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우리는 지금도 친구일까

변해가는 관계에 대하여

코로나와 모임

2020년, 우리 삶에 큰 변화를 불러온 코로나는 모든 행사와 모임과 만남을 미루거나 취소할 때 적당한 핑곗거리가 되었다. 전 지구촌이 코로나는 그야말로 첨이라, 잡아둔 모임을 연거푸 미루게 되더라도 조금의 무안함을 빼면, 충분히 합리적인 이유가 됐다.


엊그제 연말을 앞두고 다른 모임은 다 제쳐두고라도, 어릴 적 친구 모임만큼을 홈파티로 진행하게 됐다.

그렇게 진행된 친구 모임에는 단 4명이 참여했고, 1 명은 간식지원으로 마음을 같이 하였다. 사실 이번 모임은 이 정도까지만 기대했고, 홈파티 인원이라는 적당하다 생각했다. 너무 단출했기 때문일까. 모인 친구들은 지난번 모임에 이어 "참여"를 거론했다. 친구들이 모인 카톡방에는 14명이 있었다. 여기서 11명이 이 모임의 회원이다.

그런저런 이야기들이 우선순위에서 재껴지는 프리패스인 코로나 시기, 사실 우리 모임에서도 어느 때보다 각자의 관계를 생각해 볼만한 기회가 됐다.


코로나 때문일까?, 우리는 진짜일까?

친구들은 모임의 취지와 태도의 문제를 이야기했다. 그러나 내 마음엔 모임보다 "관계의 진정성"에 문제의식이 있었다. 공교롭게도 코로나가 시작해서 올 상반기는 단 하나의 일에만 매진해야 하는 시기였지만 이 모임은 챙기게 되다보니, 코로나와 함께 더 부각되는 부분들이 있었고 유난히 하행선을 타는 얼굴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래서인지 친구 모임, 그리고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는 시간이 된 것인데 아마 다른 친구들도 못지않은 생각들을 하게 됐던 것 같다.


직장생활, 결혼, 출산, 삶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일이 있다. 이런 일은 중요하지만, 관계를 유지하는 데에는 더 이상 "추억팔이"로만 안 되는 한계가 있다. 과거의 한 시기를 공유했다고 해서 지금 그 우정을 지키는 것이 가능하다는 기대가 착각이라는 것을 언젠가 깨달았다.

대학시절 좌충우돌하는 시기와 작별하면서 되면서, 우연히 만난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와는 soul mate 라 생각해 특별한 마음을 나눴고, 자주 보지는 못했지만 결혼 이후에도 매년 한 번을 만나도 서로의 영혼에 단비와 같은 환기를 주게 됐다. 그런데 최근 3-4년을 돌이키며, 그 친구의 말뿐인 연락에 관계가 머무르게 되었다. 퇴보였다. 이런 상황이 처음에는 혼란스러웠지만, 책임과 의지 없는 사랑이 유지되기 어렵듯 우정도 그러함을 깨달았다. 그 어떤 관계에는 최소한의 시간과 물질과 마음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 없이 단지 친구라는 이유로 추억팔이에 머물러 합리화할수록 공허함만 짙어지는 것이 아닐까.


'친구', 흔하게 불리지만 흔치 않은 존재

우리 모두에게는 정도의 차이지만 각자의 삶에 좋은 친구들을 갖고 싶어 한다. 또 자기애가 강한 사람은 자기가 주인이 되는 자리에 친구들을 배경 삼고 싶어 하는 마음이 있다. 직장, 결혼, 출산 등등.. 개인에게 삶의 주제들은 늘 중요하고 대단하다. 그런데 여기서 친구는 나를 축하해지고 위로해주는 배경일까.


친구는 도대체 무엇일까?

성경에서 친구는 "변한 없이 서로 사랑하는 것이 친구이며 위급할 때 서로 돕는 것이 형제이다(잠언 17:17)"라고, "추운 방에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해진다. 그러나 혼자서 어떻게 따뜻해질 수 있겠는가(전도서 4:11)"라고도 한다. 물론 성경에서 가장 좋은 친구의 표본은 예수님이시고, 사랑하는 믿음 안의 관계이지만, 신앙이 없더라도 우리는 모두 친구를 찾는다.


언급한 모임에는 코로나 기간에 한 번의 결혼식과 두 번의 모임이 있었다. 네 번의 자리에 누군가는 코로나로 가지 못했지만, 따지고 보면 우선순위(Priority)의 문제 이기도 하다. 각자의 우선순위는 자리와 상대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 사실이니까.


2단계부터 만날 수 없는 사이

한 번은 한 친구로부터 "오늘 봐, 내일부터는 만나기 어렵잖아. 우리는 2단계부터는 만날 수 없는 사이야"라는 농담 섞인 만나자는 핑계를 듣기도 했다. 베이커리, 카페 어디 하나 앉아서 이야기할 수 없고 오직 집에서만 만날 수 있으니, "오늘이라도" 만나자는 것이다.


워낙에 핑계보다는 실천을 말하는 사람이라, 또 누군가에게는 부담이 될만한 원칙주의자라 굳이, 내가 어떤 책임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정의 가치관을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한 두 번 즘 먼저 다가서고, 아니라면, "아니구나" 하고 말지만, 이것저것 재지 않고 그 마음 한번, 같이 했던 그 시간 한 번 다시 나누고, 현재를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 친구의 조건 아닐까.


조건 없는 관계가 친구일 수 있겠지만, 왜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친구라는 추억 속에서 이해를 요구해야만 할까. 혹은 그가 변했다면, 내 마음도 관계를 놓을 줄 알아야 한다. 과거의 친구가 그가 아니듯, 나도 과거의 나는 아니다. 나는 그래서 친구도 최소한의 조건이 필요한 것 같다고 생각한다.

"out of sight, out of mind" 함께 했던 작은 시기가 너와 나의 연결고리라면, 기다림은 깊은 이해이기도 하지만, 힘들때도 힘들다 말하지 못할 정도라면 과연 좋은 관계일까.

최소한의 배려, 시간과 물질과 마음을 쓸 줄 아는 그 작은 마음은 있어야 관계는 유지되는 것이라는 것, 너무나 당연한 일이 아닐까

@ 비오는 숲





이전 10화그냥 좋아요 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