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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10. 2022

조상님의 은덕



 1월 31일, 설날을 하루 앞두고 안타까운 기사를 접했다. 70대 노부부가 살던 집에서 가족들이 모여 전을 부치다 부탄가스가 폭발해 7명이 다쳤다는 소식이었다. 모인 사람은 전부 13명이었고 그중 다친 7명은 70대 할머니와 40대, 10대 등 모두 여성이었다. 이 불의의 사고가 그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지만 기사 하단엔 그 집의 남성들을 질타하는 댓글로 가득했다. 나 역시‘남자들은 모두 뭐하느라 여자들만 다쳤데?’하며 눈살을 찌푸렸다. 내가 아는 사람들이 아님에도 전부 여자들만 다친 게 속상하고 억울했다. 그것도 하필 전을 부치다가 그랬다니. 끝내는 ‘죽은 사람 밥 차려 주다가 산 사람 죽게 생겼네’하는 거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다친 저들 중 차례상의 주인인 조상님의 핏줄은 과연 몇 명이었을까 하는 생각도 함께했다.  

    

 기사 속 내용이 30년도 더 지난 나의 어린 시절 명절 풍경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부엌에 쪼그려 앉아 전을 부치는 작은 엄마, 설거지하는 고모의 등과 팔을 스치며 조심스레 접시를 꺼내는 할머니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내 어린 시절 기억 속 주방에도 남자들은 없었다. 다들 거실과 방에서 TV를 보고 누워 있었다. 방 한구석엔 먹다 남은 전이 담긴 접시가 덩그러니 놓여 있었다.     


 다친 사람들이 전부 내 할머니, 고모, 작은 엄마, 그리고 나 같았다.‘사서 해요.’라고 그 누구도 말하지 않았다. 정성이라는 게, 효심이라는 게 직접 만들어진 음식 수로 가려진다고 믿는 듯했다. 차례상을 앞에 두고 절을 하는 사람 중에도 여자는 없었다. 남자들은 절을 하고 여자들은 널브러진 부엌을 마저 정리했다. 여자들의 손을 거쳐 나온 차례상을 앞에 두고 절을 하면서 그들은 무슨 기도를 했을까. 아마 잘 살게 해 달라고. 우리 가족 아무도 아프지 않고 행복하게 해달라고 빌었겠지. 전을 뒤집던 작은 엄마의 손등에 기름이 튀어 아파했다는 걸 아무도 모르고선 말이다.      


 그로 30년이 흐른 지금, 나 역시 명절에 매번 전을 부친다. 어렸을 적 작은 엄마가 했던 것과 똑같이 갖은 음식을 만들고 절은 하지 않는다. 아니, 하지 못 한다. 그저 문지방 너머 짝다리를 짚고 서서 공기 중에 여러 줄로 흩어지는 향 연기를 바라볼 뿐이다. 그래서 전을 뒤집으며 빌었다. 이 전을 만드는 나는 경주 김가네 수현이요, 이 집의 며느리이고, 제발 차례나 제사상을 그만 만들게 해 주십시오. 아버님의 입에서‘이제 사서 하자’라는 말을 하게 해 주십시오. 입 밖으론 절대 내뱉지 못한 바람들을 뒤집개에 가득 실어 전을 뒤집었다.


 내 바람을 이길 만큼 아버님과 남편의 기도가 절절했는지 아직 아버님 입에서 그만하자-라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대신 올 설 명절엔 자가격리로 집에 있어야 했다. 아, 이런 방법은 아니었는데. 조상님도 하다 하다 안 되어서 날 그냥 가둬버리셨나. 누굴 가두거나 다치게 해서 멈추는 게 아니라 아무도 다치지 않고 갇히지 않은 채 멈췄으면 좋겠다. 조상님도 하다 하다 도저히 안 돼서 이 방법밖에 없었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K-효심을 말릴 자 누구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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