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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Feb 04. 2022

기도하는 일


주말에 아빠 산소에 다녀왔다. 눈이 반쯤 덮인 무덤을 앞에 두고 돗자리를 폈다. 똑같이 생긴 무덤들 사이에 조화로 된 꽃들이 듬성듬성 꽂혀있었다. 물티슈로 아빠의 묘비를 닦아내다 뒤편에 새겨진 내 이름을 더듬었다. 부모의 묘비에 이름이 새겨지는 일이 내게 너무 일찍 찾아왔다는 생각을 했다. 돗자리를 펴고 일회용 접시에 음식을 담는 사이 큰 아이가 물었다. 


“엄마, 외할아버지가 여기 계셔?”

“응. 안녕하세요, 인사해.”


나는 아이의 입을 빌려 아빠에게 인사를 했다. 두 번 절을 하고 종이컵에 사이다를 따랐다. 살아계실 때도 술을 못 해 사이다를 자주 드셨다는 아빠는 저승에서도 매일 사이다만 드시겠구나 생각했다. 취하고 싶은 날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날이 아빠의 짧은 인생에 얼마나 있었을까. 


 큰 아이가 종이컵에 사이다를 무덤 주변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쌓여있던 눈이 금세 녹았다. 아이들은 소풍을 온 것처럼 돗자리 위에서 큰 목소리로 떠들었다. 아이들의 목소리를 곁에서 들으며 아빠에게 말했다.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한 말들은 기도처럼 가닿았다. 아빠 우리 다 건강하게 해줘요. 무덤을 덮고 있는 눈들이 하루빨리 녹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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