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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돌봄에 필요한 것들

12월을 보내며

연말이라 편집위원으로 있는 저널의 서평에서 1년 간 다룬  책들을 둘러보고 있다. 그중에 <나의 빛을 가리지 말라>-제임스 윌리엄스 2022, 머스트 리드북-에서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디오게네스와 알렉산더 대왕 사이의 유명한 일화를 제목으로 차용했다.-  집중력을 다룬 이 책의  훌륭한 내용에도 불구흐고  (다시 봐도)책 제목과의 연관성은 이해하기 어렵다 -

유명환 이 일화를 통해 근래 생각을 겨본다.


명상과 이기


"햇빛만 쪼이면 행복할까?"

당시 최고 권력을 가진 알렉산더 대왕이 디오게네스를 찾아갔지만, 그는 마침 나체 수준으로 누워 일광욕을 즐기던 터였다. 알렉산더는 디오게네스에게 소원을 말해보라고 했으나 디오게네스는 알렉산더에게 “당신의 그림자가 햇빛을 가리고 있으니 일광욕을 즐기게 비켜달라.”고 한다.

@햇살만으로 행복한 토론토 고양이

한참 전에는 멍 때리기가 세간에 유행했었다. 그러다 보니 햇살멍, 물멍, 불멍, 등이 자연스럽게 예찬되곤 했는데, 나 역시 자연 속에서 햇살을 쬐는 것을 좋아한다. 그런데 과연 이런 보기 좋은 말들처럼, 자연 속에 틀여 박혀 문명의 이기를 경험하지 않는 삶이 충만한 것일까? 언제까지 명 때릴까.


머릿속에 생각이 꽉 차 있는 것 같으면서도 언어로 꺼내기가 애매했던 차에 오늘은 오랜만에 피천득 님의 <인연>에서 "물 떠먹는 표주박 하나만 가지고 사는 디오게네스는 아무리 고답한 철학을 탐구한다 하더라도 명상하는 미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가구 中-,고 평가한 부분을 마주하게 되었다.


계속되는 나의 중요한 고민 중 하나는 바로 "얼마만큼 자연에, 얼마만큼 이기에 속할 것인가"이다. 고민이라고 하니 거창하지만, 어떤 삶이 충만할까? 와 연관돼 있다.

내가 취할 수 있는 이기는 건물과 그 안에 있는 가구와 그릇들이다. 개인적으로 예전부터 자연 속에서 잘 지어진 건물양식을 굉장히 좋아한다. 요새는 사람들이 교외에 근사한 카페나 레스토랑을 찾아가지만, 나의 경우에는 자연 속에서 현대적으로 지어진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나,  거친듯한 industrial 계통의 설계 혹은 오랜 한옥을 떠올릴 수 있는 건축물에서 머물면서 쉼을 얻곤 한다. 아마 나의 여행 취향 그러한 성향 때문인 것이다.

그래서 고백하건대, 결코 '촌'이나 '시골'스런 곳에는 오래 못 있을 것이다. 자연에서 있지만, 나를 안락히 지켜줄 건물과 따뜻하거나 세련된 인테리어가 역시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 침대에서 파도 소리가 들리면 좋지만, 욕조에는 늘 따뜻한 물이 세게 나와야 하고, 비데는 화장실마다 있어야 한다. 화장실 바닥에는 물이 없고 변기는  따뜻해야 한다.

변명같지만, 몸이 약해 그런것들이 필요하다.

이런 변덕스럽고 이율배반적 이어 보이는 공간에 대한 나의 성향이 설명이 필요했는데, 오늘 피천득님의 디오게네스의 생활양식에 대한 평가는, 내게 엄청난 지지를 가져다주었다.

시대의 문명이 허용하는 이기를 충분히 얻어 쓰면서, 자연과 철학을 연구하면 되는 것이구나! 하면서, 채식을 좀 더 본격적으로 하더라도 고기를 충분히 먹어야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 코스트코에서 섬초에 가까운 시금치를 발견했다

설명이 따르는 가구와 장식품


십 년 전에 일본에 다녀오면서 좋아하는 가리모쿠 60 시리즈의 의자를 비행기로 태워 온 적이 있다. 예전에는 지하철 2호선이 딱 가리코무 의자의 초록색 벨벳 소재였는데! 하면서


유튜버로 알려진, 밀라논나님도 자주 자신의 가구나 오래된 장신구, 소품을 소개하곤 했었다. 서양사람들은 조상들로부터 물려온 오래된 가구나 그릇에 관한 이야기, 자랑이 많은 것 같다. 나에게도 오래도록 누군가로부터 물려받은 고풍스러운 그것이 있으면 좋겠다. 집에 손님이 찾아오거나 혹은 나도 (그럴 일은 없어 보이지만) 유튜브를 하게 된다면, 가구나 그릇에 대해서 한참을 떠들어도 이야기가 흐뭇하게 나올 것 같은 그런 "설명이 필요한 것들"이 생각나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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