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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을 보며 사는 존재다

지루해지기 전에 한 발을 떼는 것

작정하고 휴식을 취한 지 2주 반이 지났다.

생일이었던 어제 오전에 미팅 두 개를 가볍게 마치고, 점심 때는 친구가 방문했다.

그와 함께 내가 좋아하는 자루소바와 반숙 계란밥을 먹고 전 창에 숲이 들어온 카페에 다녀오니 나른해진다.


아무래도 전쟁터가 다른 사람들이라(그는 가정과 골프를 나는 사회를), 어느 정도 수다를 떨고 나면

더 이상 할 말이 많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급속도로 피로가 몰려왔다.

잠깐 노트북을 켜서 집중해 일을 마치고 40분 뒤에 다시 잠에 들었다.

시간이 흘러 4시 남짓 되자, '아! 너무 게으르게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깜짝 놀라 종이컵에 카푸치노를 담아 곧장 산책길에 나섰다.


나 같은 연구자의 루틴이란 대체로렇다.

새로운 분야에 논문을 쓴다. 두 달가량 집필을 한 뒤에 논문을 투고할 무렵, 발제 요청이 들어오고 한참은 여기저기 의뢰 건이 제법 생긴다.

그리고 무릎 아래 에너지가 찰랑찰랑할 정도만큼만 남는다.

'앗, 이제 쉬어야 하나보다' 할 때쯤 맥박이 빨라진다.

사인을 느끼고 쉼 모드에 돌입해보지만,

한참 가동되고 있는 맷돌이 단 번에 서지는 않는 것이다. 시간이 필요하다.


글이 잘 써지고 자리에 서고, 그러고 나서는 무슨 일이 벌어질까 싶을 정도의 불안감이 있다.

이때 불안감은 다른 게 아니라, '아, 귀찮다. 그만 쫌~~~'하는 행복하지 말 불안한 기분이다.

그때 다시 다음을 위한 시작을 위해서 머릿속을 비우고, 상큼한 허브티로 부교감신경이 일하게끔 해야 한다.

쉴 때도 마찬가지다.

예전처럼 진짜 걷는데 힘이 들 정도로 나자빠진 것이 아닌 이상,

'어, 이거 좀 게으른 게 아닌가' 싶을 때

슬슬, 전에 남겨둔 마중물에 물을 더 채우고 글감을 찾아 공부에 나서야 한다.

이전의 연구의 끄트머리를 다시 살펴보고, 정신을 가다듬고

조금씩 워밍업을 해야 한다.


인간은 앞을 보고 나갈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린다.

지난 추억이나, 슬픔, 영광에 젖어있는 것은

아무튼 길어서는 곤란하다.

특히 나란 사람은(아닌 사람도 있을테니 단정하지 말아야지)

그렇지 않고서는 좀처럼 힘을 내기 어려운 존재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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