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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끊을 수 있을까

커피사랑의 끝에는 역류성 식도염이 기다렸다

커피와의 인연


언제부인지 그 시작을 따라가보자.

나는 놀랍게도 중학교 시절, 쉬는 시간에 뜨거운 밀크커피를 한 잔 하는 시간을 좋아했다. -떡볶이를 좋아해야 할 나이에 커피라니!-

학교 매점 옆에는 등나무 벤치가 이었는데

힘에 부친 시간에 커피 한 잔 하는 것이 좋았던 까닭에

이 녀석을 즐기기 시작했나 보다.


어린 나이에도 뜨거운 온도를 품고 있는 커피 한 잔은

가끔은 밀려오는 잠을 깨기에도 좋았고,

무엇보다 리프레시되는 카페인의 느낌이 좋았던 것 같다.


특히 아침에 마시는 커피는 답답한 수험생활에 위로가 됐고,

연습용 수능시험지를 푸는 오후 늦 마시는 캔커피는

책상 한 귀퉁이에 올려만 놓아도, 몰려온 잠을 내쫓을 것만 같았다.


스타벅스와 카푸치노

그리고 대학생이 되었다.

시애틀에 스타벅스 1호점이 있다면,

서울의 스타벅스 1호점은 이대점

그리고 놀랍게도 2호점은 한양대점으로 기억한다.

그때나 지금이나 스타벅스는 어디든지 북적이는 사람들도 문전성시를 이룬다.

스타벅스가 좋았던 것은, 일정한 원두와 레시피 때문이다. 적어도 원두나 우유, 만드는 이에 따라 상상하지 못할 맛이 아닌 점이 나에게 좋았다.


나는 라테류를 좋아했는데

라테에 커피맛이 숨겨지거나 하면 아쉬웠다.

우유와 커피와의 경계가 모호했다.

그래서 라테와 확실히 구분되는 아주 뜨거운

"카푸치노"를 마시게 됐다.

그리고 그것이 "드라이 카푸치노(Dry Cappuccino)"라는 것을 알게 됐다.

뜨겁게 스티밍한 우유에 진한 에스프레소를 통과하게 하며,

거품을 그 위에 살포시 올려준다.

다른 라테류와 구분된다면, 우유 거품의 비율이 70%이상이며, 개인적으로는

거품의 빽빽하게 있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정도가 좋다.

커피를 다 마시고 나면 거품이 그대로 남을 정도이다.


스타벅스에서 만큼은, 라테와 구분이 안 되는 카푸치노에 대해서는 정중히 다시 만들어달라고 할 때도 있었다.

나는 그것을 "떡푸치노"라고 이름 짓기도 했다. 깔끔하게 만들어진 드라이 카푸치노 한 잔에  행운을 만난 듯하던 날들도 많았기에. 까다로워 보이지만, 특히 카푸치노를 구분하는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아침에는 꼭 뜨거운, 거품이 확실한, 그리고 에스프레소가 진하게 아래 깔려있는 맛을 포기할 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엄격히말해  카페인 때문도 아니었다. 마치 흰 눈이 내리는 로키산맥의 온천에 있는 기분을 만끽하는.. 그런 쾌감이 있다.


리하다 친해진 여의도 스타벅스 크루들이 인사동 지점에서 아는 척을 하며 인사를 건넨 경우도 있었다.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알 것이다.

한편으로

진짜 좋아하는 것은 참을줄도 알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습관적이 돼 버리면 그 제대로 됨울 만끽하기 어려우니까.


지금이야 떡푸치노를 주셔도 그냥 아무렇지 않게 받아 든다. 그만큼 더 이상 카푸치노에 연연하지는 않는다. 


카푸치노에 대한 나의 뜨거운 사랑은 20대를 지속하다가,

30대에도 여전히 아침식사를 대신하기도 했다. 바리스타는 아니지만, 커피에 내가 좋아하는 거품을 확실하게 낼 수는 있게 됐다.

역류성 식도염 당첨!


당시도 논문을 쓰느라 여념이 없었고 점심을 먹고 나서 잠깐 자는 낮잠이 주는 에너지를 꺼내먹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느 날엔가 목에 이물감이 느껴져서 이비인후과를 찾았지만,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성대결절, 인후염 등 가능성을 살폈다가 결국인 겨울 아침을 여는 카푸치노! 를 찾는 습관 때문인 것을 알게 됐다.

진한 에스프레소, 겁나 뜨거운 온도, 그리고 우유,, 식도를 괴롭힐 수 있는 최고의 조합이다.

바로 이 녀석이 역류성식도염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당시 어떻게든 논문을 집중해서 쓰려고,  점심식사를 하고 침대에 누워 낮잠을 잔 쪽이 큰 기여를 했겠지만, 25년을 넘게 마셔온 모닝커피도 범인인 게 틀림없다.


빈속에 뜨거운 커피를 마시는 일과 작별해야 한다.

아니, 커피를 마시는 일과 멀어지는 것이 필요하다.

세상에 모든 것이 그대로 유지되리라는 법은 없으니까, 너와도 멀어질 수 있겠지

-그런데 따지고 보면 여태 만나오면서 나와의 밀당은 분명히 있었다-

.........................................

너와 헤어질 수 있을까.

너를 보아도 그만, 안 보아도 그만인 날들을

생각하니, 아쉽다.


한 가지 더! 커피는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심박수를 뛰게 하는 숨겨진 능력도 있다.

그러니, 멀어질 수 있다면 멀어져야하지 않을까 ㅜ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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