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일상

June 21, 2022

글쟁이들은 폭발적으로 글을 쓰고 싶을 때가 있다.

나 역시 생각이 언어로 이어지는지 아니면 언어가 글로 이어지는지 알 수가 없지만

(고등학교 때 문학 교과서에 이런 글이 있었다. 언어가 사고보다 먼저인지 혹은 사고가 언어보다 먼저인지)

신은 인간에게 언어도 이성도 같이 주었다.

그래도 역시 글을 써야 생각이란 게 질서 정연한 인간의 이성의 루트를 따라 형성되는 그런 기분이 든다.

그래서 가끔 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숙제를 드리는 것 같아 미안하지만,

논문이나 업무 메일이라도 안 쓰면 매우 심심한 성격이므로

자주 좀 더 나의 일상을 기록해 보기로 했다.

@ 주인분의 섬세한 인테리어

연구를 쉬고 있는 지금 많은 여유가 생겼다.

물론 회사 업무가 있지만, 공식적으로 아침 이른 시간과 휴식시간, 저녁 시간은 확보된 셈이다.

그리고 실상 누구나 한 번은 3년 간 월화수목금토일 머리를 쓰고 집중하다보면 어떤 업무를 하더라도 자신감이 생길 정도의 사고력, 업무 집중력이 생긴다. 이것은 사실이다.


자신에게 시간 주는 것에 후한 사람이라, 부끄럽기도 하지만 정확히 5월 21일부터 딱 한 달 간 여유를 부리는 중이다.

당분간 회사 일과 사람들에만 관심을 쏟으면서 어려운 일들은 쉬기로 했다.

워크숍도 가고, 하반기 업무들을 기획하면서 보낼 계획이다.


오늘은 어떻게 보낼까.

이렇게 인생에서 시간이 대폭 주어지기는 정말 쉽지 않은데 감사할 뿐이다.

사실 얼마 전 일산에서 저가형 브랜드 커피에서 더치 라테를 경험하고 나서는 그 맛을 다시 느끼고 싶어 같은 곳을 찾아 나선 길이다. 회사로 출근하기에는 출퇴근에 두 시간을 쓸 것이 아무래도 아까웠다.

물론 운 좋게 앞 좌석인 창가 자리에 앉는다면, 서판교의 아름다운 풍경을 감사하면서 즐거울 수도 있겠지만.

아무래도 노트북으로 작업을 좀 하고 싶어서 드물게 홀이 넓은 베이커리형 카페를 찾게 됐고, 다행히 이곳에서도 더치 라테를 판매하고 있었다.

널찍하고 인테리어가 차분한 이곳에서 더치 라테를 판매하다니! 이 역시 감사할 일이다.

감사하는 마음이 생기면 기분이 좋아진다. 특히 어젯밤부터 달라진 남편의 태도에 뛸 듯이 기쁘다.

감사하는 정서는 뇌에서 유대 정서와 관련해 활성화되고 도파민, 세로토닌과 같은 신경 물질이 분비된다.

"감사하는 마음은 관대함에 대한 보상이며, 사회적 행동의 건강한 선순환을 만든다"-Antonio Damasio, 신경과학 박사-

나의 남편은 점수로 매기자면 97점이다. 그의 장점이라면 97가지라도 늘어놓을 수 있지만, 나머지 3점에 대해서는 기도를 하게 됐다.

나의 불만이기보다는, 그를 위해서 그가 좀 더 도전적이고 또 시련의 시기에도 감사하는 시야를 갖기를 원한다.


또 한 가지 기도 제목은 이렇다.

근래 이사를 하면서 여차 하면 강남에 갈 수 있지만, 그의 직장과는 거리가 꽤 생겼다.

그리고 그간 도심 한가운데 거주지를 갖았던 우리는 대중교통이 편리하지 않은 불편함을 체험하게 됐다. (도심의 한가운데 살면, 대중교통의 불편함을 고민할 때가 있는데, 이제는 그 대중교통 시스템마저 아쉬운 것이다)

특히 남편의 직장이 멀어진 것에 나는 미안함이 생겼다. 재택을 할 수 있는 나와 달리 그는 "종착지"를 확인해야 하는 만원 지하철에 시달리게 됐고,

나는 이제 "해방 일지"라는 경기도 끝자락에서 출퇴근하는 삼 남매의 촌티 벗기를 그린 드라마에서 "서울을 노른자, 경기도를 흰자"라고 비유한 것의 의미를 정확히 이해하게 됐다.

(물론 내가 지금의 거주지를 선택한 데에는 보다 더 철학적이고 거시적인 판단에 근거한다.

어떤 연구 결과에 의하면 교통량이 적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교통량이 많은 거리에 사는 사람들보다 사회적 관계가 3배나 많다는 것이다. 그들은 "자기 영역(home territory)", 즉 내가 소유하고 투자했다는 의식을 느끼느 도로 구간이 확장되고, 교통량이 적은 구역에 사는 주민들은 그들의 거리, 그들의 마을이 더 안전하다고 느낀다. 대기도 덜 오염되고, 가족이 밖에서 놀다가 차에 치일 위험도 적고, 근처에서 시간을 보내는데 쾌적함을 느낀다. - J.K. Hirsch et al., " Social Problem solving and suicidal behavior: ethnic differences in the moderating effects of loneliness and life stress", archive of Suicide research, 16, no.4(2012), 303-15.)


그래서, 이것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거주지를 중심으로 남편의 직장!!

나와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 선택지가 생기기를

그들을 인도해가실 하나님을 기대한다.


빌립보서 4:4, 6-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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