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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an 27. 2023

그 택시를 다시 탄다면

 할머니나 고모는 엄마에 대해 말하는 법이 없었다. 나를 처음부터 엄마가 없이 태어난 아이처럼 대했다. 엄마를 향한 비난이나 연민 같은 말뿐만 아니라, ‘엄마 보고 싶어?’,‘엄마 없다고 애들이 놀렸어?’ 같이 ‘엄마’가 들어간 단어조차 입에 올리지 않았다. 나를 위해서였는지, 아니면 입에 올리기조차 싫어서였는지는 모르지만‘엄마’라는 단어는 우리 집에 금기어 같았다. 


 “수현아. 엄마 너무 미워하지 마.”


 그래서 막내 고모 입에서 ‘엄마’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불에 닿은 듯 화들짝 놀랐다.  내가 돌아봤을 때 고모는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고모는 불콰한 얼굴로 거실에 대자로 조용히 누워만 있었다. 뒤이어 무슨 이야기를 하려나 싶어 기다리고 있는데 고모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나는 다시 TV에 시선을 돌렸다. 눈은 TV에 가 있었지만, 머릿속엔 방금 고모가 던진 말이 둥둥 떠다녔다. 고모 역시 대답을 듣고자 했던 말은 아니었겠지만, 나는 ‘네’라고 해야 할지 ‘싫어요’라고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엄마를 미워했던 적이 있던가. 돌이켜 보면 나보다 더 엄마를 미워한 건 친척 어른들이었다. 


“아니, 어떻게 애만 턱 보내 놓고 십 원 한 장 안 놓고 갈 수 있어요? 어휴, 세상에.”

할아버지의 제삿날, 작은 엄마는 전을 뒤집으며 낮게 속삭였다. 나는 한쪽 부엌 구석에서 그 말이 안 들리는 것처럼 천연덕스럽게 약과를 집어 먹었다.


“엄마라는 사람이 어떻게 그럴까. 쯧. 애만 불쌍하지.”

 작은 엄마는 방금 뒤집었던 전을 꾹꾹 눌러가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할머니는 작은 엄마의 말에 대꾸가 없었다. 그 침묵이 동조인지, 무시인지 표정에서조차 읽기 어려웠다. 할머니는 나에게 그랬듯 다른 사람 앞에서도 엄마에 대해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친엄마라는 인간이. 저 어린 애를 두고. 세상에. 천벌을 받을 거야! 아주.” 하면서 큰 소리를 내던 큰할머니의 말에도 할머니는 코를 ‘킁-’하고 들이킬 뿐이었다. 오히려 엄마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엄마에 대해 더 많은 말을 했다.     


 어른들이 엄마의 욕을 할 때마다 나는 그것엔 통 관심 없는 순진한 아이의 표정으로 방바닥에 누워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보는 척했다. 귀로 몰아치는 엄마를 향한 날 선 말을 들으며 나는 마음속에 물이 찰박찰박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나를 떠난 야속한 엄마. 그래도 보고 싶은 엄마. 곧 오겠다는 거짓말만 한 엄마. 그래도 나를 안아줬던 엄마. 그런 엄마에게 내려질 천벌은 무엇일까. 물이 목까지 차올라 넘치려는 것을 애써 누르며 스케치북에 의미 없는 동그라미만 계속 그려나갔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는 이모와 함께 철물점을 운영했다. ‘운영’이라는 단어가 거창하게 느껴질 정도로 철물점 내부는 손바닥만큼 작고 드나드는 손님도 몇 없었다. 철물점 가게 안에 붙어있던 방 한 칸이 엄마와 나의 보금자리였다. 열 평은 될까 싶은 공간에 엄마와 나, 이모네 세 식구까지 모두 다섯 명이 살았다. 그곳에서 엄마는 2년간 남편 없이 나를 홀로 키웠다. 창고 손잡이로 쓰일 법한 쇠붙이들과 못, 나사들이 뒤엉켜 가게 양옆에 누워 있었고, 벽면을 가득 채운 망치와 톱 같은 차갑고 날카로운 것들이 아빠를 대신해 우리 모녀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었다. 그리고 엄마와 이모는 방문 앞에서 서로를 곁에 두고 열심히 미싱 페달을 밟았다. 시끄러운 미싱 소리 때문에 엄마를 부를 때면 언제나 목청을 높여 "엄마! 엄!! 마!!" 하고 소리를 지르곤 했다. 

엄마는 한참 뒤에야 나를 돌아봤다. 

         

  나를 돌아보던 엄마의 얼굴은 또렷하게 기억나진 않지만 미싱 앞에 앉아 있던 엄마의 등은 아직도 기억에 남아 있다. 미싱 기계로 빨려들어 갈 것 같던 말린 굽은 등. 드르륵- 드르륵- 엄마는 가난을 피해 열심히 미싱 페달을 밟았지만 나아가는 건 천 쪼가리일 뿐 가난은 우리를 훨씬 앞서 기다렸다. 그렇게 무언가에 쫓기듯 페달을 밟았던 엄마의 나이는 스물일곱이었다. 미싱 기계에 발이 묶여 속절없이 시간을 낭비하기엔 너무 이른 나이였다.      


 할머니 집에 처음 가던 날, 나는 새로 산 빨간 작은 꽃이 촘촘히 박힌 검정 원피스를 입었다. 무슨 일로 이런 원피스를 다 입었나 싶어 방안을 하염없이 빙빙 돌았다. 돌면 돌수록 치맛자락이 풍선처럼 부풀었다 가라앉기를 반복했다. 처음 신어 본 분홍색 구두를 바라보며 '우리 진짜 좋은 데 가는구나', 생각했다. 신발이 데려다준 곳은 너무 낯선 친할머니의 집이었다. 할머니 집은 방 세 개, 화장실이 하나인 평범한 다세대 주택이었지만, 당시 가게 안에 딸린 방에서 생활하던 내겐 너무 생소한 곳이었다.

      

 엄마는 한참 동안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금방 지루해진 나는 빨리 집에 가자고 채근했다. 현관에서 구두를 신으니 엄마는 혼자 현관문을 나서며 말했다. 

"엄마 볼일 보고 열 밤만 자고 올게. 그 동안 할머니 말씀 잘 듣고 있어."

순간 나는 닫혀가는 문을 부여잡고 엉엉 울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빨간 돼지 저금통을 흔들며 나의 시선을 끌기 위해 애쓰셨지만 내 눈에 보이는 건 닫히는 문틈 사이로 보이는 엄마의 얼굴뿐이었다. 이 낯선 환경에 홀로 있어야 한다는 사실이 두려웠다. 문을 사이에 두고 한참 실랑이하다 엄마는 하는 수 없이 눈물 콧물로 얼굴이 엉망이 된 나를 다시 집으로 데려갔다. 


집으로 가는 길, 생전 잘 타지 않는 택시를 타서 멀미를 심하게 했다. 기사님이 좌회전, 우회전 깜빡이를 켤 때마다 '딸깍딸깍'하는 깜빡이 소리가 꼭 자동차가 껌 씹는 소리처럼 들려왔다.     


 창밖에 고가 도로가 보이고 자동차는 딸깍딸깍- 쉴 새 없이 껌을 씹고 있었다. 얼마나 갔을까. 의자에 반쯤 걸터앉은 채 엄마에게 시선을 돌렸을 때, 엄마는 울고 있었다. 엄마는 어린아이처럼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엉엉 소리 내어 울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 낯설어 왜 우느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가만히 바라보기만 했다. 

    

훗날 큰할머니가 말했던 천벌을 지금 받는 사람처럼, 엄마는 터져 나오는 울음을 참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지만 소용없었다. 미싱 기계 앞에서 웅크리던 모습으로 엄마는 등을 굽힌 채 한참을 울었다. 큰할머니도 작은엄마도, 큰고모, 막내고모, 삼촌과 할머니, 그 누구도 본 적 없는, 오로지 나 홀로 목격한 엄마의 모습이었다.     

  우리는 결국 가난에 지고 말았다. 자라 온 시간보다 앞으로 자랄 시간이 몇 배나 더 남은 어린 나와 나만큼이나 어렸던 나의 엄마. 가야 할 길은 너무 먼데 우리 집엔 서서히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처럼 녹슬어 가던 못과 아무리 밟아도 달릴 줄 모르는 페달이 있을 뿐이었다. 

   

아주 먼 미래에 타임머신을 탈 수 있게 된다면 나는 다시 그 택시를 타고 싶다. 창밖에 고가 도로가 보이고, 자동차 껌 씹는 소리가 울려 대던 그 택시 안에서 나는 엄마를 가만히 안아주고 싶다. 


죄가 없지만, 용서를 비는 사람처럼 울던 엄마를 꼭 안아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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