 피도 눈물도 없는 엄마다)“민수가 사과를 12개 가지고 있었는데 4개를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남은 사과는 몇 개일까요?” 난 최대한 밝은 목소리로 문제를 읽었다. 아이는 젖은 눈을 깜빡이다 나를 바라보며 묻는다.
“엄마. 근데 친구 이름은 뭔데?”
아... 약속. 약속!!! 나는 마음속으로 비상벨을 울리며 최대한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아이와 약속을 지킬 수 있는 방법은 하나 뿐이란 생각을 했다. 학원을 빨리 알아보자. 내 혈압과 아이의 눈물을 지킬 수 있는 건 그 방법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