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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Jul 28. 2023

남편의 삶, 나의 삶

남편의 승진과 포상에 나는 왜 기쁘지 않을까?

어젯밤, 늦게까지 야근을 하고 돌아온 남편이 옷도 갈아입지 않고 손바닥만 한 나무 상자를 내밀었다. 상자를 열어보니, 거기엔 금으로 된 열쇠가 들어있었다. 남편의 회사에서 근속 5주년을 기념하며 준 것이었다. 겨우 5년에 무슨 포상이냐 싶지만, 이직이 잦은 직군에서 5년은 꽤 긴 시간이었다.   

 

식탁에 앉아 입가에 미소를 띤 채 열쇠를 요리조리 살펴보는 남편의 모습에 웃음이 났다.

"그렇게 좋아?"

남편은 마치 칭찬 스티커 한 장을 꽉 채운 아이 같았다. 누군가의 칭찬과 보상에 기분이 좋은 건 아이나 어른이나 똑같구나, 생각했다. 남편이 욕실로 들어간 뒤, 탁자 위에 놓인 열쇠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황금열쇠는 어두침침한 거실에서 홀로 빛났다. 

    

남편은 나의 배우자, 아이들의 아빠이기 이전에 내 사수이자, 회사 동료였다. 결혼 후 남편이 경력을 쌓고 승진을 하며 직함을 바꿀 때마다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살림을 했다. 같은 직군, 같은 회사에서 만난 우리가 10년이 지난 지금, 왜 이리도 다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 걸까.      


아이를 키우는 전업주부의 삶엔 아무런 포상이 없다. 전업주부 근속 10주년! 같은 상패 대신,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사랑해요.’라고 적힌 아이들이 준 카드가 상패라면, 상패겠지만. 아이들의 온전한 사랑은 엄마라는 역할에 대한 보상으로 충분하다. 하지만 사회인으로서. 직업인으로서의 나를 인정해 주는 건 아무것도 없다.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누구에게나 있다. 나 역시 누군가의 인정과 칭찬이 고픈 어른이었다. 몇 년 전, 나는 살림과 육아에 몰입하는대신 둘째가 어린이집에 입소하자마자 재취업을 했다. 일에 몰입하고 싶었지만, 애들 하원 시간에 맞춰 출퇴근 시간을 조정해야 했고, 아이가 아프다는 전화를 받으면 회의를 미루고 동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출입문을 나서야 했다. 허겁지겁 집으로 달려갈 때마다 이런 전화는 왜 남편 대신 나만 받아야 하는 걸까, 생각했다.    

 

그럼에도 나는 회사가 필요했다. 빈 그릇이 수북이 쌓인 싱크대 대신 깔끔하게 정리된 내 책상이 있다는 것. 육아와 살림 말고 일에 대해 논의할 동료들이 있다는 것. 누구의 엄마가 아닌 나를 부르는 또 다른 명칭이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회사에 다닐 이유는 충분했다. 하지만 워킹맘의 삶은 양손에 접시를 돌리고 외줄을 타는 것처럼 위태로웠다. 나는 곧 줄에서 떨어지고 접시는 와장창 부서지겠지.       


2년이란 시간을 버티다가 끝내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남편은 마치 이 일을 예견한 사람처럼 무덤덤했다. 너무 쉽게, ‘그렇게 해.’ 했다. 내 의견에 대한 존중이라 생각하지만 어쩐지 긴 한숨이 나왔다. 남편에게 바랐던 답이 따로 있던 것처럼. 난 남편에게 무슨 말을 듣고 싶었던 것일까.      


가끔은 내 존재가 햇볕을 받고 선 남편의 긴 그림자 같다. 뜨거운 햇볕을 온몸으로 받고 있는 남편이 안쓰럽다가도, 그 볕을 받는 사람이 나였으면.. 하고 바란다. 밝은 빛에 땀을 흘리고, 사람들의 시선을 받고, 그저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 그림자는 아무도 바라봐 주지 않는다. 그저 앞에 선 사람을 묵묵히 따라갈 뿐이다. 

     

“이거 내 거 할래.”

샤워를 마치고 나온 남편의 등을 보고 말했다. 남편은 부부 사이에 내 것, 네 것이 어딨느냐 하더니, 곧 그래라- 했다.     


“있지. 왜 없어.”

남편은 흘깃 나를 쳐다보곤 바로 머리를 말렸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서로의 삶에 기대 살아가고 있지만, 남편의 삶과 나의 삶은 다르다. 우린 같으면서도 다른 삶을 살아간다. 나의 삶, 나의 꿈. 이런 것을 생각하며 상자의 뚜껑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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