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그림그리는 닥터희봉 Mar 24. 2021
봄이 왔다.
어릴 땐 겨울이 끝나고 외투 없이 양껏 멋 부리고 밖에 나가는 그 순간이 참 좋았다.
나가봐야 친구 만나서 햄버거 세트에 찬바람 외면하면서 도심 한 바퀴 도는 것이 다였지만,
봄을 샘내는 차가운 바람이 부는 날엔 여지없이 입술이 보랏빛으로 물들고 말지만,
십 대에게 수많은 봄날들은 설레기만 했다.
가까이 살피면 새싹이 연두 연두 하고 움트고 있다.
음? 기억이 안 나는데, 거참 왜 어버이날 부모님 사드리는 꽃 있잖아?
코로나 19로 계속되는 재택에도 가끔은 회사에 나간다.
그날도 퇴근길에 오랜만에 집 앞 횡단보도 앞에 꽃 파는 아저씨가 오셨다.
가만 보니 트럭으로 한 아름 오셨던 그분이 아닌 다른 낯선 아저씨이다.
꽃 종류가 적은데, 그중에 눈에 들어오는 분홍빛 꽃이 있었다.
"아저씨, 이 꽃 이름은 뭐예요"라고 물으니, 웬걸! 트럭 꽃 사장님과 달리
이분은 꽃을 잘 모르시는 분인가 보다. (트럭 꽃 사장님은 꽃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해주셨단 말이지)
"하, 내가 아까는 알았는데, 그... 이름을 까먹었어" 라고 하신다.
적잖이 당황스러워서, "아, 그래요 후후, 이 꽃 한 단 주세요. 꽃 사는데 이름도 모르고 사네요 ~" 라고, 계산을 하고 발길을 돌렸는데 아저씨가 굳이 나를 불러 세웠다.
"아, 있잖아!! , 그거 있잖아, 거참, 왜 어버이날 부모님 사드리는 꽃!"이라고 하신다.
"하하, 카네이션요!!" 하니 맞다고 그거 맞다고 좋아하신다.
생각해보니 꽃을 사는 사람이나 꽃을 파는 사람이나, 그 흔한 카네이션을 몰라봤던 것이다.
아마도 어버이날, 스승의 날에만 선물로 찾다 막상 뜻하지 않은 날 카네이션을 보니 기억이 안 났던 모양이다. 그러고보니 어버이날=카네이션, 공식처럼 부모님에 대한 마음도 형식에 갇힌 것 같다.
부모님의 사랑도 평소엔 잘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닐까
카네이션을 사온 다음 날 남편 손에 따려온 프리지어는 며칠 지나 하나, 둘셋, 하고 다 같이 만개하고 그새 시무룩했다. 그런데 카네이션은 이번주까지도 천천히 피면서 탱글탱글하다. 꽃잎 하나하나가 "나 여깄어" 하면서 깨어나는 느낌이다.
어쩜 이렇게 오래갈 수가 있을까? 그 향 또한 은은하게 잔잔하게 내 방에 퍼져간다.
어릴 적 파고들던 엄마의 냄새가 이런 향이었을까? 카네이션이 이런 향이었어? 새삼 놀랐다.
자식들은 크고 자라면서 어미 품을 떠날때즘 이미 져버린 엄마의 향을 기억하지 못한다. 못내 아쉬워 효도라는 느낌으로 지고 갈 뿐, 부모의 사랑을 얼마나 깊이 감사하는지는 나도 장담을 못하겠다. 무거운 짐을 나이 든 엄마가 지려고 할 때 화만 나는 건 나만이 아닐 것 같다. 이 시대의 자식들은 그 언짢은 기분을 다 알리라.
@붉은 카네이션의 꽃말에는 "건강을 지키는 사랑"이 있다
꽃말은, 건강을 지키는 사랑
생각해보니 카네이션의 이름을 바로 기억하지 못했던 꽃 파는 아저씨가 오히려 감사하다. 이제는 두고두고 잊지 않을 것 같다.
언젠가 부모님이 뭔가 대단한 자리에 있지 않아서 헬조선이네 하면서 푸념하고 동조하지는 않았던가? 사실 부모님의 존재는 나에게 꼭 뭔가를 대단히 잘해줘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그냥 그 자리에 계시기만 해도 엄마는, 아빠는 자식에게 힘이 된다. 그걸 모르는 자식은 아무도 없을 것 같다.
나 또한 제 딴에 효도한다고 해도 툭툭 미운 말하는 자녀이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고백하고 싶다.
"아니에요. 사실은 그냥 그렇게 곁에 계셔만 주셔도 감사해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