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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까 말까(1)

나름의 기준이 필요하다

요 며칠 인생에서 크고 작은 선택이 있다는 말이 조금 다르게 인식된다. 예전에는 선택이라는 것이 진로, 학업, 거주지 등 인생의 중차대한 일들이었다면, 지금 말하려는 선택은 일상에서의 크고 작은 판단, 결정에 가까운 일이다.


요새 유행하는 MBTI 성향에서 TJ 요소가 높은 사람들이 이런 경향이 있다고 한다. 잡힌 일정에서 몇 가지 변수라든지, 흐름을 생각해서 계획을 세운다거나, 경우의 수를 머릿속으로 그려보는 것은 실제 상황에서 대응할 때나 일상에서 꽤 도움이 되기도 하다. 이성적인 사람이나, 소심한 사람이나 가장 좋은 판단을 통한 실행을 하고 싶어 하는 것은 매 한 거지다. 전자에 가까운 성향인 나는 주로 선택지를 두고서 시뮬레이션을 돌려보기도 한다.


하지만 모든 일에 시뮬레이션 돌리기가 계속되면 때로는 피곤해지기도 하고,

여러 가지 상황을 일일이 다 대응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최적의 결정을 하기 위해서라면 이만한 고민을 피해가기는 어려운 현대인의 삶을 살고 있다.

그러고 보니 책장에 꽂혀있는 " Think again"라는 책자도 보인다. 그래 여러모로 판단은 중요하다.



, 할까? 말까?

단순하게는 "(이) 말을 할까 말까." 또는 "갈까 말까"라든지 하는 것들도 있다.

말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일수록 "안 하거나 미루거나"하게 되는 경우가 많고,

답답하면 아무래도 말을 하게 되는데,  중요한 일은 중요해서 말로 정확하게 확인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편 화가 나거나 답답해서 캐묻거나 감정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말은,  성급한 반응이 되거나 그리하더라도

생각만큼 말을 통해 답답함 시원하게 해소되지 일은 많지가 않은 것 같다.


외출, 나갈까? 말까?

모임, 학회, 교회, 출근, 지방에 친지 방문, 해외여행,, 운동

갈까 말까 할 때는, "결국, 가고 보는" 경우가 더 많다. 안 가면 과거에 머물러서 왠지 더 후회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망설임의 이유가 "피곤함"이라면, 그럴 땐 집에서 쉬는 것이 더 나았던 것 같다.

심지어 옷을 다 차려입고, 현관문을 "열까 말까"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어이없어할 때도 더러 있다.


내게서 외출의 판단 기준은 이거다 "나가서 에너지를 얻느냐 OR 체력소진돼 올 것이냐!" 에너지를 잃게 되면 나가서도 좋은 모습을 보일 수가 없는데,  타인에게 "good imgage"를 주는 것보다는 타인에게  좋은 에너지를 발산하고 싶은 것이다. 나라는 사람을 만나서 나도 타인도 괜한 걸음이 되면 의미가 없다.

그리고 운동과 교회 모임도, 체력이 안되는데 나가서 오히려 에너지가 반감돼 올 때가 많다. 이럴 땐 몇 번이고 "네 이럴 줄 알았지!" 하는데 이럴 줄 알 것 같으면 제발 나가지 말자. 집중된 삶이 좋다.

소비와 지출,  디에 어떻게 할까

내게 소비와 지출은 다르다. 무슨 기준인지는 써 내려가면서 찾아보고 싶다.

먼저 지출부터 살펴보자.

지금 보니 진짜 어른의 시작은 40대인 것 같다. 뭐 나이상으로도 소위 "빼박"인 나이이기도 하지만, 이제는 정기적으로 내가 give 하거나 기부하거나 지출하는 곳들이 꽤 많다.

내가 다니는 청렴한 교회와 후원하는 곳들, 수입이 생기면 가족들에게도 '', 찔려준다. '공돈'이라고 하나? 그런 게 생기면 얼마나 좋겠어! 우연성, 기회는 늘 사람을 설레게 하니까.

물론 내게는 그런 일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왜냐면,, 그야말로 어른이 돼서 인가보다. 딱히 회사에서는 나서서 일을 벌이는 편도 아니라, key man에게 지급되는 특별 상여금 같은 것도 없고, 고정비는 정해지거나 늘어가기 때문이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학교에서 강의를 하거나 개인 집필, 발제로 들어오는 수입은 대부분 다시 학교나 도움이 필요한 곳에 기부한다. (흠, 어른이 된 내게도 우연성이 있는 수익이 생기면 좋겠다!)


이번주 아직 참여를 안 해 본 학회와 해외여행을 고민했다.

대선배가 권해서 가입을 하기는 했지만, 가서 괜히 불편하면 어쩌지 하는 마음이 들었고, 회비도 타 학회와는 다르다. 활동에 걸맞는, 즉 분수에 맞지 않는 지출인가 싶기도 하다.  학회에서 가서 발제를 하면서 배우기도 하지만 때로는 괜히 공격적인 태도의 사람들을 만나는 일도 생기니 활동할지 말지도 가늠이 안 된다.  나는 통장의 잔고를 늘 0으로 만들 정도로 여분의 돈은 어떻게든 주변으로 흘려보내는 편이다. 그래서 생각보다 지출이 많으니 이제는 기회비용을 생각한다. 돈도 에너지도 다 마찬가지이다.

여행도 내게는 소비보다는 지출이다.

올해는 내가 미국땅을 밟을 수도, 아니면 가족의 티켓을 끊어주고 싶다. 비행기 티켓비용은, 미주는 국적기기준으로 이코노미가 편도로 2백, 비즈니스는 5백 이상이다. 성수기에는 여기서 더 늘어난다. 역시 적은 돈이 아니니까 규모를 생각하고, 기회비용에 해당하는 것을 포기하던지 타협하는 것이 필요하다.


소비! 요새 온라인 쇼핑거래액이 사상최대라고 한다.

식비와 커피, 옷,  커피는 고민 없이 매일 마시고 있기에(집에 머신과 캡슐, 드립커피 등 없는 게 없는데도) 그냥 5천*30일=15만 원이 최소일 것 같다. 그리고 옷은 코로나 19 이후  외출이 줄었지만 운동복과 편한 일상복을 주기적으로 사고 있다. 심지어 마음에 드는 옷이나 상품은 몇 개씩 사서 주변에 나눠주기도 한다. "에이, 내가 뭐 사치하는 것도 아니고, 일하는 게 얼마나 되는데, 이 정도는 써야지" 하면서 원래부터 절약하는 타입은 아니다.

내키면 사야 하고, 원하는 것은 해야 직성이 풀린다. 하지만 이제와 무슨 명품가방이나 고가의 시계를 사고 싶지는 않다. 이미 다 해봤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이상 욕구가 없다. 마트에 가고 생필품을 사기도 하지만 나보다 남편의 지출이 더 많으니 줄이려면 줄일 수 있다.

또한 나를 찾아온 사람에게

나를 만나 먼저 계산하기를 나서지 않는 사람에게

내가 만나자고 나선 사람에게

식사비나 찻값은 먼저 낸다.

나에게 에너지와 시간을 내준 사람들을 대접하는 것이고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고마움을 표한다.

하지만, 굳이 만나자고 해놓고 계산을 쭈뼛거리거나 좋은 음식보다 먹으나마나 한 곳을 가려하거나  인색하게 구는 사람에게는 그냥 내가 내는 것이 마음이 편하다.

그리고 그런 자리에는 굳이 나서지 않기로 한다. 서운하거나 불편해서이기보다 가득차지 않은 만남은 서로에게 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만나고 싶었던 마음도 그 시간도 풍성하고 기꺼이하는 시간을 만들고 싶다.  이는 상대방에게 귀기울이고 대접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길게 말했지만,

지출은 내 삶의 유지에 대한 투자이고, 소비는 순간에 대한 씀씀이라는 결론이다.


그래서 삶에 나름의 기준이 필요한 것 같다.

쓰고 보니 기준을 정하기 보다 그냥 그렇구나 싶은 고민들인 것 같기도 하다.

누군가는 할까 말까 할 때는 하고 후회하라고는 하던데, 나는 그렇게 보지는 않는다. 살다 보니 항상 "하자"가 답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은 벌여져서 감당하기 힘든 경우도 많으니까.


이제 슬슬 기온도 영상으로 올라가고 봄이 되고 있다.

모든 것을 다할 수는 없다. 더 좋은 기준이 있다면 자문이라도 받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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