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이랑 싸우지 말고.”
내가 초등학교에 입학한 순간부터 할머니는 아침마다 늘 똑같은 미션을 전달했다. 선생님 말씀을 잘 듣는 것과 친구들과 싸우지 않는 것. 지켜야 할 일은 딱 저 두 가지뿐이었지만, 가끔은 지키기 어려운 날도 있었다. 친구들은 하하 호호하며 팔짱을 끼고 잘 지내다가도, 별일 아닌 일에 금방 토라지기도 했다. 어제의 단짝이 오늘의 적군이 되는 날도 부지기수였다. 잘 싸우는 법을 몰랐던 우리는 감정이 상하면 우기거나 소리치거나 다른 친구에게 말을 옮겨 더 큰 싸움을 만들기도 했다.
싸움은 대부분 학교 밖, 놀이터나 집 앞 근처에서 발생했다. 그날도 하교 후 학교 근처 놀이터에서 얼음땡을 하다 싸움이 났다.
“아~진짜~! 김수현! 너 왜 자꾸 나만 잡아!!”
내게 옷깃이 붙잡힌 친구는 억울하다는 듯 우는소리를 냈다. 얼음땡을 하면 나도 모르게 달리기가 제일 느린 아이를 먼저 쫓곤 했다.
“내가?”
“너 아까도 나만 잡았잖아! 짜증 나게!”
“그러게 누가 잡히라 했냐? 얼음을 하던가 빨리 달리면 될 거 아냐!”
나 역시 내 불편한 감정을 드러내기 위해 친구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허리에 손을 얹었다. 방금까지 달렸던 터라 가슴이 크게 오르락내리락 했다. 멀리 도망가 있던 아이들이 하나, 둘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뭐야? 무슨 일인데? 하며 나와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우리는 말없이 어깨만 들썩이며 씩씩거렸다.
“어쩔 거야. 너 술랜데 할 거야? 말 거야?”
내가 말할 틈도 없이 쏘아붙이자 친구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었다.
“야..너.. 너...진짜.. 엄마한테 이를 거야!!”
친구는 동네가 떠나가라 크게 소리쳤다. 제3자에게 우리의 싸움을 이른다는 것은 비겁하고 유치한 행동이라는 걸 모두 알고 있었다. 이 싸움을 내 힘으로 이기고 싶다는 욕망이 조금씩 생겨나기 시작하였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들에게 그 일은 쉽지 않았다.
상대를 한 방 먹일 그럴듯한 말을 하고 싶어도 어휘력이 부족했고, 감정이 말을 앞서 매번 더듬거리다가 결국 자기 방식으로 폭발해버리고 말았다. 누구는 울고, 누구는 욕을 하고, 누구는 손이 먼저 나가기도 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 친구처럼 엄마에게 이를 거라는 말을 가장 많이 했다. 그 말은 일종의 경고 같은 것이었다. 영원한 나의 편이 곧 너를 혼내러 갈 것이다- 하는.
친구는 놀이터 벤치에 던져 놓은 가방을 메고 등을 돌려 자기 집으로 걸어갔다. 발을 구르는 모습이 진짜 화가 난 자의 뒷모습이었다.
“일러라, 일러라, 일본놈! 일본에 가서 똥 싸라~”
상대가 엄마를 찾기 시작하면 우리는 왠지 더 유치해졌다. 나는 그깟 너의 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겠다는 말투로 친구의 등에 대고 비아냥거렸다. 집에 가는 아이를 잡아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갈팡질팡하던 아이들은 결국 내 말에 작게 폭소했다. 흥이 사라진 아이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가방을 둘러메고 집으로 돌아갔다.
친구들과 헤어지고 길바닥에 깔린 돌을 발로 차며 집으로 향했다. 돌을 한 번 차고 친구가 발을 구르며 엄마에게 하소연하는 모습을 상상했다. 또 돌을 한 번 차고 울며 징징거리는 친구를 다독이는 친구의 엄마 모습을 떠올렸다. 드라마나 동화책에 나오는 엄마들처럼 ‘그게 속상했니? 이리와-’하며 팔을 뻗어 친구를 안아주는 엄마의 모습. 이까짓 싸움 따윈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했지만 난 이미 진 기분이었다. 나는 평생 ‘너, 엄마한테 이를 거야!’같은 말은 할 수가 없는 아이였다. ‘부러우면 지는 거다’라는 유행어가 생기기도 전에 그 말이 주는 뉘앙스를 먼저 깨달았다.
“친구들이 맨날 자기 엄마한테 이른데.”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께 친구와 다툰 이야기를 하면 할머니는 TV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너도 할머니한테 이른다고 하지. 왜?”
할머니의 말에 나는 입만 쑥 내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는 그 말이 상대에게 먹힐 만한 말이라고 생각했지만, 엄마가 아닌 할머니가 들어간 그 말은 내뱉는 순간 지게 되는 말이었다.
“괜히 싸우지 마. 사람들이 흉봐. 걍 지는 게 이기는 거야.”
내가 친구와 싸움으로서 할머니가 걱정하는 건 내 교우관계의 틀어짐이 아닌 동네 평판이었다. 행여나 부모 없는 손녀가 동네 싸움꾼으로 소문이 날까 봐 걱정했다. 할머니 역시 그랬다. 누군가와 작게라도 다투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동네 평판이 중요한 사람. 괜한 말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걸 할머니는 싫어했다.
“나는 뭐 내 맘대로 싸움도 못 해?”
나는 진짜 동네 싸움꾼이 되고 싶은 아이처럼 떽떽거렸다. 벌떡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세게 닫았다. 누구 엄마는‘맞으면 너도 때려라,’했다던데. 누구 엄마는‘기죽지 말고 다 소리 지르고 싸워라.’했다던데. 방바닥에 대자로 누워 링 위에 내 모습을 상상했다. 권투 글러브를 끼고 호기롭게 링 가운데로 나가려는 나를 싸우지 마라, 싸우지 마라 하며 팔을 잡고 말리는 할머니. 엄마에게 어깨 마사지도 받고 너 때리고 싶은 만큼 때리고 와라, 응원을 받는 상대방 아이. 곧 할머니한테 팔이 붙들린 채 상대방 아이가 휘두른 펀치에 맥없이 쓰러지는 나. 지금 누워 있는 꼴이 딱 그 꼴이겠구나, 싶었다.
그러고 몇 달 뒤, 길 건너 빌라에 사는 친구와 싸움이 붙었다. 우리는 친구가 사는 빌라 계단에서 서로의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있었다. 친구의 한 손은 내 머리카락에, 또 한 손은 내 볼을 매섭게 꼬집고 있었고, 나 또한 양손으로 친구의 머리카락과 얼굴을 붙잡고 있었다. 오후의 해가 빌라 계단을 선선히 비추고 있었다.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고요한 가운데 씩씩거리는 우리의 숨소리만 울렸다. 누구의 몸에 그런 식으로 손을 댄 건 처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였는지 둘 다 싸움을 끝내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친구가 쥐고 있는 볼도 아프고 친구의 머리카락을 쥔 내 팔도 아팠다.
우리의 지지부진한 싸움은 위층에서 아줌마가 내려오면서 끝이 났다. 아줌마는 우리의 모습에 아연실색하며 우리를 겨우 떼어 놓았다. 친구의 얼굴을 똑바로 마주 보니 덜컥 겁이 났다. 내가 잡았던 친구의 볼은 새빨개져 있었고 머리는 까치집 같았다.
“각자 집에 가! 빨리!”
아줌마는 끝까지 서로를 노려보는 우리의 등을 떠밀었다. 계단 한 층으로 내려와 친구는 곧바로 자기 집 현관문을 열었다. 문이 닫히는 순간 엄마-를 외치며 우는 친구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빌라를 나와 우리 집으로 걸어가며 나는 일부러 머리카락을 정리하지 않았다. 볼에서 피가 흐르는 것 같았지만 그것도 닦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 할머니의 얼굴을 보자 서러움에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할머니는 내 얼굴을 보자마자 대낮에 귀신을 본 사람처럼 놀랐다.
'.수..정이가.. 이렇게..흐흑...”
내 입에서 친구의 이름만 나왔을 뿐인데 할머니는 곧바로 내 팔을 붙들고 길 건너의 그 아이 집으로 향했다. 할머니는 친구네 집 현관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눈물이 찔끔찔끔 흘러나왔다. 눈물이 볼을 타고 흐르자 상처가 따가웠다. 친구의 엄마가 현관문으로 빼꼼 얼굴을 내밀자 방금 싸운 친구의 얼굴이 함께 나왔다. 문을 열고 나온 친구는 아까와는 영 딴판이었다. 머리가 가지런히 정돈되어 있었고 볼엔 연고를 발랐는지 반짝 윤이 났다. 친구의 엄마가 나오자마자 할머니는 소리쳤다.
“아니! 얘가! 애 얼굴을! 피가! 어? 세상에 어떻게 했길래! 애를! 얼굴을 어쩌려고! 어?”
할머니가 무슨 말을 하는지 정확하게 들리지 않았다. 자초지종 묻는 말 따윈 없었다, 마치 우리처럼, 할 말은 너무 많은데 감정이 격해져 아무렇게나 말이 쏟아내는 초등학생처럼 소리치고 있었다. 할머니의 목소리가 너무 커서 옆집에 사는 사람이 빼꼼 문을 열고 구경을 하다 들어갔다. 친구의 엄마는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달싹거렸지만, 막무가내인 할머니의 태도에 아예 입을 닫았다.
“네. 죄송합니다. 네.”
친구의 엄마는 한숨을 쉬며 무미건조하게 대답했다. 얼굴에 딱 쓰여있었다. 말이 안 통하는 노인네. 할머니는 같은 말을 반복하며 화를 내다가 내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왔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서 할머니는 (친구 엄마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어휴. 상종도 못 할 것, 망할 년, 어휴, 어휴’ 하며 작게 중얼거리며 진저리를 쳤다.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와 곧장 내 볼에 연고를 발라주었다. 왜 싸웠냐, 왜 그랬냐 같은 질문은 하지 않았다. 침침해진 눈으로 내 흉터를 멀찌감치 바라보며 으휴. 어휴. 같이 앓는 소리를 내었다. 난 할머니 손에 얼굴을 맡긴 채 아까 계단에 서 있던 할머니를 다시 떠 올렸다. 친구와 머리채를 잡고 싸우는 손녀와 목소리만 크면 장땡인 줄 아는 할머니. 내일 우리는 싸움꾼 손녀와 싸움꾼 할머니로 소문이 나는 건 아닐까.
“할머니. 할머니는 왜 싸웠어?”
할머니는 아까의 감정이 조금 남아 있었는지 거칠게 연고 박스를 정리하며 말했다.
“그게 뭐 싸운 거야! 쯧. 혼내 준 거지!”
그러고는 내 쪽으로 얼굴을 돌려 다시 한번 내가 지켜야 할 미션을 확인시켰다.
“그니까 친구랑 싸우지 마. 어?”
나는 죄인처럼 작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할머닌 어디서 그런 큰 소리가 나오는 걸까. 할머니의 등을 오래도록 바라보았다. 그날은 내가 남과 다투는 할머니의 모습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